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올해 중국과 이머징(신흥) 국가의 증시가 조정받은 것과 달리 인도 증시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증시의 방향성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인도 경제와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반영된 측면도 크다. 필자가 주목하는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글로벌 수준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힘입어 이머징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고질적인 문제인 에너지 부족을 해소할 방안을 찾았다는 점이다.


수준 높은 IT 인력 풀 갖춘 인도

인도는 다른 이머징 국가가 갖지 못한 특별한 장점이 있다. 바로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산업 부문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과 인력 풀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문에 종사하는 인도인만 400만 명이 넘는다. 하이드로바드, 방갈로르, 첸나이, 뉴델리 등 인도의 주요 도시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나 기업용 소프트웨어 같은 IT 자원을 통합 관리하거나 앱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인도의 IT⋅소프트웨어 산업 수준은 1인당 국민총생산(GDP) 규모가 인도와 비슷한 이머징 국가에서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필리핀의 경우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이 크다고 하나 콜센터 응대와 같은 단순 사무가 대부분이다. 베트남도 IT⋅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산업을 육성하고는 있지만 잘 훈련된 인력 풀은 수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도가 다른 이머징 국가와 달리 IT⋅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배경은 뭘까. 인도는 1950년대 자와할랄 네루 총리 시절 이공계 인력 양성을 중시하면서 인도공과대학(IIT)을 주요 도시에 세웠다. 이를 통해 일찍부터 컴퓨터공학 엘리트 인력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인도인의 영어 능력도 한몫했다. 인도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언어 장벽이 없다 보니 인도 기업이 영미계 기업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유리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인터넷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영미권 국가 등이 소프트웨어 개발 및 IT 자원 관리 업무를 해외로 아웃소싱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인도의 IT⋅소프트웨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주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사진 블룸버그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주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사진 블룸버그

속도 붙은 ‘디지털 경제화’에 인도 수혜

인도가 IT⋅소프트웨어 산업에 강점이 있다는 것은 인도 경제와 관련,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제시한다. 첫째는 풍부한 소프트웨어 인력풀은 인도가 타타컨설팅, 인포시스와 같이 글로벌 IT 기업을 키워냈고 또 이들 기업이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이다. 타타컨설팅은 시가 총액이 200조원을 넘는 글로벌 대형 기업으로 한국 증시에 상장됐다면 삼성전자 다음으로 큰 기업이었을 것이다. 인도 증시 전체를 놓고 봐도 IT⋅소프트웨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아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인도 지수에서 20%가량을 차지한다. 어떤 면에서 인도 주가 지수는 인도 경제보다도 글로벌 기업들의 IT 투자 사이클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한때 많은 사람이 클라우드 컴퓨팅 확산이 인도의 IT 아웃소싱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냐하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는 기존의 IT 아웃소싱 업무를 대체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개별 기업들이 인도 기업들에 데이터센터 관리,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는 업무를 맡겼다면 이제는 아마존웹서비스(AWS) 같은 클라우드 회사로부터 서버 및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구독하면 된다. 실제로 전통적인 IT 아웃소싱 부문이었던 데이터센터 관리 업무는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찾아왔다. 기업들이 하나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수의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이종(異種) 클라우드 간 통합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최근에는 데이터양이 늘고 머신러닝이 진화하면서 데이터 통합 분석에 대한 기업의 요구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대면 업무 및 모바일 거래가 늘어난 것 역시 새로운 IT 수요를 낳았다. 일부 테크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머신러닝, 데이터 분석 같은 새로운 기술 변화에 대해 자체 IT 인력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인도의 IT 기업에 아웃소싱을 맡기게 됐다.

둘째는 인도의 IT⋅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들이 인도 경제의 디지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 정부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가가 나서서 아드하르(Aadhaar)라는 개인별 디지털 ID를 발급하고 모바일 결제 앱을 범용 결제 인터페이스(UPI⋅Unified Payments Interface)로 표준화하는 데 성공한 나라다. UPI를 통해 서로 다른 모바일 앱 간에도 결제를 가능하게 해준 덕분에 인도에서 모바일 결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이 국가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 인도 1위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포시스를 공동 창업한 난단 닐레카니 회장이다. 닐레카니 회장은 인도공과대학이 배출한 소프트웨어 인재 중 한 사람이다.

경제 디지털화는 한 나라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래 비용을 낮추고 노동 생산성을 높이며 규모 있고 효율적인 대기업이 등장하게 돕는다. 더 나아가 디지털화는 이머징 국가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정부의 세금 수입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머징 국가는 지하경제 규모가 크며 이로 인해 세원(稅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결론적으로 경제 도약에 필요한 공공 인프라 건설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는 최근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금 수입이 예상 수준을 웃돌면서 공공 인프라 부문에 더 많은 재원을 할당하고 있다.

인도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높은 이해와 인적 자원을 기반으로 지난 10년간 일련의 연속적인 제도를 통해 디지털 경제의 기틀을 다졌다. 앞서 말한 UPI를 통해 표준 결제 앱을 만들었으며 결제 시 실명 인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생체정보(홍채) 등록 사업을 완료했다. 통화 개혁을 통해서 현금 보유 비중을 줄이고 은행 예금을 늘리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통합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면서 세원을 파악하는 수준을 높였다.

또 풍부한 소프트웨어 인력에 기반한 인터넷 창업 붐이 인도 경제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 분야별 즉 패션, 의류, 가구, 음식 배달, 음식품,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등에서 스타트업이 등장하면서 그동안의 비효율적인 시장 구조를 바꾸고 있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다수 등장한 점도 인상적이다. 인도는 정부 재정 부족으로 교육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도 20대의 고등교육 진학률이 25% 수준으로 한국의 70%, 중국의 50%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인터넷 교육 서비스의 확산은 인도인 교육 수준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 모바일 실시간 결제 사업 프로젝트를 주도한 난단 닐레카니(Nandan Nilekani) 인포시스 최고경영자(CEO). 사진 블룸버그
인도 모바일 실시간 결제 사업 프로젝트를 주도한 난단 닐레카니(Nandan Nilekani) 인포시스 최고경영자(CEO). 사진 블룸버그

‘태양광’ 덕에 에너지 부족 문제 해결책 찾은 인도

인도가 에너지 부족을 해소할 방안을 드디어 찾았다는 점도 주목할 변화다. 그동안 인도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보다도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인도는 석탄 매장량은 풍부한 반면 석유나 천연가스 매장량은 거의 없다. 인도는 핵무기 기술이 있지만 원자력 발전 기술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는 발전량의 70% 이상을 석탄발전에 의존하는 인도 전력 산업의 기형적 구조였다.

석탄 부존량이 많으니 석탄발전소를 더 많을 지을 수도 있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니다. 세계 대기질 분석 업체인 아이큐에어(IQair)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미세먼지농도(PM2.5)가 가장 높은 도시 20개 중 15개가 인도 도시였다. 인도에서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2020년 기준으로 12만 명에 이른다. 필자는 대기 오염이 심한 이머징 국가의 도시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가을과 겨울철 인도 뉴델리의 공기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석유나 천연가스 매장량이 없다는 것은 인도 경제 성장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인도 경제가 고도성장하고자 할수록 에너지 부문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일부 이머징 국가는 산업을 고도화, 수출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머징 국가는 여전히 에너지 수입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 경제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인도 내 태양광, 풍력발전 원가가 지난 10년간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석탄발전 원가를 하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발주된 발전소 프로젝트들의 낙찰 가격을 보면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태양광발전소 원가가 석탄발전소 원가보다 40% 가까이 저렴해진 것이다.

사실 인도 기후는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유리하다. 인도는 위도가 낮은 동시에 국토의 상당한 지역이 건조 기후대다. 맑은 날이 많고 일조량이 많으니 당연히 태양광발전 하기 유리하다. 한편 글로벌 태양광 패널 가격이 저렴해진 근래에는 현장에서의 설치 비용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데, 인도는 인건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니 다른 국가에 비해 태양광발전 원가를 더 낮출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태양광발전에 대한 경제성이 급속도로 좋아지자 인도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태양광발전 투자 계획이 나오고 있다. 2019년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30년까지 450GW(기가와트)로 늘리겠다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참고로 2021년 현재 인도의 총발전 용량은 400GW다. 타타그룹, 릴라이언스, 아다니그룹, 엔티피시(NTPC) 등 인도의 주요 기업들도 앞다퉈 태양광 및 클린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 경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노동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제조 수출 산업을 육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 배경으로는 기업의 활동을 옥죄는 복잡한 규제와 함께 전력의 만성적인 부족이 자주 언급돼 왔다. 인도 경제가 태양광 덕분에 전력을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인도 제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인도 경제는 얼핏 보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슈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이머징 국가와 비교해서 사회 발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인상적인 국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