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국내 통신사들이 회선 증설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넷플릭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국내 통신사들이 회선 증설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둘러싼 ‘망 중립성’ 논란이 뜨겁다. 넷플릭스가 한국형 좀비물 ‘킹덤 시리즈 1’을 선보인 1월 25일 직후 이용자가 급증하며 일부 통신사에서 동영상이 지연되거나 끊기는 현상이 발생한 데서 비롯됐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재발 방지를 위해 부랴부랴 국제 회선을 증설했고, 그 비용은 모두 KT와 SK브로드밴드가 부담했다.

문제는 앞으로 국제 회선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가 ‘킹덤’ 후속 시리즈, 이와 비슷한 대작을 잇달아 내놓을 예정이어서 한국 이용자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다 이들 콘텐츠는 영상 시간이 1~2시간으로 긴 데다 화질도 풀HD 등 초고화질급으로 트래픽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통신망 증설은 불가피하다. 이미 넷플릭스 이용자는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1월 34만 명이던 안드로이드 기반 넷플릭스 앱 국내 이용자가 지난해 12월 127만 명으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국제 회선을 늘리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국내에 캐시 서버를 두는 것이다. 캐시 서버는 통신사의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서버로, 국내 이용자가 자주 찾는 콘텐츠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캐시 서버에 있는 콘텐츠는 국내 망, 이곳에 없는 콘텐츠는 해외 망을 사용해 가져오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에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를 두고 있는 통신사는 LG유플러스뿐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IPTV 단독 서비스를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계약했다. KT와 SK브로드밴드, SK텔레콤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회선을 증설하자니 비용이 부담이고, 캐시 서버를 설치하면 넷플릭스가 이런 설비와 네트워크를 공짜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통신사와 CP 간 입장 차 극명하게 갈려

결국 이는 망 중립성 문제로 귀결된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속도나 망 사용료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터넷을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재로 보는 개념이다.

망 투자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사용자나 콘텐츠 공급자(CP)는 망 관리 책임이 통신사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용자가 매달 인터넷 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인터넷 포털 등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으면 이중으로 비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용자로서는 넷플릭스든 네이버든 모든 서비스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해외 주요 CP와 중소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망 중립성 완화로 인터넷 산업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인터넷 업계는 “망 중립성 완화를 통해 통신사들이 더 많은 사용료를 받게 되면,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통신사들은 자신의 돈으로 망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있는데 CP들이 이 망을 공짜로 사용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무임승차’라고 주장한다. 4차로 도로를 특정 업체의 트럭이 꽉 채웠다면 트럭 수를 줄이거나 도로를 넓혀야 한다. 통신사가 OTT 서비스를 제한할 순 없으니 결국 망 투자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고, 이 비용을 함께 부담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은 망 중립성 원칙을 앞세워 통신사들의 투자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KT 관계자는 “가입자들이 해외 동영상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추세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넷플릭스와 관련해선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외 업체 간 역차별 이슈까지 더해진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16년 기준 망 사용료를 각각 730억원, 300억원가량 낸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와 카카오로 인한 망 부하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모바일 동영상 앱 사용 시간 점유율 86%인 유튜브의 경우, 네이버와 비교하면 망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로선 역차별받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기업은 망 사용료 부담 때문에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외국 기업은 이러한 부담이 없다”며 “이 같은 불공정한 경쟁 때문에 동영상 시장을 해외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중반 국내 온라인 영상 서비스를 주름잡았던 판도라TV 등이 유튜브 등 해외 서비스에 자리를 내준 것도 망 사용료 때문이었다. 대용량 동영상 파일을 온라인상에 올려두고 공유하면 망 사용료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국내 중소 업체가 이를 버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망 사용료는 개별 기업 간 협상을 통해 정한다”며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기업은 통신사와 협상력이 커 망 사용료를 조절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통신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힘의 논리로 전개되는 망 중립성

통신사들은 동영상 트래픽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해외 CP에 적정한 수준의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KT에 이어 SK브로드밴드가 최근 페이스북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기로 하면서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자율주행과 원격의료 등 5G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망 중립성 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다른 국가에서도 통신사들은 망 사용료를 받지만 한국보다 그 금액이 훨씬 적다. 영국 IT 시장 조사 업체 텔레지오그래피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망 사용료는 1Mbps당 9달러 정도지만 미국은 1달러, 유럽은 2달러 수준이다.

망 중립성 문제는 뚜렷한 해법 없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경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원칙보다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게 된다. 지금은 콘텐츠 파워를 앞세운 OTT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언제든 통신사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5G 시대가 본격화하면 지금보다 더 큰 용량의 데이터가 통신망을 통해 오가게 된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망 중립성은 환경 변화에 따라 다르게 보는 것이 맞다”며 “지금부터라도 각 이해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해법을 찾지 않으면, 미래엔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Keyword

망 사용료 콘텐츠 공급자(CP)가 통신사가 깔아놓은 통신망을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이다. 망 사용료를 크게 분류하면 △인터넷 연결을 위한 인터넷 전용회선 요금 △서버와 인프라를 임대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접속료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콘텐츠를 저장한 후 전송하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접속료 △다른 통신사의 회선을 이용하는 비용인 상호 접속료 등 네 가지다. 통신사마다 과금 방식이 다르고 어떤 서비스를 하느냐에 따라 내는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Plus Point

미국은 폐지, 유럽은 유지

해외에서도 망 중립성을 두고 찬반 공방이 한창이다. 망 중립성 개념의 발상지인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해 6월 망 중립성 원칙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5년 FCC 고시로 시행된 지 3년 만이다. FCC는 망 중립성을 폐지한 근거에 대해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불공정하거나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면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망 중립성 의무가 사라지면서 AT&T 등 통신 사업자들이 잇따라 트래픽을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 통신사들이 함부로 특정 앱이나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신규 업체의 진입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FCC의 규제는 받지 않지만 FTC에서 불공정하거나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면 규제받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규제받는 것이다.

망 중립성이 폐지됐지만 아직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내 각 주의 입장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망 중립성 유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망 중립성을 그대로 이어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EU는 2015년 망 중립성법을 통과시켰다. EU 통신규제기관인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는 2016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망 중립성 감시 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는 등 강력한 망 중립성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