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매일유업 사코페니아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분말 제품의 용해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경기도 평택 매일유업 사코페니아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분말 제품의 용해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6월 18일 오후 1시쯤 도착한 경기도 평택의 매일유업 중앙연구소는 외관부터 눈길을 끌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낡은 벽돌 건물에 고급 주택을 지을 때 선호되는 아연철판(징크) 지붕을 얹은 모습이 연구소라기보다 구옥(舊屋)을 리모델링한 연남동 카페 같았다. 실제 이 연구소는 1979년 지어진 평택 공장 지원동을 2016년 새로 단장한 것이다. 현대 건축 기술 덕에 끝나가던 생명을 늘린 과거의 공간. 이날 취재 목적과 묘하게 어울리는 건물이라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두 숟가락 정도 퍼서 물과 섞어보자. 담을 용기는 다양하게 가져와 봐. 머그잔도 좋고, 뚜껑 있는 플라스틱 통도 좋아.”

3층에 있는 ‘사코페니아(Sarcopenia)연구소’에 들어서자 하얀 종이 위에 쌓인 분말을 물에 녹이는 연구진이 보였다. 선임으로 보이는 한 연구원이 비커에 분말을 넣은 뒤 유리막대로 물살을 일으키며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4~5명의 연구자 모두 의자에 앉은 상태였지만, 손과 눈은 긴장한 듯 바삐 움직였다. “제품에 들어가는 가루 형태 영양소가 액체에 얼마나 잘 녹는지 점검하는 겁니다. 성분마다 물에 녹는 정도가 다르거든요.” 동행한 박형수 매일유업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한 연구원은 물이 담긴 머그잔에 분말을 넣었고, 다른 연구원은 플라스틱 텀블러에 분말을 부었다. “소비자마다 제품을 물에 타 먹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커피 타듯 컵에 가루를 넣은 다음 수저로 저어 마시고, 어떤 이는 미숫가루 타 먹듯 텀블러에 넣고 흔들어요. 또 가루부터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부터 붓는 사람도 있죠. 연구소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용해도를 체크하는 겁니다.” 실험 과정을 응시하던 박 연구원이 말을 이어 갔다.

사코페니아는 팔·다리 등을 구성하는 골격근과 근력이 정상보다 크게 줄어드는 근감소증을 말한다. 근육을 뜻하는 사코(sarco)와 부족·감소를 의미하는 페니아(penia)의 합성어다. 매일유업은 2018년 2월 국내 식품 업계 최초로 사코페니아연구소를 설립했다.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맞춰 영유아에게 집중했던 기존 영양식 사업을 생애 주기 전반으로 확장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시니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조치였다.

근감소증에 초점을 맞춘 건 인간이 늙어가면서 맞이하는 여러 질환의 공통 원인 중 하나가 근육 감소이기 때문이다. 사코페니아연구소 소장인 박석준 매일유업 이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근육 유지를 젊은 보디빌더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근육은 혈당 상승을 억제하고 인체의 대사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죠. 근육이 무너지면 생리 반응의 균형이 깨지면서 당뇨나 비만이 쉽게 올 수 있어요. 노인일수록 근육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근육은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에요.”

근감소 연구 조직은 2018년에 출범했지만, 매일유업의 성인 영양식 연구는 그보다 2~3년 먼저 시작했다. “영양 전문가를 영입하고, 시장을 분석하고, 국내외 학술대회를 찾아다니면서 성인 근감소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영양분 조합을 고민했어요. 아주대 등 대학병원과도 공동 연구를 진행했죠. 단백질이 좋다고 무조건 단백질만 섭취해선 안 돼요. 다른 영양소와 조화를 이룰 때 효과가 극대화합니다. 긴 연구 끝에 근육 형성에 직접 관여하는 필수아미노산 ‘류신’과 칼슘·마그네슘·비타민D·비타민B·아연 등을 골고루 섞어야 단백질이 진가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영양 설계 전문 브랜드 ‘셀렉스’입니다.” 박 소장이 창가에 비치된 셀렉스 제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셀렉스 라인업으로는 분말 형태인 ‘코어 프로틴’과 음료 형태인 ‘마시는 프로틴’, 시리얼 바인 ‘밀크 프로틴바’, 체중 조절용 조제 식품 ‘슬림 25’ 등이 있다. 최근 코어 프로틴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코어 프로틴 플러스’를 출시했다. 제품 형태는 다양하지만 ‘셀렉스=성인 분유’로 유명세를 치른 건 홈쇼핑에서 분말 제품인 코어 프로틴이 날개 돋친 듯 팔려서다. 셀렉스는 출시 1년여 만에 누적 매출액 400억원을 돌파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사진 매일유업
경기도 평택에 있는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사진 매일유업
매일유업이 성인 영양식 전문 브랜드로 선보인 ‘셀렉스’. 사진 매일유업
매일유업이 성인 영양식 전문 브랜드로 선보인 ‘셀렉스’. 사진 매일유업

해외선 근손실도 ‘질병’

셀렉스의 성공적인 시장 개척의 배경에는 김선희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매일유업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제품 아이디어 단계 때부터 김 사장이 직접 나서 주간 미팅을 챙겼다. 이 미팅은 60주 차 이상 지속됐다.

“매주 경영진과 대면 미팅을 한 덕분에 브랜드 콘셉트 잡고, 연구소 만들고, 전문가 모으고, 의사 자문단 네트워크 짜는 의사 결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그리고 원료를 한 번에 다 녹였다가 다시 분말로 만드는 ‘웨트 블렌딩(wet blending)’이라는 작업이 있는데, 한 번 하려면 최소 7000만원이 들거든요. 완성도 높은 제품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웨트 블렌딩 테스트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 많이 배려해줬습니다. 식품 회사 연구진이 웨트 블렌딩을 눈치 안 보고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셀렉스 출시 이후 경쟁사들도 성인 분유라 불리는 어른용 단백질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글로벌인포리서치(Global Info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분유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3.3%씩 성장해 2019년 38억9000만달러(약 4조6400억원)에서 2024년 47억4000만달러(약 5조65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세계가 근육 감소를 ‘질병’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도 성인 분유 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예상하게 하는 배경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근육 감소가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은 2016년 사코페니아에 질병 코드를 부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일본도 각각 2017년 초와 2018년 4월에 근감소증 질병 등록을 마쳤다. 국내 보건 당국도 사코페니아와 관련해 질병 등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감소증이 10년 안에 골다공증처럼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 소장은 올해 하반기에 셀렉스 제품군 확장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성인들이 단백질을 좀 더 맛있게, 편하게 먹는 방법을 계속 고민 중입니다. 단백질에 식이섬유·콜라겐 등 다른 영양소를 섞어 다양한 기호를 공략하는 방안에 대해서도요. 국내외 기관·기업과는 적은 양으로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양분 분해 연구 등을 진행 중입니다. 근육 부자가 진짜 부자예요. 모두 근육 잘 간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