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반도체 기업 인텔과 AMD 간 점유율 싸움이 한창이던 2006년은 ‘펜티엄4(인텔이 2000년 발표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열 이슈로 인한 인텔의 부진과 ‘애슬론’을 앞세운 AMD의 약진이 극명하게 교차하던 시기였다.

이후 절치부심한 인텔은 전작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고 아키텍처를 개선한 새로운 제품 ‘코어2듀오’를 내놓았다. 코어2듀오는 인텔의 과감한 저가 정책과 맞물려 시장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와 반대로 AMD의 제품들은 계속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AMD가 ‘라이젠’으로 반격하기 전까지 10년간 인텔은 CPU 시장에서 독주했다.

오랜 시간 고착화된 CPU 시장 판세에 불과 몇 분기 사이에 변화가 찾아왔다. AMD의 라이젠 시리즈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고, 반대로 인텔은 올 초에 제기된 멜트다운(보안 결함) 이슈와 고질적인 수급 불안정 등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인텔의 문제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내부적인 원인에서 비롯됐는데 그중 무엇보다 가장 뼈아팠던 부분은 ‘공정 지연’이었다. 반도체 업계의 기술력을 대변하던 인텔은 몇 년째 14 나노 공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고, 저만치 아래에서 경쟁하던 대만의 파운드리업체 TSMC와 삼성전자는 이미 7 나노 EUV 공정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인텔의 상황과 반대로 AMD는 경영난으로 글로벌파운드리즈를 매각하며 자체 생산능력을 상실했지만 TSMC를 통해 내년부터는 7 나노공정에서 CPU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앞선 공정, 더 많은 CPU 코어 개수로 무장한 AMD는 더 이상 값싸기 때문에 찾아야 하는 대안이 아닌 인텔의 막강한 경쟁상대로 떠올랐다.

10년간 지속돼 온 인텔의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AMD의 점유율 반등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AMD의 약진은 PC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두 업체로 향하고 있는 지금 인텔과 AMD의 싸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텔이 CPU 시장에서 독주하던 지난 10년의 시간은 공교롭게도 정보기술(IT) 업계의 패러다임이 PC 중심에서 스마트폰 중심으로 넘어가는 시기와 맞닿아있다. 코어2듀오로 맞이한 새로운 전성기 동안 인텔은 PC CPU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전체 IT업계에서 인텔의 위치는 계속 하락했다. 인텔이 집중하고자 한 PC 시장에서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스마트폰 시장이 생겼고, 결국 IT업계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됐기 때문이다. 물론 인텔에도 아톰(인텔의 초전력 CPU)이라는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하는 복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톰 CPU는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그 배경에는 현재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의 중심이 된 ARM 아키텍처(스마트폰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 기반의 프로세서 개발을 중단해버린 인텔의 뼈아픈 판단 착오도 있었다. 그 후 인텔은 퀄컴이나 애플,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새롭게 등장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의 과실을 누리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IT업계에는 스마트폰에서 사물인터넷(IoT) 시대로의 또 한 번의 패러다임 변화가 임박해있다. 그리고 인텔과 AMD로 대변되는 PC업계의 X86진영과 퀄컴, 애플, 삼성으로 대변되는 모바일의 ARM 진영 중 어느 쪽이 IoT 플랫폼에 더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인텔과 AMD에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모바일 진영이 IoT 전환 시기에 맞춰 PC와 모바일 간의 플랫폼 통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애플의 경우는 아이맥, 맥북과 같은 PC 라인업에 현재 인텔의 CPU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체 CPU 개발을 통해 이를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애플은 IoT 시대를 앞두고 현재 IOS와 MAC OS로 나뉘어 있는 PC와 모바일의 운영체제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퀄컴 역시 스냅드래곤 850의 출시를 통해 PC 시장으로의 진출을 알렸고, 지난 4일에 열린 스냅드래곤 테크 서밋에서 후속작 8CX 발표를 통해 PC용 플랫폼에 대한 확고한 방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텔과 AMD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또 한 번 선택과 집중을 택하게 될지, 아니면 모바일과 IoT를 아우르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안하게 될지.

인텔의 지난 10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인텔을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로 만들어 준 가장 큰 원동력은 기술이었다. 우수한 엔지니어를 토대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인 것이야말로 지금의 인텔을 만들어온 가장 근원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창업주인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로 전해 내려오던 기술 중심 원칙은 6대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의 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인텔은 CPU뿐만 아니라 반도체 전반에 걸쳐 더 이상 가장 앞선 반도체 기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인텔의 기술 중심 원칙은 6대 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사진)의 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진 블룸버그
인텔의 기술 중심 원칙은 6대 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사진)의 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진 블룸버그

인텔의 시대 만든 기술력 되찾아야

지난 10년 동안 인텔에서는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만 같던 그럴듯한 타이틀의 수많은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 주가는 계속 상승했으며 소비자용 PC 시장과 서버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인텔에 준 교훈은 PC 시장이 아닌 IT 시장 전체에서 살펴봐야 찾을 수 있다. 크르자니크 시대에 행해진 다양한 시도들은 기술의 우위가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유효하다. 인텔은 이제 여유가 없다. IoT 시대가 도래하기 전,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술 발전에 집중하고 잃어버린 인텔의 정체성, 인텔의 시대를 만들어 온 원동력을 되찾아야 한다. 

최근 AMD의 약진을 인텔이 처한 위기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텔과 AMD의 경쟁에 다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인텔이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 중심 원칙이 무너진 것과 더불어 패러다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다가올 IoT 시대 인텔의 경쟁상대는 AMD가 아니다. 오히려 인텔은 AMD와 함께 ARM 진영에 반쯤 발을 걸쳐 놓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음을 돌려 IoT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