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인터내셔널 비어컵 금상 수상(2016), 월드비어컵 심사위원 / 김정하 바네하임 대표가 수제맥주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김정하
인터내셔널 비어컵 금상 수상(2016), 월드비어컵 심사위원 / 김정하 바네하임 대표가 수제맥주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수제맥주 펍 ‘바네하임(Vaneheim)’은 2004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에 수제맥주 열기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보다 훨씬 먼저 북서울 외곽에 펍을 연 것이다. 바네하임은 창업 초기부터 로컬리티(지역성)를 강조한 노원맥주를 만들었으며, 노원구청과 손잡고 노원맥주축제도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노원의 대표적인 명소인 태릉의 색채를 고스란히 담은 태릉맥주(가칭)도 선보일 예정이다.

김정하 바네하임 대표는 노원에서 태어나, 노원에서 줄곧 자랐다. 그래서 창업도 동네인 공릉동에서 했다. 서울의 핫한 펍들이 강남·홍대·건대 등의 지역에 즐비한 것과 달리 바네하임은 1호점인 공릉동 업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펍을 다른 곳에 추가로 여는 대신 지난해 경기 남양주에 양조장(35만L 규모)을 따로 마련해 사세를 키웠다. 펍 업장과 브로이하우스(맥주 양조장)를 겸한 공릉동 바네하임은 신제품 개발 위주, 남양주 양조장은 양산에 적합한 제품 위주로 역할을 나눴다.

창업 16년 차인 바네하임은 다양한 실험적인 맥주를 선보였으며 이 중에는 국제대회에서 호평받은 제품도 있다. ‘봄의 전령사’인 벚꽃 잎을 넣은 ‘벚꽃라거’로 2016년 일본에서 열린 인터내셔널비어컵에서 금상을 받았다. 시즌 맥주인 벚꽃라거는 매년 봄이 오면 내놓는다.

농촌진흥청 과제를 맡아 3년간 연구·개발(R&D) 끝에 기능성 쌀이 25% 들어간 쌀맥주 ‘도담도담’을 내놓기도 했다. 김정하 대표는 “도담도담은 쓴맛은 있지만 향은 거의 없는, 칵테일의 베이스 같은 술이라서 도수가 높은 전통주와 섞어(혼돈주·일명 소맥) 마시기에 좋다”고 말했다. 도담도담은 맥주 전문 펍보다는 전통주점에서 더 인기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한 김 대표는 국밥 프랜차이즈 창업을 꿈꾸기도 했으나, 우연히 수제맥주 매력에 빠져 ‘국내 1호 여자 맥주 양조사’가 됐다. 10여 년 경험을 담은 책 ‘맥주 만드는 여자’를 최근 내기도 했다.


바네하임에서 선보인 맥주 제품들. 사진 바네하임
바네하임에서 선보인 맥주 제품들. 사진 바네하임

바네하임(Vaneheim)은 무슨 뜻인가.
“2004년 오픈했을 때는 맥주 하면 독일밖에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게르만 신화를 뒤져 찾은 이름이다. 바네(Vane·풍요를 상징하는 신)와 하임(Heim·땅)의 합성어다. ‘풍요의 신이 사는 땅’이란 뜻으로, 바네하임을 찾는 고객 모두가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본인만의 장점은.
“요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식자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것이 장점이지 않았을까 싶다. 맥주를 시음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도 남들보다는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맥주의 맛을 표현할 때 식자재를 기준으로 많이 설명하게 되는데, 나는 남들보다 알고 있는 식자재가 많기 때문에 맛을 표현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는 좋았다. 2015년 ‘되멘스 비어 소믈리에’ 과정을 차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쌀맥주 도담도담 반응은.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농촌진흥청 과제로 만든 맥주다. 사실 맥주의 주원료인 몰트는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국산 원료를 쓰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래서 쌀맥주 개발 과제를 맡았다. 처음에 수제펍에 이 제품을 갖고 가니 ‘아로마 향이 왜 없냐?’며 부정적이었다. 기존의 펍들은 미국식 수제맥주에 익숙해 시트라 홉이 많이 들어간, 쓴맛과 향이 도드라지는 맥주를 선호했다. 이러니 향이 담백한 도담도담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주점으로 영업 대상을 바꿨다. 미슐랭 2스타 식당 권숙수, 전통주점인 백곰막걸리 등에 들어가 있다.”

국제대회 수상을 여러 번 했다. 의미는.
“2013년만 해도 수제맥주가 법 규제로 해외로 반출되지도 못했으니, 국제대회 출품 길 자체가 막혀있었다. 그 이후 공청회에서 내가 문제를 제기했고, 국제대회 출품 조건으로 해외 반출이 허용됐다. 국제대회에 출품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내가 만드는 맥주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맥주를 만들었고, 지인이나 소비자는 내가 만든 맥주에 좋은 점수를 매겼지만, 나를 모르는 전문가는 과연 내 맥주를 어떻게 평가할까가 늘 궁금했다. 이런 점에서 국제대회 출품은 내 맥주의 수준을 알 좋은 기회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내 맥주를 개선할 계기도 된다는 점이다. 국제대회 출품작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이 보완점을 지적하게 돼 있기 때문에, 지적 사항(심사위원 피드백)을 받아들여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

‘맥주 만드는 여자’, 출간 계기는.
“나에게 창업 문의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2004년에 창업했으니 이 시장에선 제법 고참이다.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다. 그런데 많은 분이 종잣돈을 갖고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창업의 마음가짐을 갖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책을 냈다.”

노원맥주 등 로컬리티를 강조한다.
“앞으로는 로컬리티를 강조하는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다. 지역 이동을 제약받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고, 지금은 지역에서 작게나마 잘하는 업소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원래 술은 양산하면 맛이 없다. 소규모로 조금씩 맛있는 술을 만들어 지역 범위 안에서 유통하는 것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먼 거리 유통을 신경 안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 술을 만들 수 있는 게 지역 업소의 매력이다. 앞으로는 로컬리티를 창출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좀 더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 한국적인 색채와 지역적인 개성을 제품에 담으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 대응책은.
“우선, 픽업 전문 매장을 공릉동 바네하임 브로이하우스 1층에 새로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는 1·2층을 모두 영업장으로 쓰고 있는데, 1층은 고객이 테이크아웃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작정이다. 혼술·홈술이 일반화하면 고급술에 대한 니즈가 커질 것으로 보고, 맥주와 증류주를 한데 모은 세트 제품도 새로 내놓았다. 이른바 혼돈주 세트다. 칵테일의 베이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쌀맥주 도담도담과 삼해소주(서울의 대표 증류주), 도담도담과 문경바람(사과 증류주) 혼합 세트 제품을 업장에서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