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중국의 한 애플스토어에서 아이가 아이폰을 만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19년 9월 중국의 한 애플스토어에서 아이가 아이폰을 만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중 경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총성이 울렸다. 미국은 30년 넘게 이어온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미국의 대(對)중국 노선은 현 트럼프 정부와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세계 경제 1, 2위인 미·중의 디커플링은 말처럼 쉽지 않다. 최대 복병은 애플이다. 달리 말하면, 애플이 ‘탈(脫)중국’을 이루는 날, 미·중 디커플링도 완성될 것이다.


中 아이폰의 도시, 24시간 풀 가동

세계 최대 아이폰 조립 생산 기지 중국 허난성 정저우. 애플이 10월 13일(현지시각) 공개한 ‘아이폰12’ 출시를 앞두고 폭스콘이 운영하는 공장들은 최근 풀 가동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보너스를 받기 위해 휴가도 반납한 상태. 미·중 갈등은 격화하고 있는데, 중국 내 애플 협력 공장엔 밤낮 구분 없이 일거리가 넘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애플이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중국의 애플 제품 제조 공장은 더 바빠진다. 그게 정교한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다. 아이폰, 아이팟(무선 이어폰),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 조립 공장의 90%가 중국에 있고 서킷 보드, 유리 패널, 배터리, 케이블, 충전기 등을 공급하는 납품 업체의 48%가 중국에 있다.

애플의 협력 업체는 줄잡아 수천 개. 그중 폭스콘(Foxconn), 페가트론(Pegatron), 위스트론(Wistron) 등 대만 제조 업체들이 애플의 핵심 파트너사다. 이들 회사는 중국 공장에서 수십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애플의 아이폰, 에어팟을 조립 생산한다.

2019년까지 애플의 중국 내 공급망은 더욱더 촘촘해지는 모양새였다. 로이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폭스콘의 중국 공장 수는 2015년 19곳에서 2019년 29곳으로 늘어났다. 페가트론의 공장 수도 같은 기간 8곳에서 12곳으로 증가했다. 애플 워치, 아이팟, 홈팟(스마트 스피커) 등의 수요가 늘어 새 공장을 지은 것이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 분석에서는 2019년 애플 200대 납품 회사 중 중국 업체 수(41개)가 미국 업체 수(37개)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런 공급망 체계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 충격이 있었을 뿐이다. 중국 시장조사 업체 CAICT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조한 해외 브랜드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해 2월 코로나19 여파로 50만 대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8월 예년 수준인 250만 대까지 빠르게 회복됐다.


인도는 아직 멀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대만, 중국을 연결하는 획기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애플의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제 애플의 과도한 중국 의존도는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중국은 애플의 제조 기지인 동시에 소비 기지다. 중국인은 연간 400억~500억달러(약 45조~57조원)어치의 애플 제품을 구매한다.

일단 애플은 중국을 대체할 만한 후보로 인도를 꼽고 있다. 인도는 중국에 맞먹는 광활한 땅과 인구를 가졌다. 실제 미국 외교 전략에서도 인도의 가치는 급상승 중이다. 미국은 태평양 국가에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애플의 주요 파트너들은 오랫동안 인도 투자에 난색을 표명해왔다. 공장 설립 비용에 대한 부담, 임직원 훈련 비용, 미비한 인프라, 정부 지원 부족, 규모의 경제 부재 등을 따지고 계산하면, 인도 공장 설립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세가 급변하면서 애플 협력사들의 인도 제조 공장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폭스콘은 ‘아이폰 XR’ ‘아이폰11’ 공장을, 살콤(Salcomp)은 아이폰 충전기 공장을 인도 남부 도시 첸나이에 설립했다. 위스트론도 올해 ‘아이폰 SE’ 추가 공장을 짓고, 페가트론의 한 자회사도 중국에서 인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올해 폭스콘의 인도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 추가 투자 계획 발표는 ‘탈중국화’를 향한 결정적 장면으로 꼽힌다.

하지만, 애플은 인도 제조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더인포메이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엄격한 자체 제조 기준(환경·안전 등)을 충족하는 인도 공장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인도에서 애플의 시장 점유율도 삼성, 샤오미에 크게 뒤지는 형편이다.


“돈이 설명해준다”…중국의 여론전

중국은 제조망과 공급망이라는 애플의 목줄을 쥐고 있다. 애플도 중국의 목줄을 쥐고 있다. 바로 일자리다. 애플은 50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애플의 이용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시도를 저지하는 데 애플을 교묘하게 내세운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8월 애플 시가 총액이 미국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2조달러(약 2291조원)를 돌파하자 “이런 업적은 애플과 중국과의 탄탄한 통합 덕분에 가능했다”면서 “이는 상호 성취를 이루는 이상적인 결혼(ideal marriage)과도 같다”고 논평했다.

이 매체는 상하이에 본사를 둔 앤란캐피털의 천다 상무의 말을 인용, “애플이 사상 최고 평가를 한 것은 중·미 관계 악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월가의 자신감의 증거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애플 이외에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기업으로 테슬라, 퀄컴, 보잉, 스타벅스, 나이키 등을 꼽는다. 탈중국이 미국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을 간접 경고하는 식이다.

특히 테슬라에 대해서는 2019년 엄청난 속도전으로 상하이에 기가팩토리(공장)를 완성, 2020년 상반기에만 4만5800대의 전기차를 중국에 팔았다고 치켜세웠다. 전문가들 사이에 미·중 디커플링의 다음 복병은 테슬라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더 복잡한 문제는 월가

미·중 디커플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면, 현재 애플의 시가 총액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실제로 그런 지적이 미 월가에서 흘러나온다. 공급망 변경에 따른 리스크 증가, 중국 내 매출 감소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가에는 애플의 미래를 낙관하는, 달리 말하면 미·중 갈등 상황을 애플의 리스크로 보지 않는 신봉자들로 넘쳐난다. 뱅가드 그룹, 버크셔 해서웨이, 블랙록 펀드 어드바이저, SSGA, 피델리티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애플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기관들이 미국인의 은퇴 자금을 굴리는 경우도 많다. ‘차이나 리스크’ 때문에 애플 주가가 폭락한다면 기관 투자사는 치명상을 입는 것이고, 그 충격은 미국의 개인들에게 돌아간다. 애플의 탈중국화는 월가 이해관계와도 연결된, 꽤 복잡한 문제인 셈이다. 앞서 중국의 글로벌타임스가 "돈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라고 한 언급은 이 같은 현실 논리에 바탕을 둔 선전전이다.

현재 애플 기기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대신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고 적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했다는 뜻이다. 애플 기기의 생산지 표기는 과연 언제쯤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