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최근 미국에서는 신용파생상품 시장이 다시 팽창하고 있다. 신용파생상품 시장은 10년 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던 주범이다. 당시 이 시장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여러 개의 주택담보대출을 묶어서 만든 고위험·고수익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대출채권담보부증권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이라는 파생상품이 ‘새로운 위험’으로 떠올랐다. 은행이 신용도 낮은 기업들에 제공한 대출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것이다. 신흥시장발 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미국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CLO 시장을 지목하고 있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2018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의 경제 매체들이 꾸준히 다뤄온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신흥국 위기였다. 물론 신흥시장이라는 것이 여러 나라로 구성돼 있으므로 ‘신흥국 경제’를 하나로 뭉뚱그려 특정 짓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최근 신흥국 국채 금리는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많아지면서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굳어졌고, 이 때문에 자본 유입 규모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미국 기업채와 신흥국 국채는 순행관계였다. 미국 기업채 금리와 신흥국 국채 금리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용등급이 낮은) 고수익 미국 기업채를 미국 경제 구조에 존재하는 일종의 ‘신흥시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올 들어 이 상관관계가 어긋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표 1 참조>. 두 채권 금리가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 미국 기업채 금리가 신흥국 채권 금리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금융 시장이 신흥국 채권 위험을 ‘과도하게’ 평가했을 가능성이다. 즉, 신흥국 국채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뜻이다. 둘째는 금융 시장이 미국 기업채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미국 기업채 금리가 ‘지나치게 낮다’는 뜻이다.

현재 세계 경제 상황과 여러 요인, 예컨대 고금리, 강달러, 원자재 가격 그리고 몇몇 신흥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모두 고려했을 때, 나는 후자가 맞는 해석이라고 본다.

세계적으로 여전히 저금리 환경이 지속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고수익을 좇는 금융 투자자들은 기업채 시장에서 ① ‘CLO’라는 매력적이면서도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냈다.

미국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에 따르면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채 발행 건수는 2017년에 정점을 기록한 뒤 2018년 급감했다. 2018년 1~11월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나 감소했다. 대신 ‘CLO’ 신규 발행 건수가 급증했고, 거의 매일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CLO 발행 건수를 가늠할 수 있는 지수인 ‘S&P/LSTA 미국 레버리지 론 100 인덱스’는 2018년 12월 초 기준으로 2012년 최저치보다 70% 정도 높은 수준이다. 대규모 자본이 미국 기업채 시장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표 2 참조>.


CLO는 10년 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던 CDO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위기가 오기 전 호황기의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채권을 하나로 묶어 이를 담보화했고, 이 덕분에 재무제표상의 위험성을 가릴 수 있었다. 이 영향으로 불량 대출이 급증하게 됐다.

CLO 시장도 마찬가지다. CLO를 발행할 때 주거래 은행이 기업들을 묶어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볼륨이 커지고 채권의 위험성이 낮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신규 발행 건수 중에서 ‘B-’ 등급 이하 기업을 말하는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Weakest Links)’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2015년에 급증했다. 이렇듯 불량 기업을 기반으로 한 신규 발행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발행 조항 등 규제도 느슨해졌다.

CDO 호황기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CLO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엄청나다. 자본 흐름 단계로 보면 ‘노다지(bonanza)’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면서 지금까지 반복된 패턴에 따르면, 금융위기의 씨앗은 항상 ‘(나쁜 대출로 만들어진) 좋은 시기’에 뿌려진다. 미국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지금 상황이 바로 이 ‘좋은 시기’다.

과거 경험상 자본 유입 급증의 끝은 좋지 않았다. 몇 가지 상황이 변하면 호황 사이클이 바로 불황 사이클로 돌변하기도 한다. 기업 측면에서 봤을 때 채무불이행(디폴트) 발생 확률은 △부채가 증가할 때 △담보 가치가 하락할 때 △주가가 하락할 때 커진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인에 따른 디폴트 위험이 최근 들어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②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가 약한 탓에 CLO 시장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부터 ‘그림자 금융’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른 금융 분야와의 관계가 불투명하다는 점, 이 때문에 시장이 왜곡될수록 그림자 금융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 등이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투자자 모두 은행보다 CLO 발행 같은 자본 시장을 선호한다. 기업으로서는 갑작스러운 재(再)융자, 투자자로서는 부실채권 정리(비용처리)에 따른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딱 10년이 지났다. 서브프라임 거품 붕괴로 무너진 자리를 새로운 현상이 메우고 있다. 이른바 ③ 금융 시장 ‘두더지 게임’이다. 다음 거품이 어디에선가 나오길 기다리는 글로벌 게임판에 이미 우리는 끌려 들어와 있다.

2007년도 이전 몇몇 선진국에서 주택 시장 붐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처럼 지금 ④ 유럽 CLO 시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발행된 CLO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신규 채권 발행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1~11월 기준으로 전년보다 40% 증가했다. 필사적으로 고금리를 찾고 있는 일본 은행들이 이 CLO를 적극적으로 매수하면서 구매자의 질(質)도 높아졌다. 주변 상황을 험악하게 몰고 갈 가능성이 큰 전염성 강한 금융 네트워크가 이미 준비돼 있는 상황이다.


Tip

은행들이 대출 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일종의 자산담보부증권(ABS·Asset-Backed Securities). 주거래은행이 기존 거래 기업 가운데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을 하나로 묶은 뒤,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이다. 최근 미국은 경기 호황으로 CLO 발행이 급증하고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글로벌 CLO 시장 규모는 2018년 7000억달러(약 790조원)로 2016년보다 25% 증가했다.

은행처럼 예금을 받고 대출해주지만, 은행과 달리 감독 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비(非)은행 금융 회사 혹은 이들의 금융 활동을 뜻한다. 이런 비은행 금융 회사에서 취급하는 금융 상품을 지칭하기도 한다.

금융 분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 해도, 투자자들이 또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2008년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카르도 카바렐로 등 3인이 발표한 논문 ‘거품과 원자재 가격, 세계 불균형’에서 유래한 말이다.

최근 한국의 경찰공제회가 유럽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CLO에 처음 투자해 화제가 됐다. 경찰공제회는 유럽 중소기업 CLO에 투자하는 펀드에 2200만유로(약 280억원)를 투자했다고 최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