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담(落膽)하다’.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리고 마음이 상했다는 뜻이다. 구직 단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scouraged unemployed’를 직역하면 ‘낙담한 실업자’다. 취업을 희망하고 일할 능력도 있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에 아예 구직을 포기한 이들이다. 구직 단념자는 각종 통계 지표에서 실업자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4월 실업자는 117만2000명으로 전월 118만 명에서 약 8000명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고 있지만, 고용 시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4월 구직 단념자는 61만1000명으로 전월보다 2만9000명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하던 경제활동인구는 2773만 명으로 역대 최대로 줄었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는 1699만 명까지 폭증했다. 그중에서도 연이은 취업 실패에 낙담한 실업자가 대거 구직 단념자로 전환된 것이다. 

서울의 모 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지난해 8월 졸업한 이다빈(가명·26)씨는 “차라리 채용 탈락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채용 공고를 기다리다 지쳐 결국 상반기 취업을 단념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항공사 취업에 ‘올인’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존폐 기로에 몰린 것이다. 이씨는 “무급 휴직에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잇따르는 상황에서 신입 채용은 꿈도 꾸기 어렵다”며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항공사와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열심히 했던 대외 활동도 모두 허사가 됐다”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최우진(가명·26)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을 다섯 번,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네 번 떨어지고 나니 이제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며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물류센터 일용직 아르바이트도 요즘엔 사람이 다 차서 일주일에 세 번 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최씨는 “세대주가 아니어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다”며 “당장 다음 달 월세부터 보증금에서 깎일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처럼 ‘첫 취업’을 포기한 20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18만4000명이었던 20대 구직 단념자는 4월엔 21만3000명으로 3만 명 이상 늘어났다. 이는 상당수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중단하면서 사회초년생이 돼야 했던 청년들의 고용 시장 진입이 비자발적으로 지연됐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1분기 평일 평균 채용공고 등록 건수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사태가 경제 전반을 덮친 3월 채용공고 등록 건수는 지난해 3월보다 32.7% 감소했다. 특히 상반기 대기업 취업 문이 좁아진 것 역시 취업 포기로 이어진 원인으로 분석된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800여 명의 신입사원을 정기 공채로 뽑아왔던 KT는 올해 3월부터 수시·인턴 채용제로 축소했다. 지난 1월부터 신입 사원 채용을 진행하던 금호타이어는 두 달 넘게 면접만 기다렸던 지원자들에게 돌연 채용이 취소됐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일자리 문턱이 전례 없이 높아져 청년들이 아예 취업을 포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을 뜻하는 ‘일자리 도착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비용을 감당하고 눈을 낮추면서까지 구직활동을 하기보단 아예 구직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청년층은 임금에 대한 노동 탄력성이 높아 코로나19 등 시장 상황에 장년층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는 가장이자 주 소득자인 40대와 달리 청년층은 지금 당장 어디든 취업해 돈을 벌어야 할 요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명 ‘코로나 세대’라 불리는 20대는 당장 생계가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면 차라리 취업 시장 진입 지연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직업 훈련도 받지 않고 적극적인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타격 ‘문과 취준생’ 더 커

고용 시장에서 이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문과 졸업생들은 코로나19로 더욱 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은행권·관광업 등 그나마 문과 졸업생을 많이 뽑던 업종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은행권 취업을 준비해 온 장민지(가명·26)씨는 “하반기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던 신한은행은 올해 일반영업(문과직무)은 열리지 않고 정보기술(IT)·디지털 직군만 뽑아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취업을 포기한 이모(29)씨는 “비상경 문과 전공 출신에 여자라 코로나 시국에서 취업 가망이 없는 것 같아 포기했다”며 “올라오는 공고마다 문과가 쓸 수 있는 곳은 지극히 적어 극심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관광업계 역시 문과 직무를 위한 신규 채용은 상반기뿐 아니라 하반기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영업, 여행 상품 기획 등 문과 중심 직무에서 공채연계형 인턴을 선발했던 하나투어 역시 올해는 인턴 및 신규 직원 채용 계획이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항공, 투어 등 관광업계가 힘들다 보니 신규 채용은 올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채용이 있어도 IT 직무 위주의 수시 채용일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및 ‘언택트’ 문화가 주요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자연계, 공과계열의 취업률이 높은 디지털, IT업계는 오히려 현재 상승국면”이라며 “반면 문과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종사하는 대면 서비스업 등 여타 분야는 노동 수요가 현저히 줄어들어 이들이 취업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문과 졸업생들은 정부가 5월 14일 내놓은 ‘55만 개 공공 및 청년 일자리 창출 계획’에서도 소외될 확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 중 청년 공공일자리 약 20만 개로 제시된 직무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기업별 특화된 IT 직무 등 IT 직종이 다수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여파를 적게 받은 직종이 취업률을 높이기 쉬워 IT 직무에 청년 일자리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로 산업 구조조정이 빨라졌기 때문에 문과 출신이 더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Keyword

경제활동인구 15세 이상 인구 중 수입이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거나 취업을 하기 위해 구직활동 중에 있는 사람

실업자 경제활동인구 중 경제활동인구 조사 대상 주간에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

비경제활동인구 15세 이상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한 사람. 실업자와는 달리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며 공무원 시험이나 기업 채용이 연기돼 준비만 하고 있는 사람도 포함됨. 

구직 단념자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의사와 일할 능력은 있으나 △근로 조건 등을 고려해 적당한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구직하여 보았지만 일거리를 찾을 수 없어서 △교육, 기술 경험 등 자격 부족 등의 이유로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지 않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