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2018년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흐름 중 하나는 ‘미들맨(Middleman)의 몰락’이다. 미들맨은 어떤 서비스를 중개하면서 수수료 등 비용을 챙기는 사람을 말한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런 미들맨이 몰락하고 사라지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지난 4월 기업공개(IPO)를 하자마자 시가 총액이 30조원이 된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도 미들맨을 없애 성공한 사례다. 스포티파이는 2012년까지는 평범한 음악 스트리밍 업체였다. 당시 스트리밍 시장은 판도라·유튜브·애플뮤직 등 쟁쟁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했었다.

국내에서도 벅스뮤직·멜론·엠넷 등이 아주 힘겹게 경쟁했기 때문에 수익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더 많은 음원을 확보하고 더 많은 고객이 음악 서비스에 결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던 시점에, 스포티파이는 오히려 미들맨을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로 맞춤형 음악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큐레이션해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외부 서비스(미들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스포티파이는 이러한 큐레이션의 미들맨을 없애면서 혁신을 이뤄냈다. 자체 기술력으로 이용자들이 듣는 노래를 분석해서 그들 각자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나아가 라디오처럼 개인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끊기지 않게 재생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7년 말에 기업공개를 한 스티치픽스(Stitch Fix)가 있다. 이 회사는 옷을 골라주는 사람인 코디네이터라는 미들맨을 없애면서 엄청나게 발전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하나하나 골라서 구매하는 것을 번거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객 취향을 분석한 후 알아서 골라주고 배송해주는 획기적인 쇼핑몰을 만든 것이다.

스티치픽스는 시가 총액이 현재 16억4000만달러(1조8000억원) 정도인데, 이는 유명 패션 기업인 게스(16억4300만달러·1조8450억원)와 비슷하고 아베크롬비(12억5200만달러·1조4000억원)보다는 오히려 많은 수준이다.

앞으로 이런 서비스가 발전하면 할수록 미들맨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들은 줄어들 것이다.

패션이나 음악 산업만 미들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공증해야 하는 절차를 간소화한 도큐사인(Docusign), 고객들에게 설문 조사하는 절차를 간소화한 온라인 설문 조사 업체 서베이 몽키(Survey Monkey)도 모두 미들맨을 없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수익을 창출한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이 미들맨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 등 기술의 진보를 적절하게 활용한 덕분이다.

몇몇 선도적인 기업에서 미들맨이 사라지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기업 트렌드의 변화가 미래의 직업이나 산업 변화를 미리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미들맨 분야에서 종사했던 많은 인력이 자동화로 인해 대체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e-commerce) 컨설턴트’는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이 전자상거래 분야로 진출할 때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어떤 기업과 연결돼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인데, 이런 업무를 자동화한 서비스와 기술이 등장하면서 사라져 가는 직업이 됐다. 선진국에서는 컨설팅 업무 종사자들이 미들맨이 사라지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업무 분야를 적극 찾아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미들맨을 없애는 혁신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많은 미들맨들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국내 산업 환경은 이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듯하다.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처음 상장된 지난해 4월 3일, NYSE의 전광판에 있는 스포티파이 기업 로고. 사진 블룸버그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처음 상장된 지난해 4월 3일, NYSE의 전광판에 있는 스포티파이 기업 로고. 사진 블룸버그

한국, ‘미들맨 없는 사회’ 대비해야

예를 들어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대표적인 미들맨으로 꼽히는 공인중개사의 연도별 신규 배출 인원은 2013년 9846명에서 2016년 2만2340명으로 늘었다. 개업한 공인중개사도 2012년 8만2931명에서 2017년 9만9799명까지 증가했다. ‘직방’이나 ‘다방’ 같은 부동산 중개 관련 직거래 정보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미들맨 수가 오히려 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국에서 공인중개 서비스를 대체한 부동산 정보 업체 질로(Zillow)가 급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들맨이 사라져가는 글로벌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국내 산업이 앞으로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미들맨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려 해도 미들맨 없는 산업구조가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산업이 촘촘하게 연결된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생각할 때 한국이 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변화가 몰려왔을 때 개인이나 산업계 모두 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충격은 클 것이라고 본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업무 분야를 끊임없이 개척하고 찾아나선 사람과 하루아침에 자신의 업무가 사라져 오갈 데 없어져 버리는 사람의 처지는 비교할 수 없다.

미들맨이 몰락하고 사라져간다는 것은 산업의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큰 변화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들맨이 사라져버린 세상이 표면에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는 준비된 사회와 준비 안 된 사회는 이미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격차가 나버린 뒤일 것이다.

미래를 준비할 때 내 삶의 어떤 부분에 미들맨이 개입돼 있는지, 어떤 부분이 기술적으로 대체돼 사라지게 될지를 미리 그려 보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