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딜리버리 배달 ‘콜’을 받고 GS25 역삼지에스점에서 기자가 물품을 수령해 직접 도보 배달을 했다. 사진 김지욱 인턴기자
우리동네 딜리버리 배달 ‘콜’을 받고 GS25 역삼지에스점에서 기자가 물품을 수령해 직접 도보 배달을 했다. 사진 김지욱 인턴기자

“GS25 역삼2점. 890m. 중량 1.6㎏. 40분”

‘딩동’ 알람과 함께 메시지가 휴대전화에 떴다. 머뭇거리다가 몇 번을 놓친 경험이 있어, 이번엔 몸이 반응해 바로 배정 버튼을 눌렀다. 10월 5일 ‘우리동네 딜리버리’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 배달원으로 등록했다. 2분 30초 분량의 간단한 동영상을 보니 곧바로 배달원 자격이 주어졌다. 다음 날 오전 11시부터 약 3시간가량 서울 강남 일대에서 편의점 도보 배달에 나섰다.

문자는 순서대로 배송할 물건을 받을 편의점 점포명, 점포에서부터의 배달 거리, 배달 물건의 무게, 배달을 완료해야 하는 시간을 뜻한다. 스팸·컵라면·삼각김밥 등의 음식을 받아 따로 초인종은 누를 필요가 없다는 요구 사항대로 인근 빌라에 비대면으로 배달했다. 주문지에 도착해 물품을 내려놓고 배송 완료 사진을 찍어 보내자 주문자가 집 앞에서 물품을 수령했다. 순식간에 3000원을 벌었다.

두 번째 콜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GS25 역삼지에스점에서 1369m 거리의 고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6잔, 초콜릿, 젤리를 배달 주문했다. 급히 배정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편의점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도착한 편의점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배달 주문과 방문 손님이 겹쳐 배달 준비가 늦어지고 있었다. 촉박한 시간 탓에, 편의점 직원과 합심해 커피를 탔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불과 15분. 걸어가면 늦을 거라는 판단에 편의점 앞에 주차돼 있던 전동킥보드 ‘빔(Beam)’을 빌렸다. 그럼에도 배달 권고 시간인 40분을 못 맞추자 휴대전화에 경고 알람이 떴다. 고객에게 늦는다고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빔 대여료로 3120원을 써, 결국 80원을 벌었다.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은 8월 12일부터 도보 배달 서비스인 ‘우리동네 딜리버리(우딜)’를 시작했다. 소비자가 요기요 앱을 통해 GS25와 GS프레시 상품을 주문하면, 우리동네 딜리버리 모바일 앱에 도보 배달원으로 등록한 사람이 주문자에게 배송해주는 방식이다. 편의점에서 만난 다른 배달원 김진현(가명·47)씨는 “이 동네에서만 30년 이상을 거주해 웬만한 길은 눈 감고도 간다”며 “운동할 겸 용돈 벌이로 도보 배달을 시작했다”고 했다.

편의점 업계에서 ‘도보 배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도보 배달 전문 업체 ‘엠지플레잉’과 손잡고 10월 5일부터 도보 배달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CU는 10월 12일부터 서울 시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도보 배달 서비스를 운영한다. GS25가 점포 반경 1.5㎞ 이내 도보 배달원을 연결해준다면 CU는 반경 1㎞ 이내 도보 배달원을 연결해준다. GS25와 CU 두 곳 모두 5분 내 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문은 오토바이 배달원에게 넘어간다.


왼쪽부터 편의점에 도착해 주문자의 영수증에 붙어있는 고객 주문번호를 ‘우딜’ 앱에 기입하면, 픽업이 완료된다. 배송하는 물품의 정보와 배달 정보가 앱 화면에 표시된다. 배달을 수락하면, 남은 배달 시간과 약도가 나타난다. 사진 김지욱 인턴기자
왼쪽부터 편의점에 도착해 주문자의 영수증에 붙어있는 고객 주문번호를 ‘우딜’ 앱에 기입하면, 픽업이 완료된다. 배송하는 물품의 정보와 배달 정보가 앱 화면에 표시된다. 배달을 수락하면, 남은 배달 시간과 약도가 나타난다. 사진 김지욱 인턴기자

오토바이 배달원 부족 도보 배달이 보완

편의점 물건도 언제든지 집에서 주문 가능한 배달 시대가 열렸다. 기존 편의점 배달 시장은 오토바이를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GS25, CU, 세븐일레븐 모두 오토바이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니스톱, 이마트24도 오토바이 배달 시스템을 검토 중이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9월 배달 건수가 8월보다 120.9% 증가했다”며 “올 초부터 배달 이용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배달 서비스는 추석 연휴(9월 30일~10월 2일)에 반응이 더욱더 뜨거웠다. GS25는 추석 연휴 기간 배달 총이용량이 전월 같은 기간보다 약 47% 증가했다고 밝혔다. 혼자 추석을 보낸 ‘혼추족’ 공완식(26)씨는 “추석 연휴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음식, 생필품 등을 배달시켜 먹었다”고 했다. CU에 따르면 추석 기간 약밥, 잡채 등 추석 음식과 도시락 등의 가정간편식(HMR) 제품이 인기 배달 품목에 꼽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유통업체의 배달 수요가 급증하자 오토바이 배달원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배달 대행 스타트업 ‘바로고’가 8월 30일 공개한 당일 배달 주문 건수는 약 57만5000건으로 7월 마지막 일요일(26일)의 45만7000건보다 25.8% 늘었다. 주문이 밀린 상황에서 여러 건의 콜을 잡는 전문 라이더, 이른바 ‘꼼수’ 라이더가 많아지면서 소비자 사이에서 오토바이 배달원의 배달 속도가 느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보 배달원이 오토바이 배달원보다 배달 속도가 빠른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났다. 엠지플레잉이 지난 8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도보 배달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21분 30초였다. 배달 주문이 크게 늘며 오토바이, 자동차 등 라이더를 통한 주문 대기 시간은 1시간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CU 관계자는 “오토바이 배달원이 주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과 도보 배달원은 면허와 같은 특별한 자격 요건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맞물렸다”며 “배달 잠재 수요가 커지는 상황이어서 도보 배달 서비스가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김규영 엠지플레잉 대표는 “지난해 7월부터 60대 이상 퇴직자를 대상으로 도보 배달원을 모집했다”며 “편의점 외 파리바게뜨 등도 도보 배달원을 늘리고 있어 해당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도보 배달원으로 등록된 사람은 ‘우리동네 딜리버리’ 2만8000여 명, 엠지플레잉 1만3000여 명이다. 그중에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40~50% 정도다. 엠지플레잉이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배달원당 월평균 완료 건수는 38건으로 집계됐다. 배달원 중 한 달에 가장 많은 완료 건수를 기록한 사람은 444건을 했다. 배달 단가는 2000~3200원 정도다.

엠지플레잉 관계자는 “동네 지리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본격적인 부업으로 활용하는 분이 꽤 있다”며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많게는 하루에 30건 이상을 완료하는 배달원도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