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CJ프레시웨이 MD,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
이승훈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CJ프레시웨이 MD,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

2016년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문을 연 전통주 전문점 ‘백곰막걸리’는 술맛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전통주의 성지’로 통한다. 새하얀 양옥집에 들어서면 백곰을 빼닮은 이승훈 백곰막걸리 대표가 손님을 맞는다.

그는 정말 백곰같이 생겼다. 상의도 가급적 흰 옷만 입는다. 순한 백곰같이 생긴 그의 주량은 ‘말술’이다. 이 대표는 전통주 업계 최고의 마당발이기도 하다. 장소, 시간 불문하고 전통주 주요 행사에 그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지방에서 열리는 ‘찾아가는 양조장’ 투어에 참가하는가 하면 곳곳에서 열리는 지역 명주 선정 심사위원으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주 전문점인 백곰막걸리에서 취급하는 전통주는 300종 남짓 된다. 개점 초기 120종에서 시작했는데, 3년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전국 100여 곳의 전통주 주점 중 압도적 1위다. 2년 전에는 그가 밤마다 찾아다닌 술집 위주로 ‘전통주전문점협의회’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작년에 2호점인 백곰막걸리 명동점을 열었고, 올해부턴 명동점 지하에서 우리 술과 재즈의 만남이란 이벤트도 매달 열고 있다. 막걸리와 재즈는 무슨 상관성이 있을까? 이 대표처럼 전통주 알리기에 몸과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백곰막걸리 신사본점 지하에 양조장 설비를 갖추었지만 술을 빚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백곰은 내가 만든 술을 팔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술을 발굴해서 알리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며 “백곰은 잘 팔리는 한두 종류 술에 집중하지 않고 백과사전, 박물관처럼 다양한 술을 널리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 양조장은 가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대표는 ‘술과 스토리가 있는 재즈 공연’이라는 콘셉트로 우리 술‧재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술과 스토리가 있는 재즈 공연’이라는 콘셉트로 우리 술‧재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백곰막걸리

백곰막걸리에서만 취급하는 술 두 종류만 소개해달라.
“다른 전통주 전문점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술을 2개만 꼽는다면 서울 ‘나루생막걸리’, 장성 ‘장성만리’ 이렇게 들고 싶다. 서울 나루생막걸리는 출시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젊은층 사이에서 핫한 서울 성수동에 양조장을 만들어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의 제자 네 명이 막걸리를 빚고 있다. 특이한 점은 서울에서 난 쌀로 술을 만든다는 점이다. 서울 강서구의 ‘경복궁쌀’이 원료다. 서울산 쌀로, 서울에서 빚는 막걸리라는 점에서 아주 드문 제품이다. 무감미료 제품으로 세 번 담근 삼양주다. 장성 ‘장성만리’는 전남 장성의 해월도가에서 만든 약주로서, 도매가가 2만원이 넘는 꽤 비싼 술이다. 임해월 대표는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제자인데, 연화주 기법으로 만든 술이다. 보통 약주는 3개월 정도 숙성하면 고급술 취급을 받는데, 이 술은 연꽃을 넣어서 6개월 이상 숙성시킬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우리 업장에서 4만4000원에 팔고 있는데, 이 가격대는 사실 다른 전통주점에서 취급하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장수막걸리, 지평생막걸리 같은 대중적인 술은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백곰막걸리 주점은 다양한 전통주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우리까지 이런 대중적인 술들을 취급하면 전체 판매 술의 30% 정도는 이 두 가지 술이 차지해버릴 것이다. 술의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측면과 다른 곳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술을 굳이 우리 매장에서 취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팔지 않고 있다.”

국내 쌀 막걸리와 수입 쌀 막걸리는 맛에서 차이가 있나.
“맛에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면 양조 전문가들도 맞추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원산지로만 술의 품질을 따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전통주는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전통주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전통주에서 원산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백곰막걸리에서는 수입 쌀로 만든 술은 취급하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알밤막걸리 한 종류만 수입쌀 제품이다.”

전통주가 쌀 소비에 어느 정도 기여하나.
“일반 막걸리 한 병에 들어가는 쌀이 대략 밥 한 공기 정도인데, 결국 막걸리 한 병을 마신다는 것은 밥 한 공기 정도의 쌀을 먹는 셈이기 때문에 쌀 소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전체 막걸리 판매량을 보면 엄청난 쌀 소비가 아닐 수 없다.”

쓴맛을 줄이기 위해 아스파탐, 스테비오 같은 감미료를 쓰는 전통주 업체들이 여전히 많다.
“백곰막걸리 주점은 감미료를 넣지 않은 술을 선호한다. 하지만 95% 이상의 양조장이 각종 첨가물을 넣은 제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감미료를 넣은 술을 외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특히 막걸리는 아스파탐을 비롯해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이 많은 게 현실이다. 양조장들이 감미료를 넣는 이유 중 하나가 생산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을 조금이라도 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쌀을 덜 쓰는 대신 쌀 성분이 가진 단맛을 감미료를 넣어 보충하는 것이다. 결국 생산원가를 낮추려고 쌀은 줄이고 감미료는 늘리는 것이다.”

우리 술·재즈 프로젝트는 어떤 취지에서 시작했나.
“술과 스토리가 있는 재즈 공연이다. 우연히 재즈와 관련된 분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재즈와 막걸리가 유사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음악에 있어 재즈는 ‘마이너(소수)’이지만, 마니아층, 골수 팬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막걸리 역시 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강력한 옹호층을 갖고 있다. 둘 다 ‘아싸(아웃사이더)’라는 동병상련 사이라고 할까. 서로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음악과 술은 어울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계획하고 있는 신규 사업은.
“전통주 도매유통 사업을 올 하반기에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백곰막걸리 지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고, 취급하는 술이 300종 가까이 되지만 일 년에 우리가 팔 수 있는 전통주는 매우 적다. 취급 술이 많다 보니, 술 하나하나 판매량은 많을 수가 없다. 우리 같은 전통주점은 양조장 입장에서 술 홍보는 해줄 수 있지만, 양조장을 먹여살릴 정도로 술을 많이 팔기는 어렵다. 술을 많이 팔려고 한다면 프랜차이즈 사업화해서 백곰 매장을 전국에 수백 개 운영하면 될 테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고 기존 전통주 전문점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매장을 늘리지 않고서도 전국의 양조장 술을 많이 팔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다가, 주점 확대 운영보다는 도매유통사업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