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트렌드가 ‘올해의 차’로 선정한 제네시스 G70. 사진 현대자동차
모터트렌드가 ‘올해의 차’로 선정한 제네시스 G70.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G70(지세븐티)가 미국에서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제네시스 G70를 ‘2019 올해의 차(Car Of The Year)’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로 한국 자동차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년 연초와 연말에 대륙 또는 국가별로 선정하는 올해의 차 시상식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곳이다. 자동차 제조사에는 자사 제품을 폭넓게 알릴 수 있는 홍보 수단이고, 소비자들은 차량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구매 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검증 거쳐 ‘올해의 차’로 선정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 시상식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뢰도가 높다. 1949년부터 시작해 가장 오래된 데다 오랜 시간 공들여 각종 성능을 깐깐히 테스트하는 등 엄격한 검증을 거치기 때문이다. 테스트에 참가하는 자동차 전문가들은 주행 성능과 안전성을 비롯해 디자인과 혁신성, 효율성과 가격 등 모든 부문을 꼼꼼히 살펴본다.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가 자동차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네시스 G70는 이런 테스트를 거쳐 다른 19개 쟁쟁한 경쟁 차량을 제치고 가장 돋보이는 차로 선정됐다. ‘모터트렌드’는 ‘스타가 태어났다(a star is born)’라는 제목과 함께 “한국의 신생 럭셔리 브랜드가 중앙 무대로 강력하게 파고들었다”고 소개했다. ‘모터트렌드’는 “30년 전 현대차가 4995달러의 낮은 가격에 엑셀을 미국에 출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인은 ‘현대’라는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조차 몰랐지만, 지금 제네시스는 BMW 3시리즈의 강력한 대항마인 G70를 만들었다”며 선정 배경을 자세하게 다뤘다.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의 모델이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 중 하나인 럭셔리 스포츠세단 시장에 뛰어든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인 BMW 3시리즈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네시스 G70는 3시리즈를 능가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다. 앵거스 매켄지 모터트렌드 국제판 편집장은 “그동안 도요타, 닛산, 혼다, GM이 3시리즈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을 제네시스가 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G70는 활기찬 파워트레인과 민첩한 차체가 즐거움을 선사하고, 스포티한 외모와 강렬한 스타일, 잘 정돈된 인테리어도 지녔다”며 “조심하라 BMW, 이게 진짜배기다”라고 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제네시스에 쏟아부은 투자가 결실을 거두고 있다”며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 선정을 통해 제네시스의 미국 내 판매가 어느 정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제네시스 G70는 어떨까. G70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봤다. 시승차는 가솔린 2.0 터보 모델이었다.

우선 시승차의 빨간색이 눈을 사로잡았고, 겉모습은 세련미가 넘쳤다. 브랜드의 상징인 육각형 그릴과 보닛 위의 근육질 모양이 역동적이었다. 실내는 치밀하고 고급스러웠다. 퀼팅 패턴의 시트와 가죽 도어, 스웨이드 천장 등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더했다.

시트는 다소 딱딱했다. 좀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G70에는 제네시스 연구진과 서울대 의대가 함께 개발했다는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이 적용됐다. 키와 몸무게 등 운전자의 신체정보를 입력하면 시트와 핸들, 아웃사이드 미러, 헤드업 디스플레이 위치가 자동으로 조정된다.

G70의 제 실력은 도로 위에서 나왔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터보 엔진의 으르렁거리는 엔진음이 좋았다. 운전하는 재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행은 편안했다. 코너도 부드럽게 돌았다. 여유 있는 도로에서 액셀을 밟자 차가 튀어나갔다. 하지만 도로 위에 착 붙어 있는 느낌이어서 불안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주행보조, 전방 충돌방지보조, 차로 이탈방지보조 등 첨단운전보조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이 차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시승을 마무리한 후 내린 결론은 ‘고급 수입차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였다.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 탄탄한 하체, 강력한 주행성능에서 제네시스 G70는 이제 수입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지난달 출시된 제네시스 G90. 사진 현대자동차
지난달 출시된 제네시스 G90. 사진 현대자동차

혁신 통해 세계적 기술력 증명

제네시스 G70는 현대차그룹에 여러모로 상징적인 차량이다.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 5위까지 단숨에 성장했지만 대중차 이미지 탓에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명성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80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럭셔리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대중 자동차 제조사가 제대로 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세울 수 있느냐’라는 의구심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에 비해 뛰어난 품질의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과 가격은 비싸더라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100m 달리기와 마라톤만큼 다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도전한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혁신이었던 셈이다.

2008년 출시된 1세대 제네시스는 그런 의구심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디자인, 주행성능, 안전성 등 모든 항목에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2009년 ‘북미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혁신은 2세대 제네시스에서도 이어졌다. 더 간결한 디자인으로 제네시스만의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사 승용차에 처음으로 상시 4륜구동시스템(HTRAC)도 적용했다.

제네시스가 한 계단 더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 브랜드로 출범하면서부터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2015년 11월 제네시스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기존 현대차에서 판매하던 제네시스를 ‘G80’로, 에쿠스를 ‘EQ900’로 변경해 고급차 시장에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졌다.

제네시스는 최근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맞았다. G90를 출시하면서 드디어 ‘G세단 라인업’을 완성한 것이다. G90는 다양한 측면에서 혁신성을 담았다. 내비게이션을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 자동 무선 업데이트’와 운전자의 습관을 분석해 배터리와 브레이크 패드 관리 등의 운전자 맞춤형 차량관리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지능형 차량관리 서비스’가 돋보인다. 업그레이드된 인테리어의 화려함은 수억원대 럭셔리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제네시스가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품질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것은 신차품질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제네시스는 지난 6월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가 발표한 ‘2018 신차품질조사’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13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중 1위를 차지했다. 미국 고급차 시장을 양분해온 독일과 일본의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진출 2년 만에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제네시스는 신차품질조사 1위, 올해의 차 선정 등을 기반으로 미국 내 판매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히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돼 온 독자적인 판매망인 제네시스 전용딜러를 늘리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100여곳인 제네시스 전용 딜러를 올해 말까지 200여곳으로 늘리고, 내년 1분기에는 총 350개의 전용딜러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1세기는 전통이 아니라 혁신의 힘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철옹성 같은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처음 도전할 때는 무모하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제네시스는 거듭된 혁신을 통해 럭셔리 브랜드의 첫 계단을 이제 밟고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