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태평양의 섬나라인 키리바시 공화국은 지난 2014년 역시 섬나라인 피지에서 두 번째 큰 섬인 바누아레부의 땅 일부를 사들였다. 대부분 가파른 언덕과 맹그로브 숲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크기는 섬 면적의 0.5% 가까운 20㎢ 정도였고, 매입 대금은 900만달러였다. 키리바시는 다른 나라 땅을 매입한 데 대해 국민의 새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33개의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진 키리바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나라다. 무엇보다 11만 인구의 절반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타라와섬이 2050년까지 대부분 바다에 잠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키리바시가 매입한 땅은 거주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다. 새 거주지 조성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었다. 땅 매입을 주도했던 대통령은 나중에 국제 사회에 해수면 상승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 조치였다고 말을 바꿨다.

주목할 부분은 키리바시가 땅을 샀지만 영토를 구매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유권이 바뀐 뒤에도 그 땅은 키리바시 영토가 아니라 여전히 피지 영토로 남았다. 노르웨이 등 외국의 국부펀드가 뉴욕의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해서 그 땅이 외국 영토로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상 부동산 투자를 한 셈이다.

요즘 세상에서 영토 구매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영토를 사고파는 것보다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로 인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과거에는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면 영토를 살 수 있었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983만㎢)의 38%(374만㎢)를 돈으로 샀다. 루이지애나를 비롯해 모두 13개 주를 아우르는 방대한 땅을 프랑스로부터 사들였고,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했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사들인 땅은 1917년 덴마크에 2500만달러를 주고 매입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다.

1946년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덴마크에 1억달러를 주고 그린란드를 사려다 실패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는 달리 영토 주권에 대한 인식이 강해진 탓에 덴마크는 미국의 제안을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이 사실은 1991년에 가서야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그린란드 영토 구매를 시도하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도 처음엔 농담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황당한 발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진지하다. 덴마크 총리가 “터무니없다”며 일축하자 예정됐던 국빈 방문 계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그린란드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는 면적이 216만㎢로 텍사스주의 세 배 크기다. 현재는 80%가 얼음으로 덮여있어 경제적 가치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 석유, 가스, 철, 우라늄, 알루미늄, 니켈, 텅스텐 등 막대한 자원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극해 항로가 열려 정치·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가 된다. 그러나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외교·군사적 압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그린란드 주민이 압도적으로 미국령 편입을 원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린란드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고 있는 덴마크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란드 구매 추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근대적 사고틀에 갇혀 있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트럼프 취임 이후 국제 정치·경제적으로 평지풍파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덴마크 정치권에서는 “트럼프가 미쳤다는 증거”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온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