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조선미디어그룹 경제 전문 매체 조선비즈는 6월 1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수소 에너지의 미래’를 주제로 ‘2020 미래 에너지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청정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의 경쟁력을 진단하고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각국의 수소 육성 정책에 힘입어 수소 에너지가 이르면 10~20년 내 경제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많은 선진국 정부가 수소 육성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며 한국도 민간 투자를 위한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범중 EY한영 재무자문본부 E&I팀 파트너, 김세훈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 전무, 성백석 린데코리아 회장,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이 6월 18일 서울 중구 소공동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선비즈 주최 ‘2020 미래 에너지 포럼’ 첫 번째 세션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왼쪽부터 김범중 EY한영 재무자문본부 E&I팀 파트너, 김세훈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 전무, 성백석 린데코리아 회장,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이 6월 18일 서울 중구 소공동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선비즈 주최 ‘2020 미래 에너지 포럼’ 첫 번째 세션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미국 수소 트럭 회사 니콜라가 최근 미 증시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니콜라는 상장한 지 4거래일 만에 116년 역사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시가총액을 장중 한때 앞질렀다. 아직 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회사의 주가가 고공 행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까운 미래에 수소연료전지 기반 트럭과 자동차가 도로를 달릴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를 둘러싼 관심은 각국의 수소 육성 정책과 궤를 함께한다. 세계 주요국은 기후 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화석연료를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 경제로 전환’에 힘쓰고 있다. 수소는 연소 후에도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연료이기 때문이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지만, 수소는 연소하면 물이 된다. 수소로 가정집과 건물에 냉·난방을 공급하고 수소연료전지 기반 차량이 도로를 달리는 ‘무공해 사회’ 구축이 최종 목표다.

존 셰필드 미국 퍼듀대 교수는 ‘2020 미래 에너지 포럼’ 영상 인터뷰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인류가 직면한 최대 과제”라며 “수소는 시스템 전반에 걸쳐 근본적으로 에너지 산업이 변화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김세훈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 전무도 기조연설에서 다가올 신재생 에너지 시대에 수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몽골 유목민이 우유를 치즈로 바꿔 오래 보관하고 편리하게  이송한 것처럼,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대량으로 보관하고 운송하기 위해서는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럼에 참석한 수소 전문가들은 수소 경제로의 전환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앞으로 수소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르면 10~20년 안에 수소가 에너지 시스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50년까지 세계 수소 시장이 2조5000억달러(약 3000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누적 30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수소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는 큰 흐름 중 하나로 ‘그린수소’로의 전환을 꼽았다.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석유화학 공정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副生) 수소와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일명 ‘그레이수소’인데, 두 방법 모두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소 자체는 청정 에너지원이지만,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해 물질을 배출하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 분해(수전해)해 얻는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그린수소’로 불리지만, 생산 단가가 비싸 그동안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수전해로 생산하는 그린수소는 1㎏당 평균 10~15달러 수준인데, 이는 천연가스 등에서 추출하는 수소보다 5배 정도 비싸다.

독일, 덴마크 등 선진국은 그린수소의 생산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소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독일은 6월 초 수소 경제 전략을 발표하면서 그린수소 연구·개발에 90억유로(약 12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그린수소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해상 풍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 공원을 짓고 대형 수전해 설비에 투자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그린수소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세계 최대 선사인 덴마크 AP몰러-머스크, 풍력발전 기업 오스테드, 항공사 SAS, 물류 회사 DSV, 해운사 DFDS, 코펜하겐공항 등 6개 기업은 6월 초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2023년까지 풍력 에너지 기반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3(기가와트)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소와 대형 수전해 장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렇게 생산한 수소를 철강·중공업·항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에 적용할 예정이다. 헨릭 폴센 오스테드 최고경영자(CEO)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승용차뿐만 아니라 중공업과 항공업까지 확장 가능한 청정 연료가 필요한데, 그린수소가 그 열쇠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석유 회사 로열더치셸이 풍력 에너지 기반 전력으로 생산한 수소를 중공업에 활용하기 위해 10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 시설을 짓기로 했다.

일본도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시설인 후쿠시마 수소 에너지 연구단지(FH2R)를 지난 3월 완공했다.

‘2020 미래 에너지 포럼’에 참석한 수소 전문가들은 각국의 그린수소 개발 노력이 이어지면서 그린수소의 생산 비용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은 “그린수소의 약점은 재생 에너지원으로 생산할 때 단가가 비싸다는 것이다”며 “그러나 독일에서는 벌써 그린수소가 1㎏당 4000원대까지 내려왔고, 2030년쯤에는 3000원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 셰필드 교수도 “수소 생산량과 유통, 관련 설비 제조가 늘면서 수소 생산 비용이 2030년이면 지금의 50% 수준으로 하락할 전망”이라며 “이렇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수소는 다른 저탄소 에너지원은 물론, 기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원에도 밀리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김세훈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 전무는 “그동안 수소 경제의 중요성을 논의하면서도 결국 경제성 논리라는 쳇바퀴에 갇히곤 했는데, 그사이 경제성은 확보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수소 트럭 회사 니콜라(Nikola)가 공개한 수소연료전지 트럭 ‘니콜라 원(one)’. 사진 니콜라
미국 수소 트럭 회사 니콜라(Nikola)가 공개한 수소연료전지 트럭 ‘니콜라 원(one)’. 사진 니콜라

“수소 인프라 구축, 정부가 나서야”

수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수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려면 수소 생산부터 저장·운송·유통까지 아우르는 수소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민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적 지원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수소 에너지는 잠재력은 크지만 높은 비용과 부족한 인프라, 규제 장벽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소 산업 육성에 나섰다. 여기에 ‘수소 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 관리법(수소법)’ 제정안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수소 산업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재경 연구위원은 “지금 추세라면 2025~ 2030년이 수소 시장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2022년까지는 정부가 책임지고 수소 산업을 육성하고, 2023년부터는 민간에서 투자를 끌어내 시장이 주도하는 수소 경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여건상 한국이 그린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수소를 수입해 경제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세훈 전무는 “한국은 국토가 좁고 신재생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풍력·태양광 에너지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그린수소는 호주처럼 생산 여건이 좋은 국가에서 저렴하게 구매하고, 우리나라는 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을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