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월 1일 브라질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신임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막말과 극우 성향 때문에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사회주의와의 일전(一戰)’을 외치며 강력한 ‘우클릭’ 정책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15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 이것은 지난 20년간 남미를 휩쓸던 ‘핑크타이드(pink tide·온건 좌파 물결)’ 퇴조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심각한 부패와 경제 위기 탓에 민심이 좌파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보우소나루가 약속했던 연금개혁과 공기업 민영화, 감세 등에 대한 기대감에 브라질 주식 시장은 랠리를 펼쳤다.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는 지난 2~4일 3거래일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제닌 베델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정권이 교체된 것만으로는 안심하기 이르다”고 경고한다.
제닌 베델(Janine R. Wedel) 조지메이슨대 샤르스쿨 교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류학 박사, ‘설명할 수 없는 것’의 저자
제닌 베델(Janine R. Wedel)
조지메이슨대 샤르스쿨 교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류학 박사, ‘설명할 수 없는 것’의 저자

이번 대선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한 나라가 양쪽으로 분열됐다. 새 정권은 군(軍) 친화적이면서 약자를 괴롭히고 언론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대선 공약으로 부패 척결을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던 2016년 미국 대선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8년 브라질 대선 이야기다.

‘열대의 트럼프(Trump of the Tropics)’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1월 1일 브라질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보우소나루는 ‘새로운 스타일’의 지도자다. 여기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야로슬로 카진스키 폴란드 전 총리 등이 속한다. 기득권층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부패를 종결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부패를 척결하는 대신 새로운 부패 확산에 일조하고 있으며, 주변인 중심의 권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게 될까?

선거 기간 중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트럼프는 미국을 역사상 유례 없는 부패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다. 그는 ① 공직자들을 새로 뽑는 데 실패했고, ② 예산을 삭감했으며, 각종 절차와 의전을 무시했고, 중요한 정책에서 ③ 외교 라인을 소외시켰다. 군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비이성적인 감정에 따라 지휘관들의 전문성을 폄하했다.

국가 기관의 역할이 희미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정부 통치가 더욱 비공식화되고 정책이 개인화되며,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중요해진다. 실제로 트럼프는 자신의 가족들을 공식·비공식적 자리에 앉혔고 자신의 시니어급 보좌관들을 각 기관에 보내 ④ ‘감시자’ 역할을 부여했다. 또 집권 첫해에만, 지난 50년간 어떤 역대 대통령이 재임 중 내렸던 것보다 더 많은 행정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의 지난 행적은 노골적인 족벌주의와 정실(情實) 인사, 직권남용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는 ‘그림자 로비스트(Shadow Lobbyists)’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이들은 정식 로비스트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겉으로는 기업이나 외국 정부와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트럼프의 비공식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뉴트 깅리치는 헬스케어 회사들과 패니메이(Fannie Mae)의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를 지낸 마이클 코헨은 AT&T나 노바티스 같은 회사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공식적인 인물로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폴 매너포트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 등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터키 관련 그림자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다음은 ‘그림자 엘리트(Shadow Elites)’다. 각계에 불투명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갖고 있는 이들로, 공공과 사적 영역 전반에서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퇴역 장군이나 사령관 등 장성들이다. 이들은 국방부 자문 위원회에 참석하는데, 여기에서 각자가 소유한 컨설팅 회사나 적을 두고 있는 방위 회사들에 유리한 방식으로 국방 의제를 설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트럼프가 임명한 관료 대부분은 교육, 금융, 에너지 등 자신들이 감시해야 할 산업계와 개인적으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트럼프 본인도 자신의 사업과 완벽하게 단절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결정이 개인 사업에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견고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사법부와 언론 양쪽으로부터 확실한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트럼프와 비슷한 노선을 따르고 있는 헝가리와 폴란드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트럼프가 정부의 기능을 약화해 부패를 부추겼다면, 오르반과 카진스키는 정부 통제권을 장악하고 법을 바꿔 정부 기관을 사유화하고 있다.

헝가리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오르반 충성파들은 정부를 감시하는 독립 기구의 수장 자리를 꿰찼다. 사법부 자리도 입맛대로 채워 넣어 자신에게 유리한 개헌의 기반을 다졌다. 그를 통제할 제도적 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오르반은 ⑤ ‘프리덤 하우스’가 말한 ‘규모가 크지만 처벌받지 않는’ 부패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10년 선거에서 오르반과 그가 이끄는 피데스당이 압승을 거뒀을 때 그는 ‘혁명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헝가리 국민이 ‘그동안 권력을 남용한 집권층을 몰아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르반은 자기편으로 구성된 ‘새로운 집권층’을 만들어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헝가리 공공 조달의 70% 정도가 부패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GDP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는 헝가리 경제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르반과 그 측근들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받는 ⑥ 지원금 수십억달러를 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르반의 목표는 헝가리 권력층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그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오르반과 그의 측근들은 현지 언론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카진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여당 ‘법과정의당(PiS)’도 피데스당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부를 장악했다. 피데스당이 그랬듯 법과정의당은 자신들을 부패 해결사로 내세웠고, 그 결과 2015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지금 폴란드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반부패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반대파에 부패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반부패 정책’이 권력 장악 과정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 법과정의당은 공무원, 사법부, 국영언론을 통해 광범위한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공무원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인력을 내쫓고, 빈자리에 충성파들을 앉혔다. 동시에 많은 공기업 CEO도 교체했다.

최근 폴란드에서는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 카진스키와 그 측근들의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고위급 금융 당국자가 은행권에 뇌물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관계된 당국자들은 대부분 법과정의당 소속이거나 카진스키 측근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브라질의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그는 “범죄 경력이 있다면 누구도 정부 기관에 임명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사례를 반추해봤을 때 브라질 국민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Tip

비영리 정치조직인 파트너십 퍼블릭 서비스가 지난해 6월 트럼프 집권 500일째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백악관 요직 665개 중 204개가 공석으로 집계됐다. 모두 상원의 동의가 필요한 자리였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각 부처 예산을 5% 삭감하는 결정을 내렸다. 막대한 재정 적자에 따른 극약 처방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추가 감세를 추진하면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트럼프는 2017년 국무부에 새로운 부서를 만들고 외부 인력을 충원했다.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맡은 부서였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당시 현직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국무부의 외교 정책을 무시하고 있어 외교관들 사기가 바닥”이라고 전했다.

집권 초기 트럼프는 각 기관에 자신의 측근을 보내 고문 역할을 맡겼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너지부에 소속된 웰스 그리피스 국제 에너지 기후 고문이다. 그는 과거 렌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의 참모 역할을 했다.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뽑은 인사들은 정책 전문가라기보다 정치색 짙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민간단체다.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헝가리의 부패지수는 4.75점으로 전년보다 0.25점 상승했다. 1~7점까지 매기는데, 점수가 높을수록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뜻이다.

유럽연합(EU)은 역내 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결속기금(cohesion fund)’이라는 지원금 제도를 운용한다. 27개 회원국 평균 GDP의 90% 미만인 회원국이 지원 대상이다. 2014~2020년 총 3518억유로의 결속기금이 헝가리·체코·폴란드·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에 배분됐다. EU는 지난해 오르반 정부가 언론·비정부기구(NGO)를 탄압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는 등의 이유로 2021~2027년 예산에서 헝가리에 대한 지원금을 축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