8월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이날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상한제를 발표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8월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이날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상한제를 발표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토교통부는 8월 12일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분양가상한제란 분양 가격을 특정 가격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가격 규제다. 그러나 분양가상한제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당장 청약 가점이 높고 현금 여력이 있는 중장년층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청약 가점이 낮은 30~40대 무주택자는 청약 경쟁률이 높아져 당첨될 가능성이 작아졌다.

분양가상한제는 역대 정부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해 수정·폐지를 거듭한 정책이다. 당장은 분양가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축소, 주택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논란이 많았다.

특히 정부가 전세제도라는 한국 부동산의 구조적인 모순에는 눈을 감고, 안일한 가격 규제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주택 시장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은 전세제도에서 출발한다.

예외도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소득이 많고 재산이 넉넉한 사람은 집주인,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입자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행 전세제도하에서는 세입자가 목돈을 구해 집주인에게 준다. 예를 들어 거주 중인 집에 현금 4억원을 가진 사람 A가 있고, 집도 목돈도 없는 사람 B가 있다고 하자. A는 전세보증금 6억원을 끼고 10억원짜리 아파트에 투자하고, B는 전세자금대출 등을 통해 6억원을 끌어모아 A의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한다. 더 나아가 B는 전세보증금 반환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해 자비로 전세자금대출 보증 보험까지 가입한다.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가난한 사람이 목돈을 마련해 주고, 더 나아가 그 목돈(전세보증금) 반환이 어려울까 봐 보험에까지 가입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값이 하락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전세보증금을 받는 집주인이 반환 보증을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것 아닐까.

서민의 자금이 이른바 전세계약이라는 ‘합법적 빨대’를 통해 자산가의 상속이나 증여에 활용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과정에서 빈부 격차나 지역 격차는 확대된다. 소위 금수저·흙수저 논란은 더 강화되고, ‘강남불패’의 신화는 지속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전세제도는 미국이나 일본에는 없다. 그렇다면 전세제도가 사라진다면, 아파트 가격의 거품이 제거되고, 빈부 격차나 지역 격차가 완화될 수 있을까. 이는 그 속에 감춰진 인과관계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다만 앞선 예제를 통해 생각해 보면, 세입자의 전세자금대출이 아닌 본인의 주택담보대출로 6억원을 더 끌어올 수 없다면,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없을 것이다. 결국 10억원짜리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약화돼 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정부가 당장 모든 전세계약을 월세계약으로 전환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갑자기 전세계약을 금지한다면, 부동산 시장이 붕괴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분양가상한제 등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 처방에만 골몰하고, 전세제도라는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미룬다면 백약이 무효다.

정부는 우선 기존 계약 연장이 아닌 신규 전세계약부터,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에 관한 보증을 제공하는 경우에만 전세세입자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월세계약에 대한 세제 혜택을 신설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월세계약으로 전환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월세제도로 바꿔 나갈지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