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호명하는 제인 폰다. 6년 전 칸 영화제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작은 사진)를 입었다. 사진 엘리사브 페이스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호명하는 제인 폰다. 6년 전 칸 영화제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작은 사진)를 입었다. 사진 엘리사브 페이스북

“패러사이트(기생충)!” 2월 9일(현지시각)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할리우드 배우 제인 폰다(82)는 이번 시상식에서 오스카 4관왕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과 함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바로 그가 착용한 드레스 때문이었다. 제인 폰다는 붉은 구슬 장식이 달린 엘리 사브의 드레스를 입고 시상자로 나섰는데, 이 드레스는 그가 2014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입은 옷이었다.

제인 폰다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은 배우이자 사회 운동가다. 미국 워싱턴 D.C. 의회 앞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무단 점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도 여러 번. 지난해 11월에는 빨간 코트를 구매하며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는 그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어깨에 걸친 옷이 ‘마지막으로 산’ 빨간 코트였다. 환경에 대한 신념을 우아하게 드러낸 노(老)배우에게 여론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시상식 레드카펫은 스타들의 화려한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이 순간을 위해 배우들은 몇 달간 공을 들여 옷을 제작하고, 유명 디자이너 드레스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동료들과 눈치 싸움을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드레스라도 다시 입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많은 배우가 미리 짜 맞춘 듯 이전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거나 재활용했다.

영화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 등 주요 시상식을 턱시도 한 벌로 버텨 ‘단벌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턱시도를 만든 영국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동물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패션을 추구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 ‘작은 아씨들’에 출연한 시얼샤 로넌은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입었던 구찌 드레스의 자투리 원단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고, 마고 로비는 새 옷 대신 빈티지 샤넬 드레스를 입었다. 티모시 샬라메의 프라다 신상(?) 옷은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어망으로 만든 재생 나일론으로 제작됐다. 배우들의 드레스코드를 반영한 걸까?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찬 메뉴를 채식으로 준비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그린카펫’으로 바꾼 이유는 그것이 대중에게 멋진 태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화려한 치장과 빠른 유행 대신 환경과 동물 복지 등의 개념을 반영하는 게 더 멋지다고 여긴다. 특히 밀레니얼세대(1981~96년생)와 Z세대(1995년 이후 출생)는 친환경 이슈에 민감하다. 지난해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꼽은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가 대표적인 인물. 시장조사 업체 닐슨에 따르면 Z세대의 62%, 밀레니얼세대의 50%가 지속 가능한 제품에 10% 이상 점진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 SAG 시상식에서 호아킨 피닉스. 모든 시상식에서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를 착용했다. 사진 스텔라 매카트니 페이스북
왼쪽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 SAG 시상식에서 호아킨 피닉스. 모든 시상식에서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를 착용했다. 사진 스텔라 매카트니 페이스북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2011년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파타고니아 광고. 사진 파타고니아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2011년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파타고니아 광고. 사진 파타고니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BAFTA 드레스(왼쪽)의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시얼샤 로넌. 사진 구찌 인스타그램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BAFTA 드레스(왼쪽)의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시얼샤 로넌. 사진 구찌 인스타그램
H&M의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사진 H&M
H&M의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사진 H&M

‘빠른 패션’보다 ‘옳은 패션’, 개념 패션 뜬다

이에 반해 패션은 원유 산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환경 오염을 많이 유발하는 산업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10%, 살충제 사용량의 10~20%, 수질 오염의 20%, 바다로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20~35%를 배출한다. 한 철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 보편화하면서 버려지는 옷도 많아졌다. 지난 20년간 의류 소비는 400% 증가했고, 이 중 80% 이상이 소각장과 매립지로 보내졌다.

문제를 인지한 패션계는 컨셔스(conscio us·의식 있는) 패션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고,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사명을 바탕으로 친환경 의류를 판매한다. 100% 유기농 면을 사용하고, 식용으로 도축된 거위와 오리에서 채취한 충전재를 쓰는 식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옷을 사지 말라’는 광고를 내 유명세를 치렀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은 2012년부터 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단과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가죽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든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선보였다. 2013년부터는 의류 수거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연간 2만5000t 수거를 목표로 한다. ZARA도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원단으로 만들 방침이다.

재판매도 불사한다. 영국 명품 버버리는 지난해 미국 중고 명품 편집숍 더리얼리얼과 제휴해 중고 제품 위탁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개념 패션이 부상하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지난해 500㎖ 페트병 370만여 개를 재활용한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선보였고, K2는 고객들로부터 수거한 다운점퍼 충전재를 재활용해 올겨울 리사이클 다운점퍼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패션계는 신념과 명분에 의한 소비가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