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저작권을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음악 저작권을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국의 회사원 제시카(가명)의 하루는 비욘세의 노래 ‘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동료들이 주식 호가 창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라디오 DJ에게 ‘싱글 레이디스’를 신청곡으로 보낸다. 자신이 투자한 ‘음악 펀드’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이 노래가 라디오나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많이 재생될수록 제시카의 배당금이 커지기 때문이다.

음악이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해외에선 음악 저작권에 투자하는 ‘음악 펀드’가 주목받고 있다. 10월 1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음악 펀드인 ‘라운드 힐 뮤직 로열티 펀드(Round Hill Music Royalty Fund Limited‧이하 라운드 힐)’가 음악 펀드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업공개(IPO)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라운드 힐의 예상 공모 규모는 약 3억7500만달러(4249억원)에 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음악 저작권을 향한 골드러시의 시작”이라고 정의했다. 외신은 “거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의 성장과 맞물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이동 제한령이 내려지면서 스트리밍 수입이 급증했다”고 했다. 음원이 단순히 팬들을 위한 마니아 성격의 투자 수단이 아닌 장기적인 재테크 수입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음악 펀드란 펀드 회사가 대량으로 매입한 음악 저작권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금으로 나눠주며 운용하는 금융 상품이다. 이때 저작권 수익은 펀드 포트폴리오 내 음악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재생되거나 음반이나 콘서트 DVD가 판매될 때 발생한다. 또한 TV·영화·라디오·게임·콘서트장·카페 등에서 노래가 음원 형태로 재생되거나 그 노래를 누군가가 부를 때도 수입이 발생한다. 즉, 음악 펀드에 들어간 음악을 누군가 음식점에서 틀거나, 후배 가수가 TV쇼에 나와서 그 노래를 부를 때 발생하는 저작권료가 배당금이 되는 것이다.

런던증권거래소(LSE)에 IPO 예정인 라운드 힐은 2010년 만들어진 펀드 회사로 약 6억5000만달러(7377억원)를 투자해 약 12만여 곡의 음악 저작권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셀린 디옹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 브루노 마스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 등 유명 노래들이 이 펀드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운드 힐 측은 9~11%의 연간 수익률과 4.5%의 배당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시장에 상장된 최초의 음악 펀드는 2019년 7월 런던증권거래소에서 IPO를 진행했던 영국의 ‘힙노시스 송 펀드(Hipgnosis Songs Fund)’다. 이 회사는 전 비욘세 매니저인 머크 머큐리아디스가 세운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비욘세, 저스틴 비버 등 유명 가수의 음악 저작권을 매입한 이 회사의 시가 총액은 약 9억6700만파운드(약 1조4400억원‧10월 22일 기준)다.


성장하는 음원 시장…저작권 보호 추세

음악을 투자 수단으로 활용한 상품들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이 매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제음악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음원 시장 수입의 56.1%가 스트리밍 시장에서 나온다. 미국에선 2017년 총 1조 개의 곡이 합법적으로 스트리밍됐으며, 2019년에는 그 수가 두 배가 됐다.

특히 각국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 수익을 보호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음악 투자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역시 2019년부터 음원 수익 배분율은 기존 대비 창작자가 5%를 더 가져가게 돼, 창작자 65%, 멜론 등 서비스 업체 35%가 됐다. 글로벌 시장엔 창작자가 약 70% 이상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처럼 아직 합법적인 음원 다운로드가 많이 진행되지 않는 시장도 고려한다면, 앞으로 개척할 음원 시장의 규모는 매우 커서 투자 상품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음원 투자 시장은 세계적으로 사업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니 무분별한 투자는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 배당률이 약 5%에 머무르며 채권을 대신하는 정도이므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관계자는 “음원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미래 저작권료를 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임은 사실이나, 아직 사업 초기이므로 투자 기업의 투명성과 자금 관리 능력을 더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역시 “아티스트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인한 평판 하락 등 리스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여타 주식처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 정현경 대표
“주식처럼 사고파는 음악 저작권…투자자도 팬덤도 만족”

정현경서강대 경영학 석사, 서울여자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겸임교수
정현경
서강대 경영학 석사, 서울여자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겸임교수

‘라운드 힐 뮤직 로열티 펀드’와 ‘힙노시스 송 펀드’는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여러 음원에 한꺼번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에는 투자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개별 음원에 주식처럼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

2016년 창립된 뮤직카우는 음악 저작권에 대한 청구권을 주식처럼 판매하는 회사다. 음원 창작자인 작사가·작곡가 등으로부터 저작권 일부를 양도받은 뒤, 이 저작권료에 대한 청구권을 주식처럼 쪼개서 매주 평일 경매 형식으로 판매한다. 분할된 저작권 청구권을 구매한 투자자는 주식에서 배당받듯이 매월 저작권료를 정산받는다. 또한 ‘유저 마켓’에서 주식처럼 시세 차익을 남기며 투자자들끼리 청구권을 사고팔 수도 있다. 창작자들은 저작권 양도 시 일정 금액을 받으며, 경매를 통한 상승분의 50%를 가져간다.   

뮤직카우는 이미 발매된 음원만을 거래하는 플랫폼으로, 현재 소찬휘의 ‘Tears’, 빅뱅의 ‘거짓말’, 손담비의 ‘미쳤어’를  포함해 약 630여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 현재 약 17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뮤직카우에서 저작권료가 가장 높은 음원인 강다니엘의 ‘2U’의 경우 연간 수익률이 약 53% 넘게 발생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초창기 투자 시장이기 때문에 한계도 있다. 연간 배당받는 저작권료가 1000~2000원인 음원이 많아 원금 회수까지 10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주식시장에 비해 높은 거래 수수료(1.0~1.2%), 그리고 적은 이용자 수로 인해 개인 간 매도·매수가 쉽지 않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뮤직카우는 음원 시장과 저작권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 4월에는 L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7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코노미조선’은 10월 20일 정현경 뮤직카우 대표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해 음원 저작권 거래 사업의 특징에 대해 물어봤다. 


음원을 투자 수단으로 삼은 이유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발매된 곡들은 음원 차트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가 쌓인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뮤직카우 내부 알고리즘이 향후 수십 년간 발생할 저작권료를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투자자가 저작권 청구권 소유 시 매년 최소 8%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검증된 음악만 선정한다.”

고객은 누구인가.
“크게 둘로 나뉜다. 투자 수단으로 음악을 사는 고객과 가수의 팬으로서 ‘소장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음악을 기념품처럼 사는 고객이다. 이 때문에 매주 경매 때 매우 이상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최저가로 음원을 사기 위해 구매 금액에 낮은 가격을 기재하는 반면, 열혈 팬들은 가장 높은 금액으로 사기 위해 일부러 최고가를 입력하기도 한다. 양분된 시장이다.”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식재산권(IP) 금융을 대중화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음원 펀드의 경우 대중 간의 거래가 주가 아니라 일회성 매입 아닌가. 뮤직카우는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든지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더 열린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