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최근 국내 금융권에서 대거 채용비리가 적발되면서 또다시 채용 프로세스에 관련된 여러 가지 논란이 도마 위에 올라왔다. 사실 이러한 채용과 관련된 문제는 금융권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낙하산 인사, 학벌 차별, 특별 채용 등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사 측면에서 블라인드 채용, 정량화된 인재 평가, 채용 부서 분리 등의 노력도 하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개방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인사부서와 더불어 실무자에게 많은 인사권을 부여하며, 인맥과 추천을 통한 채용이 전체 채용의 반에 달할 정도로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네트워킹’은 굉장히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인맥 관리’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다. 학교생활부터 직장, 비즈니스까지 네트워킹이 빠지는 일이 없다. 한국에서 금기시하는 학연, 지연 그리고 소위 말하는 ‘빽’과 같은 것들 또한 강력한 능력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이런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해외의 추천 문화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서류상으로 성적과 스펙이 좋은 사람보다 이미 검증된 사람의 추천 한마디를 더 중요시한다. 해외 커리어 사이트 비욘드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인사 담당자의 71%가 지인 추천을 통해 채용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필자도 다양한 사람을 추천을 통해서 채용했고, 또 추천을 받아서 면접을 본 사례도 매우 많다. 추천을 받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서류 면접을 건너뛰고 바로 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따지고 보면 채용 비리로 이어지기 굉장히 쉬운 환경인 것이다.

물론 해외 채용은 일반적으로 직무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직무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인 경우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또 추천한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추천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돼 심사숙고해 추천하게 된다. 무분별하게 추천해 채용비리로 이어지는 한국의 문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이는 크게 ‘인맥’에 대한 문화 차이와 자정 작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 기업들은 실무진의 효율성을 크게 중시하고, 실무진들이 강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외부 압력으로 인해 인재를 영입한다 하더라도 실무상으로 맞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눈에 띄게 다른 사람들보다 성과가 떨어지거나 문화에 맞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실무진의 평가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고용 유연성이 있는 해외 기업에선 곧바로 해고로 이어진다. 때문에 맹목적인 낙하산 인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인재 추천에 대한 신뢰성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정 작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실무진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환경과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상의 차이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연고와 인맥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는 학연과 지연 같은 연고를 다른 사람과 나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실력이 있고 필요한 사람을 찾을 때 그냥 찾기 어렵기 때문에 좀 더 알기 쉬운 학교 네트워크나 여러 가지 인맥 채널을 동원하는 것이다. ‘목적’ 자체가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나 적합한 비즈니스 상대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자격 미달이면 당연히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학연과 지연 자체가 달성해야 할 ‘목적’이 돼버린다. 연고나 소속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XX 대학 출신 아무개입니다.’ 혹은 ‘저는 XX 전자를 다니는 아무개입니다.’ 식의 소속을 강조한 자기소개들이 이를 반영한다. 때문에 실력이나 비즈니스의 성공 이상으로 학연, 지연이 목적성을 가지는 것이다.


캐나다 오타와의 한 파티 모습. 사진 블룸버그
캐나다 오타와의 한 파티 모습. 사진 블룸버그

연고와 인맥, 인재 찾는 수단으로 활용

‘해외에서도 학벌과 인맥이 진짜 중요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이런 부분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해외 직장 생활에서 인맥이란 것이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해지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란 브랜드의 노출도를 높이고 정보력과 마케팅 파워를 가질 수 있도록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비즈니스에서 마케팅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콘텐츠 없이 브랜딩만 하는 스타트업은 붕괴하듯이, 자신에게 그만큼의 콘텐츠, 즉 실력이 있어야 마케팅, 즉 인맥과 같은 채널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높은 사람의 추천을 받았어도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단순히 채용비리 근절뿐만 아니라 경력직에 대한 활발한 채용과 추천이 일어나면서 채용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다. 국내에서는 채용비리를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정형화된 프로세스를 통해 채용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분야별 진짜 전문가를 채용하고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이 크게 부족하다. 다변화된 시대에 같은 직종, 같은 프로젝트라도 세분화된 전문가가 필요하다. 프로젝트 단위, 진행 단계별로 필요한 인재 또한 각각 다르다.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헤드헌팅 문화나 기업의 인사부 전문가 영입 프로세스에 투자하는 것이 해외보다 인색한 이유도 정형화된 채용 프로세스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에 변화가 생겨 분야별 인사 전문가가 적재적소에 인재를 뽑을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고용 불안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어차피 사람은 자신이 더 잘 알고, 관계가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이를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회적으로 방법을 만들어갈 뿐이다. 오히려 실력이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유연성을 가지고 자격 미달인 사람을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문화를 갖추어 나간다면 채용 비리를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용진 엔트로피 트레이딩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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