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한국’을 이끄는 제품들이 있다. 바로 세계 일류상품이다. 지난 2009년 12월14일 지식경제부가 새롭게 선정한 세계 일류상품은 58개 품목. 일류상품의 추가 지정과 기존 일류상품에 대한 심사 결과 전체 일류상품 수는 584개다. 여기에는 향후 글로벌 시장을 움켜질 97개의 차세대 일류상품도 포함돼 있다. 이번 호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손톱깎이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보카스를 소개한다.

‘재미삼아’만든 회전날 손톱깎이 이제 세계시장 호령한다

 “한국 기업이 두바이에 세계 최고 빌딩을 건설하고, 원자력발전 시스템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죠. 어떻게 보면 손톱깎이는 보잘 것 없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만큼은 뒤처지지 않아요.”

김경희(47) 사장은 자사의 제품이 100년 만에 손톱깎이의 개념을 바꾼 제품이라며 손톱깎이와 관련 보유하고 있는 특허만 5개라고 말했다. 보카스가 2004년 개발한 360도 회전날 손톱깎이는 손톱깎이 날의 각도를 좌우 마음대로 꺾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또 기존 손톱깎이의 날과 달리 스테인리스 특수강으로 만들어 수명을 10배가량 늘렸다.

이 제품은 2006년에 국내 특허를 따낸 데 이어 미국·대만·중국 등에서도 잇따라 특허를 획득했다. 2007년 대한민국발명대전에서 국무총리상, 2009년에는 금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기술적 우수성을 평가받아 지난해 12월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3년 시행착오 끝에 고정관념 깬 손톱깎이 개발

보카스는 1998년 가스관 검사용 정밀로봇 제작업체로 출발했다.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남편인 한기진(60) 사장이 창업한 회사다. 김 사장은 세계적인 손톱깎이 회사인 쓰리세븐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김 사장이 남편 회사에 합류한 것은 2002년. 자신만의 손톱깎이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360도 회전날 손톱깎이는 ‘재미삼아’ 만든 것이다. 손톱깎이는 100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조그만 금속날을 별도로 만들고 여기에 손잡이와 레버를 붙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손톱깎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낸 아이디어에 대해 엔지니어였던 남편이 금속재료 등의 가공기술을 충고해 줬어요. 수많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만들 수 없었던 게 태반이었죠.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디자인대로 만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힘든 거였어요.”

2002년에 나온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개발된 것은 2004년. 꼬박 2년에 걸친 시행착오 결과 손잡이 아래에 붙은 손톱깎이 날이 원하는 각도로 쉽게 돌아가 손톱, 발톱을 편하게 깎을 수 있는 제품이 탄생했다. 김 사장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에, 한 사장의 금속재료 가공기술 등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김 사장은 “손톱깎이는 굉장히 섬세한 공정이 필요하다”며 “기존 업체들이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쉽게 만들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는 디자인만 알았지 생산 공정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랐어요. 남편은 아예 손톱깎이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고요. 몰랐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기존 업체들은 스테인리스로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전 자체를 하지 않았던 거였죠.” 그는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제품이 개발되면 술술 풀릴 줄 알았던 사업은 다시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판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어들은 손톱깎이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중국만 찾았다. 김 사장은 “제품만 좋으면 저절로 팔릴 줄 알았는데, 판로 개척과 마케팅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바이어를 찾아 직접 뛸 수밖에 없었다. 제품 개발이 완료되기 전인 2003년 한 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사장은 달랑 샘플만 들고 다른 기업의 부스 한 귀퉁이를 빌려 독일의 미용 관련 전시회에 참여했다. 한 독일 업체가 상담을 마치고 간 직후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그 업체가 한국 본사로 4000여만원어치를 주문한 것이다. 5개월 동안 손으로 날을 갈아 겨우 납품했다.

보카스는 로봇 사업이 침체의 길을 걷자 2004년부터 아예 손톱깎이를 주력으로 삼았다. 조그맣고 강한 스테인리스 날을 만들기 위해 세계 최초로 자동 날 연마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 회사 제품의 절삭력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 제품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카스는 제품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네 차례의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쳤다. 또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유아용, 어르신용 손톱깎이 등 다양한 제품과 패키지 상품을 개발했다. 미용 및 생활용품 해외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한 달에 2~3번 해외 출장이 이어졌다.

대박은 터지지 않았지만 이들 제품은 꾸준히 팔렸다. 2006년 이후 매년 2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은 2006년 3개국에서 현재 15개국으로 늘었다. 이 회사의 손톱깎이 가격은 일반적인 제품보다 4배가량 비싼 8000원. 단순계산으론 이 손톱깎이를 매년 25만 개씩 판매했다는 얘기다.

헹켈 OEM 납품, 기술력 인정받아

최근에는 주방용 칼의 대명사인 독일 헹켈에 제품을 납품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헹켈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세계 120개국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헹켈 공급 비중은 보카스 전체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안정적인 매출처인 헹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직접 발로 뛴 김 사장의 영업 덕분이었다.

2006년 이탈리아 미용용품 전시회. 김 사장은 매일같이 헹켈 부스를 들러 상담을 요청했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3일째, 겨우 “한 번 검토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샘플과 브로슈어를 건네 줄 수 있었다.

전시회 이후 헹켈로부터 3000개 주문을 받았다. 2007년에는 헹켈 본사에서 실사를 위해 공장을 방문했다. 그 당시 헹켈의 구매 담당자가 한 말을 김 사장은 똑똑히 기억했다. “공장을 둘러본 후 그러더군요. 보카스가 ‘손톱깎이의 삼성’이라고요. 그리고 유럽 지역의 독점판매권을 달라는 거였어요.”

김 사장은 “플라스틱과 스틸 등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 컬러 등을 적용해 해외 바이어와 신세대 감각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며 “기술과 디자인 면에서 기존 손톱깎이와 차별화된다는 호평을 받아 향후 지속적인 수출이 이뤄 질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