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지앙 예일대 경제학 석사, 우버 인도네시아 담당 매니저, 오포 아시아총괄 / 사진 빔 모빌리티
앨런 지앙 예일대 경제학 석사, 우버 인도네시아 담당 매니저, 오포 아시아총괄 / 사진 빔 모빌리티

“과거 교통 인프라는 마차 중심이었다. 자동차는 오히려 통행에 방해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어떻게 변했나. 도시가 자동차 도로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언젠가 마이크로 모빌리티도 도시 계획의 일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9월 18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난 빔 모빌리티(이하 빔) 대표는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전기 동력의 1인용 운송 수단을 의미한다. 싱가포르 업체 빔은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일환인 전동 킥보드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에 진출 소식을 알린 지 한 달 만에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했다.

빔은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에 현재까지 1000여 대의 전동킥보드를 배치했다. 먼저 이 지역을 선점했던 국내 업체 킥고잉, 고고씽, 씽씽 브랜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공유 킥보드는 처음에는 생소하게 여겨졌지만 보수적인 강남의 금융권 직장인도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애용하는 교통수단이 됐다. 거리를 걷다가 마주치는 보라색 기둥의 킥보드가 빔이다.

앨런 대표는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에서 인도네시아 매니저, 자전거 공유 서비스 오포에서 아시아총괄을 담당했다. 모두 아시아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업무였다. 이 경험을 밑거름 삼아 지난해 7월 예일대 동창인 뎁 강고파데이(Deb Gangopadhyay)와 아시아 최초로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 ‘빔 모빌리티’의 전동 킥보드 ‘빔(BEAM)’이 거리에 일렬로 놓여 있다. 사진 빔 모빌리티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 ‘빔 모빌리티’의 전동 킥보드 ‘빔(BEAM)’이 거리에 일렬로 놓여 있다. 사진 빔 모빌리티

한국 시장 진출 실적은 어떤가.
“진출 두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서비스 수요는 충분하다. 재이용률도 높다.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 우버와 오포에서 경험을 현 사업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에선 현지화 전략이 중요하다. 비교적 국가 간 특색이 유사한 영미권 국가와 달리 아시아는 국가 간 특색이 모두 다르다. 미국 기업이 아시아 지역에 진출해서 애먹는 이유다. 아시아에서 오래 사업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그만큼 현지화 전략에 강한 기업이라는 뜻이다.”

빔은 공유 킥보드계의 ‘그랩(Grab·말레이시아 차량 공유 서비스)’이라 불린다. 미국의 라임과 버드가 전 세계 시장의 1·2위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을 내걸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계 강자인 우버를 제치고 동남아 시장을 선점했던 그랩과 닮은 부분이다.

현재 빔은 한국을 포함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호주·뉴질랜드 등 총 6개국에 진출했다. 라임은 10월 4일 한국에 진출했다.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진출한 아시아 국가다. 버드는 아직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


아시아 현지화 전략은.
“진출 국가의 DNA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 본사를 현지인으로 구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싱가포르처럼 톱다운 의사 결정을 따르는 곳은 정부 당국과 협의하고, 호주같이 시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은 작은 시의회와 개별적으로 이야기한다. 현재 한국에선 시청을 비롯해 여러 유관 기관과 운영 방식을 협의해 나가고 있다.”

한국은 관 주도 교통 체계로 규제가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사업은 규제받기 마련이다. 그만큼 정부와 밀접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빔은 새로운 지역에 진출할 때 규제 당국과 선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기대 수준을 맞춘다. 한국에서도 이미 끝마친 부분이다. 제품 KC 인증을 마쳤고 LBS(위치정보프로그램) 관련 요구사항도 모두 충족했다.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면허 소지자만 빔을 운전하도록 조치했다.”

한국에서 안전사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안전은 중요한 요소다. 빔의 킥보드에는 IoT(사물 인터넷)가 달려 있어 원격으로 킥보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낮 시간에는 시속 20㎞로 이용할 수 있지만 저녁 시간에는 시속 15㎞로 속도를 제한한다(빔은 다른 국내 업체들과 달리 24시간 서비스를 운영한다). 우천 시에는 자동으로 킥보드가 작동을 멈춘다. GPS 기술을 이용해 운행 지역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교통 상황이 혼잡하면 제한 속도를 시속 10㎞까지 낮추기도 한다.”

과거 당신이 근무했던 우버와 오포는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라 분석하는가.
“우버에서 근무했던 입장으로서 동료들이 어떤 부분에서 부족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한국은 문화적 요소나 규제 측면에서 현지화 작업이 정밀해야 하는 시장이란 점이다. 성공적인 현지화를 위해선 하나의 실버 불릿(silver bullet·은으로 된 탄환, 묘책이라는 뜻)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다른 이해 관계자도 전동 킥보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다른 이해 관계자의 밥그릇을 뺏는다는 인식을 주면 안 된다. 그간 모빌리티 업계는 여러 실패 사례를 경험하지 않았나.”

빔은 안정적으로 한국의 모빌리티 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진입 장벽이 높았던 차량 공유 서비스와 다른 점이 있다. 공유 킥보드는 택시 기사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교통수단이 탄생하는 것이다. 공유 킥보드의 대체재는 많은 경우 자가용에 해당한다. 짧은 거리는 자가용 대신 킥보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국가에 진출하면서 공유 킥보드에 대한 시장의 반발감이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히려 과분한 환영을 받고 있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모빌리티 크기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우버에서는 자동차, 오포에서는 자전거 그리고 이젠 킥보드다. 무슨 이유라도?
“(웃음) 좋은 질문인데, 사실 우연이다. 하지만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이 모빌리티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 모빌리티 서비스는 차량 공유가 우선이었다. 우리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한 자동차를 96%의 시간 동안 차고지에 둔다고 한다. 낯선 이와 차를 공유하는 서비스가 충분히 떠오를 만했다. 하지만 여전히 차량 공유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해당한다. 운전자가 차량을 이용자에게 대령하는 시스템 아닌가. 사실 자가용을 소유하는 것보다 매번 기사를 부르는 일에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제 대세는 직접 운전이 가능한 모빌리티 서비스다. 현관문 앞에 놓인 공유 교통수단을 손쉽게 이용하면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자가용을 소유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말이다.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의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이유다.”

앨런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가용 소유권(private car ownership)’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빔의 경쟁 업체를 우버나 오포 혹은 버드나 라임이 아닌 자가용 소유권으로 꼽았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자가용 소유권이다. 우리가 실제 대체하려는 산업으로 명확히 꼽을 수 있다”고 했다. 풀어서 말하자면 자가용을 소유하는 대신 더 작고 개인화한 교통수단을 공유하도록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 계획의 시작이 킥보드다.

빔에서 이루고 싶은 사업 목표는.
“빔이 어느 정도 이용자를 확보하면 플랫폼을 기반으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모빌리티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장 성장이 기대되는 공유 서비스 산업은 역시나 직접 운행 가능한 공유 서비스다. 킥보드 이외에도 전기자전거, 전기오토바이, 소형차까지 모두 시도해볼 계획이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은 미국·중국·유럽에서 2030년 3000억~5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전동킥보드뿐만 아니라 전기자전거, 오토바이까지 모두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에 해당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자가용을 대체할 수 있는 구간은 거리별로 나뉜다. 킥보드는 0.5~2㎞, 전기자전거·오토바이는 2~10㎞, 소형차는 10㎞ 이상 구간을 이용하는 데 제격이다.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다. 대중교통과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결합하는 방법도 있을까.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은 대중교통과 궁합이 좋다. ‘퍼스트 마일-라스트 마일(first mile-last mile)’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퍼스트 마일은 자동차나 대중교통 등을 타기까지 첫 이동 구간이고, 라스트 마일은 이 교통수단에서 내린 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마지막 이동 구간을 의미한다. 이 구간을 효과적으로 이동하는 방안으로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떠오르고 있다. 우버는 지난해 점프 바이크를 인수해 전기자전거 사업을 시작했고, 중국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은 오포와 서비스를 결합했다. 인도 차량 공유 업체 올라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전거 공유 사업 올라 페달을 시작했다.

‘퍼스트 마일-라스트 마일’ 해결책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도시를 개발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수백만 명이 이주했는데 대중교통이 부족하다면?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실제 싱가포르 정부는 전 국민에게 10분 거리의 대중교통 정류장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도보 10분 거리마다 정류장을 만들려면 지나치게 많은 정류장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활성화한다면 정류장을 그만큼 많이 만들지 않아도 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의 또 다른 활용 가능성은. 우버는 식품 배달 서비스 ‘우버 이츠’를 선보였는데.
“이용객이 많아지면 공유 킥보드도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의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이용 빈도가 높다는 점이다. 이용자 기반이 확보되면 다른 기회도 노릴 수 있다. 전자지갑과 같은 사업이 그 예다. 계좌이체로 빔 애플리케이션 계정에 돈을 충전하고 GS25와 같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우선 다른 사업보다 이용객 확보에 100% 집중할 것이다.”

지난 8월 기자 간담회에서 인프라 구축이나 도시 계획을 세우는 데도 모빌리티 산업이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과거 교통 인프라는 마차 중심이었다. 오히려 자동차들은 통행에 방해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세상이 변했나. 도시가 자동차 도로 중심으로 설계된다. 언젠가 마이크로 모빌리티도 도시 계획의 일부가 되는 날이 오지 않겠나. 현재 자동차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도로가 세계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많더라. 우리가 모은 데이터는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 줄 수 있다. 빔은 이용자의 킥보드 이용 방식을 분석할 수 있다. 승차 위치, 주행 속도, 이용 빈도 등 자료가 남는다.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이동 경로를 파악해 추후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할 때 데이터를 제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유 서비스만으로도 교통이 불편하지 않은 시대가 올까. 차를 구매하려는 젊은 사람에게 조언해 달라.
“개인적으로 나는 10년 동안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다. 아버지 차를 10년 전에 종종 몰았을 뿐이다. 요즘에는 대중교통이나 모빌리티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다. 차를 구매할지 여부는 각자의 상황에 맞춰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plus point

‘독일식 킥보드 규제’ 한국도 검토해 볼 만

지헌영 빔 모빌리티코리아 지사장.
지헌영 빔 모빌리티코리아 지사장.

현재 한국에는 킥보드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다. 킥보드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이륜자동차(오토바이)로 분류된다. 이 경우 차도 운행, 헬멧 착용, 운전면허증 보유가 의무 요건인데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현지화에 힘쓰고 있는 지헌영 빔 모빌리티코리아 지사장은 “한국은 스타트업에 우호적인 편”이라면서 “신산업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규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현재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수도(capital)’로 꼽히는 독일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독일은 지난 5월 ‘전동 킥보드 도로주행 규정’을 발표했다. 규정에 따르면 최고 시속 20㎞ 이하의 전동 킥보드를 탈 때는 운전면허증이 필요하지 않고 헬멧 착용도 자율이다. 다만 도로 주행을 하려면 책임보험에 들어야 한다. 킥보드도 제품 사양이 안전 요건에 부합해야 허가받을 수 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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