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최근 미국 나스닥 지수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연일 급락하면서 ‘금융위기의 신호탄’ ‘10년 주기 금융위기설의 반복’ 같은 말이 자주 화제에 오른다. 이런 상황과 함께 위기를 맞고 있는 기업들은 일명 팡(FAANG)으로 불리는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등 미 정보통신기술(IT)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에 대한 위기설이 나오는 표면적 이유는 이들이 최근 4년간 매출 상승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주가가 상승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지금까지 무료로 사용해 이익을 얻었던 고객 데이터가 점점 더 소유권과 저작권이 있는 유료 자산이 되고 있고, 각국 정부도 데이터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소유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또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의 발전은 FAANG이 만들어낸 데이터의 소유권과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좀 더 쉽게 판별할 수 있도록 도와줘 데이터 소유 시대를 더욱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법과 제도뿐 아니라 기술 환경도 FAANG에 불리하게만 작용하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사하던 FAANG이 다가오는 데이터 소유권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기업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 위기의 시대에 FAANG은 이용자 데이터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데이터를 활용해 이용자의 신뢰를 유지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IT 기업들이 무료로 사용한 고객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나온 것은 지난해부터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부터 시행된 유럽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은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이 기업이 수집한 개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거나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기업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최대 연간 수익의 4%에 해당하는 벌금 또는 2000만유로(약 260억원) 중 더 높은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GDPR은 인터넷이 생긴 이후 가장 강력한 수준의 개인 정보 보호 규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 명의 정보가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넘겨져 2016년 미국 대선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지난 3월 밝혀지면서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강력한 개인 정보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각국 정부와 이용자들이 데이터 소유권을 주장하면 IT 기업들은 데이터를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해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을 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FAANG이 이용자의 이용 패턴을 분석해 만들어낸 데이터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웠고, 이 데이터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사업에 사용되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용자가 쓴 글, 클릭한 행위, 쇼핑한 기록, 약을 검색하거나 진료를 예약한 데이터 등이 모두 소유권 있는 정보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이 데이터는 기업의 비즈니스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거의 무료로 이용자의 행위를 데이터화해서 수익을 창출했던 FAANG의 수익성은 급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적 규제뿐 아니라 FAANG을 IT 공룡으로 성장시켰던 기술 발전이 도리어 FAANG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FAANG이 가지고 있는 서비스들을 하나씩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블록체인 기술의 태동 단계이기 때문에 FAANG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대체할 정도의 속도나 안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블로그형 플랫폼 ‘스팀잇(Steemit)’ 서비스는 콘텐츠 업로드의 어려움과 콘텐츠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외에도 의료 정보를 판매해주는 블록체인 시스템 등 다양한 시도가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FAANG을 대체할 역량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 뉴욕 증권시장에서 나스닥 지수를 보여주는 화면에 유통 업체 아마존의 기업 로고가 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 뉴욕 증권시장에서 나스닥 지수를 보여주는 화면에 유통 업체 아마존의 기업 로고가 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블록체인, FAANG 사업 분야 잠식할 수도

하지만 이들 서비스가 기존 서비스의 80% 정도까지만 완성도를 높인다면 이후에는 빠르게 FAANG이 가지고 있는 서비스들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FAANG은 서비스를 통해 얻은 수익을 대부분 독식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서비스들은 수익을 데이터 생성자와 기업이 나눠 갖기 때문에 지금의 수익배분 구조가 유지되면 많은 이용자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로 몰릴 것이다.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나 차량 공유 업체 우버 등도 이런 수익 배분 구조를 이용해 기존 산업을 추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FAANG은 데이터 소유권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객 데이터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투명성 강화가 블록체인 기술로 도전하고 있는 신생 기업들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FAANG은 세계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기업들이고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FAANG이 적절한 보상체계를 갖추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개인 정보를 이용한다면 이용자들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적절한 보상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의 추천 알고리즘이나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아마존의 물류 노하우를 이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또 이용자 정보를 이용해 만든 알고리즘이나 노하우로 이익을 얻었다면 일부분을 데이터 제공자에게 나눠줘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과 결단은 데이터 소유 시대에도 FAANG이 시장 장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실제로 FAANG도 데이터 소유권을 인정하고 일부 보상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유튜브는 10년 전에는 영상을 올리는 콘텐츠 생산자에게 그 콘텐츠로 벌어들인 수익의 10% 정도만을 제공했지만 현재는 45%까지 비율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FAANG의 일부에서만 이뤄지고 있어 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데이터 소유 시대로 접어들면서 거대 IT 산업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쉽게 가져다 사용했던 데이터를 비용을 내고 사용해야 하는 시대를 FAANG이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느냐가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