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심지어 최저임금 1만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대통령까지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결정위원회에서 결정하며, 최근의 급격한 상승은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한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 결정위원회가 기업의 지불능력이나 경제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아서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진단하고,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뒤에서 주도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주중대사로 영전해갔고, 소득주도성장의 선봉에 섰던 공익위원들이 ‘욕받이’가 된 셈이다. 결국 대통령 공약 실현에 충실했던 공익위원 8명이 이에 반발해 사퇴의사를 밝혔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좀 더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고용노동부의 개편안에는 ‘정치권력이 위원을 임명하는 한 최저임금 결정체계가 일원화되든 이원화되든 정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결여돼 있다. 만약 구간설정위원회가 아무런 제약 없이 2020년도 최저임금의 상·하한선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자. 극단적으로 하한선은 2019년과 같은 8350원, 상한선은 1만원 정도로 잡는다면 노사 어느 쪽으로부터도 심한 공격을 받지 않고 결정권을 결정위원회로 넘길 수 있다. 정치권력이라는 ‘보이는 손’은 구간설정위원회가 아닌 결정위원회를 통해서 그 의도를 관철시킬 것이다. 구간설정위원회 존재 의미가 무색하다. 반대 경우로, 상·하한선의 차이를 충분히 좁혀 잡도록 제도로 강제해 보자. 가령 그 차이가 300원 이하가 되도록 강제해 보자. 정치권력은 당연히 구간설정위원회를 통해서 최저임금 구간을 낮게 혹은 높게 잡도록 작용할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충실한 ‘욕받이’를 세울 수는 있겠지만,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누군가가’ 그때그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매년 최저임금의 고시 시기가 다가왔을 때 위원회를 소집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가상승률, 노동생산성 상승률, 노동소득분배율, 고용률 및 최근 3년간 최저임금 상승률 등을 포함하는 함수가 이듬해 최저임금 상승률을 결정하도록 하자.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5월 13일(현지시각) 공개한 한국 정부와의 2019년 연례협의 결과 보고서에서 단순히 최저임금 상승률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와 연동시켜야(linking) 한다고 권고했다. IMF의 권고대로라면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가 아닌 4%가량 올리는 게 바람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16년 시간당 32.9달러에서 2017년 34.3달러로 4.2% 증가했다.

만약 시스템의 경직성이 우려된다면 위와 같은 함수 형태는 최저임금의 상한과 하한만 결정하도록 하고, 그 정해진 상한과 하한 사이에서 최저임금결정위원회가 결정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3년마다 혹은 5년마다 시스템을 평가·수정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평가할 때마다 과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 분석을 해서 시스템을 보완하도록 하자. 단기적으로는 시스템을 따르되 중장기적으로는 그 시스템 자체를 수정 보완해 나간다면, 최저임금이 그때그때 정치 상황에 휘둘리는 것을 막고 점차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갈 수 있다. 부수적으로 시스템을 통해 결정한다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저해하는 불확실성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 적절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술 밥에 배부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당장 내년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외면하면 내년, 그다음 해, 10년 후에도 발전은 없다. 내년 최저임금은 현행대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되, 그다음 해부터라도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