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사고 현장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해당 사고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직면할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사고 현장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해당 사고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직면할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로 녹록지 않은 시기를 보낸 로펌 업계가 내년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대비 태세를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출액과 변호사 수가 늘면서 외형적으로는 덩치가 커졌지만, 여전히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숙제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대재해법 시행은 로펌 업계에 ‘확실한 호재’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과 처벌의 타깃이 직접적으로 사업주 및 최고경영자(CEO)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자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기업들 로펌에 자문 수요 급증

로펌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중대재해법 시행령 입법예고 이후 9월 말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시점을 전후로 기업들의 ‘자문 수요’가 크게 늘었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한 명이라도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및 CEO를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원 이하’ 형사 처벌하도록 돼 있다.

대형 로펌들은 전문인력을 보강하고 관련 센터를 확대·개편했다. “중대재해법 관련 실적에 따라 로펌 매출 순위가 바뀔 수 있다(A로펌 관계자)”고 인식할 정도로 로펌 간 경쟁이 치열하다. 9월 한 달간 60건이 넘는 자문을 수행한 로펌도 있다.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변호사는 “주로 기존 클라이언트 위주로 자문 요청이 들어온다”면서 “7~8월엔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요청이 많았고, 이제는 실제 자문 계약 체결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직후에는 CEO의 역할과 책임 범위 등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안전·보건 시스템 구축과 관리 체계 마련 등 ‘의무 이행’ 관련 문의가 집중되고 있다. 재해 발생 자체를 방지하기 위한 회사 내부 조직과 체계, 규정 등을 정비하기 위한 자문 수요도 몰리고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은 “(안전·보건관리) 전담 조직 구성, 본사-지방조직의 관계 설정, (안전관리책임자의 CEO) 겸임 허용 여부 등에 대한 고민이 많다”면서 “수급 업체 평가 기준, 예산 집행 기준, 협력업체 교육에 관한 자문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문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는 건설 업계다. 건설업은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직종으로, 근로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경우 CEO가 형사 처벌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건설 업계는 중대재해법에 노출될 위험 요소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라며 “법상 모든 이행 의무를 다하고 안전장치와 시스템을 갖췄는 데도 추락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예상할 수 없으니까 사고(accident)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 밖에 자동차 업계와 철강 및 제철, 플랫폼 업체 등 전 분야에 걸쳐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인사·노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특정 분야에 쏠려 있기보단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 수요가 있다”면서 “시민 재해 분야에서는 B2C 기업들의 자문도 상당수 있다”고 했다.

국내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 미국 국무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1 투자 환경 보고서’는 중대재해법을 언급하면서 “한국 지사 CEO는 회사의 모든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며 때로는 법규 위반으로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앤장법률사무소의 권순하 변호사는 “외국계 기업의 경우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 관련 외국 본사와 한국 내 법인(entity)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문의를 주로 한다”고 했다.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 임원들이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형사적 책임의 주체를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CEO)’로 명시했다. 특히 시행령상 CEO의 이행 의무와 책임 범위가 모호해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사진 연합뉴스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 임원들이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형사적 책임의 주체를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CEO)’로 명시했다. 특히 시행령상 CEO의 이행 의무와 책임 범위가 모호해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사진 연합뉴스

“첫 사례 기업 이미지 타격” 기업들 노심초사

법조계에선 법 시행 초기에는 수사기관의 기소 가능성이 클 거란 전망이 나온다. CEO 책임 범위가 포괄적이라 사고 발생에 대한 고의성 및 인과관계를 놓고 기업과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일단 재판부 판단을 들어보자’고 할 공산이 크다. 사업장 내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해 CEO가 수사기관 조사를 받게 되면, 결국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판례가 없다는 점에서 수사기관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법원 판단’밖에는 없다.

부장검사 출신인 강정석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가급적 사고 발생 원인과 대표이사의 역할 및 책임을 연결시키려 할 테고 기업들은 법상 이행 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피력할 것”이라며 “재판에 간다 해도 장기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1호 사건이 되진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데다, 첫 사례가 될 경우 회사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어떻게 하면 우리 사장님이 처벌 안 받게 할 수 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게 될 수밖에 없다”며 “어떤 굴지의 회사 CEO가 중대재해법 첫 처벌 대상이 되는 흑역사를 남기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특히 중대재해법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와 관련, 통상적인 ‘관리상 의무’를 넘어 산재 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인력·예산 배정 의무까지 지우고 있다.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만약 안전·보건 담당 부사장(관리책임자) 직책을 만들 경우, 예산과 인사에 조직 권한까지 줘야 한다. 과연 어떤 기업이 대표이사 관여 없이 전적으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임원을 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계열사를 여럿 거느린 대기업의 경우, ‘중대재해법으로 계열사 사장들이 다 날아가면 회장 할 사람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실제 일부 기업들은 처벌을 면하기 위해 공동대표를 세우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회사 영업이나 경영은 경영 대표가 하고, 안전·보건 책임자를 별도로 두는 기업이 곧 나올 수 있다. 다만 인사·예산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만 이는 ‘책임 경영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다. 쿠팡 김범석 창업자는 최근 해외 시장 확대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하지만 높은 보수 등 사실상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중대재해법 적용 등 ‘법적 책임’은 회피하게 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중대재해 사고가 나면 무조건 CEO는 처벌받게 되는 것일까. 로펌 업계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 기준이 여전히 포괄적이고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안전·보건 의무를 가능한 여건 내에서 최대한 이행했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실형은 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