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슈즈’의 대중화 시대를 연 디스럽터 2. 사진 휠라
‘어글리슈즈’의 대중화 시대를 연 디스럽터 2. 사진 휠라

“좋든 싫든 2018년은 투박하고 못생긴 스니커즈가 인기를 끌었고, 휠라(FILA)의 디스럽터 2(Disruptor 2)는 우리를 ‘뿅가게 (knockout)’ 만들었다. 톱니 모양 바닥은 ‘대디 룩(dad look, ‘아재’ 패션의 미국식 표현)’을 진화시켰다.”

미국 신발 전문 매체 ‘풋웨어 뉴스’는 지난해 10월 29일(현지시각) ‘2018년 올해의 신발’로 휠라의 디스럽터 2를 선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나이키 ‘에어 조던 1’,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등 풋웨어 뉴스가 선정한 신발은 그 시대를 풍미했다.” 이런 매체의 선택이 휠라의 부활을 알렸다.

휠라는 한때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아재’들의 브랜드, 한물간 메이커, 촌스러움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코타 패닝, 비욘세, 리아나 등 할리우드 스타가 공식 행사에 입고 등장하는 브랜드, 유행을 주도하는 10·20대가 줄을 서서 사는 ‘인싸템(인사이더·insider+아이템·item)’으로 탈바꿈했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다. 우리나라에는 1991년 이탈리아 지사인 휠라코리아가 생기면서 들어왔다. 휠라코리아는 2007년 휠라 이탈리아 본사가 미국 기업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본사를 인수하며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휠라코리아는 주요 고객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빛을 잃었다. 2014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위기에 처했다.

그러던 휠라코리아가 2018년 매출 2조9546원, 영업이익 3571억원을 기록하며 상장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17%, 64% 증가한 수치다. 2016년 봄부터 상품, 유통, 마케팅까지 ‘젊은 브랜드’로 재탄생하기 위한 시도가 낳은 결과다. 휠라가 도약할 수 있었던 비법을 살펴봤다.


포인트 1│레트로(retro·복고)

휠라코리아는 창립 25년 만인 2016년 브랜드 정체성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가면서 레트로(retro·복고)에 집중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패션 업계 금언을 적용한 첫 번째 상품은 운동화였다. 당시 10대 사이에선 테니스화 같은 ‘코트화’가 유행하면서 아디다스 ‘슈퍼스타’ 등이 인기를 끌었다. 휠라는 테니스 관련 스포츠용품을 만들어본 경험을 살려 복고 디자인이 가미된 ‘코트디럭스’를 2016년 9월 선보였다.

코트디럭스는 출시 1년 3개월 만인 2017년 12월, 판매량 100만 족을 기록하며 ‘1분에 한 켤레씩 팔리는 운동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9년 3월 말 기준 코트디럭스의 누적 판매량은 150만 족으로 꾸준히 판매되는 효자 아이템이다. 휠라는 코트디럭스가 지핀 불로 ‘디스럽터 2’라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7년 10·20대 사이에선 투박하고 못생긴, 이른바 ‘어글리슈즈’가 인기를 끌었다. 미국 뉴욕과 유럽에서 열린 패션쇼에는 1960~70년대 유행했던 복고풍 옷과 신발이 등장했다. 휠라는 20년 전에 선보였던 두툼하고 투박한 디자인의 운동화 ‘디스럽터’를 재해석한 디스럽터 2를 2017년 5월 시장에 풀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온라인 쇼핑몰에 1000족 한정으로 내놓은 디스럽터 2가 하루 만에 다 팔렸다.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휠라는 2017년 7월 디스럽터 2를 공식 출시했고, 3월 말 기준 220만 족을 팔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대신증권 유정현 연구원은 “발렌시아가가 2017년 가을 시즌에 ‘트리플 S’로 어글리 슈즈 전성시대를 열었다면, 휠라는 디스럽터 2로 어글리 슈즈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포인트 2│합리적인 가격

휠라의 히트작 코트디럭스와 디스럽터 2의 가격은 각각 6만9000원이다. 휠라는 2016년 봄, 30·40대가 주 고객층이던 브랜드를 10·20대가 찾는 브랜드로 변화시키기 위한 리뉴얼에 들어갔다. 지갑이 얇은 10·20대를 잡기 위해선 합리적인 가격대가 필요했다. 휠라는 소싱(완제품 생산을 제외한 R&D, 샘플 제작 등의 과정)과 유통에서 답을 찾았다.

나이키·아디다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운동화 브랜드는 샘플과 완제품 제작을 자체 공장이 아닌 외부에 맡긴다. 이런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최종 제품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휠라는 2009년 5월 중국에 샘플 제작 공장까지 담당하는 글로벌 소싱센터를 세우고 신발 샘플을 100% 자체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휠라USA에 근무하던 윤근창 사장은 3년 동안 중국 글로벌 소싱센터에 파견돼 현장을 챙겼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소싱센터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구축한 덕분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70% 수준인 합리적인 가격대로 소비자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통 구조를 바꾼 것도 주효했다. 휠라는 백화점, 대리점 위주로 짰던 기존 유통 경로 대신 ‘ABC마트’ ‘폴더’와 같은 편집숍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위해 휠라는 편집숍 유통을 담당하는 홀세일 본부를 2016년 11월 신설했다. 편집숍은 백화점과 달리 입점 수수료, 창고 관리 부담이 없어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브랜드 리뉴얼에 맞춰 공식 온라인몰도 새롭게 단장했다. 10·20대가 온라인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해 온라인 단독 상품을 따로 제작해 팔기도 했다. 휠라 온라인몰 매출은 2017년에 전년보다 10배, 2018년에는 전년보다 3배 성장했다.


휠라 펜디. 사진 펜디
휠라 펜디. 사진 펜디

포인트 3│셀럽과 SNS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FENDI)는 휠라의 빨강과 파랑이 들어간 ‘F’ 자를 패러디한 로고를 넣은 운동화를 선보였다. 휠라와 펜디의 협업은 펜디 측이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국내외 셀럽(유명인사)들이 휠라 브랜드를 착용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로 공유해 휠라의 인기가 높아진 결과였다. 인스타그램에서 ‘#FlLA’ ‘#FILAshoes’를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은 각각 410만 개, 27만4000개에 이른다. ‘#FILAdisruptor2’를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은 25만5000개다.

협업 상품의 판매와 홍보는 펜디가 맡았다. 펜디는 휠라가 얻게 된 젊은 이미지를, 휠라는 펜디와 협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휠라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유정현 연구원은 “스포츠 브랜드의 파워를 판가름할 수 있는 대표 품목이 운동화인데, 휠라코리아 매출에서 운동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22%에서 올해 26%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에서 ‘올해의 신발’로 선정된 브랜드 기업의 주가는 선정 후 1년 이상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휠라는 올해도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