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했다. 부동산망국론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권 차원에서 투기를 막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전방위 강공책에도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이들이 적잖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재기, 전매, 알박기, 떴다방을 통한 원정투기 등 유형도 다양하다. 계약서 허위작성, 위장증여, 무허가 거래, 무자격 부동산중개도 한몫 거든다. 가짜 등기권리증으로 대출받으려다 검찰수사관 출신 법무사에 들통 난 사례까지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서울 강남 등지의 아파트값과 일부 지방땅값, 오피스텔·상가·주상복합아파트의 청약과열현상은 ‘브레이크 없는 벤츠자동차’처럼 막 가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투기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예사롭지 않다. ‘전 세계 부동산값은 다 올라도 우리나라에서만은 이를 용납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동산투기는 사회적 암이다’라고 한 이해찬 국무총리의 시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총리는 지난 7월11일 오전 확대간부회의 때 “부동산투기는 조금만 기회가 있으면 발병하는 사회적 암이므로 이번에 반드시 근원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치밀하게 준비, 국민들을 안심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얘기는 명운을 걸고서라도 투기꾼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을 투기열풍으로 몰아가는 이들은 누구며 그 숫자는 얼마나 될까? 정부가 파악 중인 부동산투기꾼 수는 약 5만명. 이들은 은행에서 부동자금을 융자받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투기를 일삼는다는 분석이다. 이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고 투기실상을 파악, 재발을 막겠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환자를 정확히 검진, 치료하듯 부동산투기도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당국이 파악한 투기백태는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집과 땅을 수십 차례 사고파는 건 기본이고 코흘리개 어린애가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아연실색케 한다. 알박기, 청와대 직원 사칭 투기꾼까지 설쳐 기가 찰 노릇이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 경제검찰청에 비유되는 국세청이 드디어 나섰다. 전국 세무공무원의 절반 이상을 동원, 투기꾼 잡기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중순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장실. 이주성 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청와대의 강한 의지를 설명하며 세무행정력을 총동원해서라도 투기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국세청장 회의, 전국세무서장회의가 잇달아 열리고 드디어 작전개시의 비상벨이 울렸다. 이번 기회에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태세로, 가히 투기와의 전쟁 수준이다. 



 투기꾼들의 기본메뉴 ‘아파트 투기’

 국세청이 맨 먼저 칼을 빼든 대상은 아파트투기꾼. 아파트투기혐의자로 국세청 조사망에 걸려든 사람은 모두 457명. 이들의 탈세를 추적, 투기바람을 가라앉혀보겠다는 노림수에서다.

 현장을 뛰고 있는 국세청 단속반들이 들려주는 투기꾼들의 ‘기본 메뉴’, 아파트투기 백태부터 살펴보자.

 서울 강남에 사는 무속인 김모씨(56). 그는 요즘 죽을 맛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옥죄어오는 국세청 조사망에 전전긍긍이다. 정밀 세무조사로 여름휴가는커녕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엉망이다. 그는 세무당국의 자금출처조사를 피하기 위해 사들일 아파트나 상가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수법으로 투기를 일삼다 적발됐다. 남의 앞날을 점쳐주는 운명상담소 대표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꼴이 됐다.

 김씨의 아파트투기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부터 올해 4월까지 본인 이름으로 아파트 29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자녀 3명 앞으로 7채나 더 사들였다. 여기에다 상가도 투기목록에 보탰다. 자신 명의로 3채, 장남이름으로 1채를 매입했다. 김씨가 아파트·상가 구입자금을 마련하려고 근저당권 설정을 통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금액은 약 134억원. 

또 다른 투기사례는 영세사업자의 아파트를 노려온 고리사채업자의 경우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가정주부 김모씨(50). 김씨는 의류제조업과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남편 이모씨(55)의 탈루자금으로 고리사채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2003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영세사업자들에게 높은 이자의 사채를 빌려주고 담보조로 이들 사업자의 수도권 지역 아파트 56채(시가 약 80억원)에 대해 매매예약 가등기를 했다. 그녀는 자금사정 악화로 사채를 갚지 못한 영세사업자들의 아파트 5채(시가 25억원)를 헐값에 사들인 뒤 아파트값이 치솟자 3채를 단기 양도해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양도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현재 김씨가 실질적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등기 상태인 아파트는 50여채. 시가로 따져 60억원쯤 된다.

 국세청은 최근 서울 강남권에서도 고가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등 전형적인 투기세력이 있다고 보고 김씨에 대해 정밀세무추적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순위 청약을 노린 위장 분가는 투기꾼들 사회에선 피라미에 속하지만 투기꾼임엔 틀림없다.

 서울과 용인에 자신과 남편 이름으로 집을 두 채 갖고 있는 가정주부 K씨(53)는 대학생 아들 이름으로 청약예금에 가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가을 아파트분양 1순위 청약자격이 강화되자 아들의 주민등록을 경기도 분당 친척집으로 옮겼다. 한 집에 살면서도 나중에 아파트를 한 채 더 분양받기 위해 주민등록상 2가구로 만든 것이다. K씨처럼 아파트분양을 위한 위장 가구분할이 늘면서 2002년 이후 가구수가 인구보다 5배 정도 더 빠르게 늘고 20대의 주택보급률도 10%포인트 뛴 것으로 나타났다. 속칭 떴다방들의 부추김과 부동산가 큰손들의 장난질이 이런 현상을 낳은 것이다.

 이동식 부동산중개업소인 떴다방의 투기수법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연봉 1억원짜리 전화상담원을 고용, 부동산투기를 조장하고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면서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 ‘부동산컨설팅’ 등의 간판을 걸고 부동산투기를 부추긴 떴다방 12곳을 급습,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5곳에 대해 105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3곳에 대해선 조세포탈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자본금 규모가 5000만~2억원에 불과한 이들 떴다방들은 실거래액의 10%만을 계약금으로 내는 부동산시장 관행을 악용했다. 100억원이 넘는 집, 땅, 빌딩, 상가를 소액으로 사들인 뒤 값을 2~4배 부풀려 팔아 시세차익을 챙기다 덜미가 잡힌 것. 투기대상지역은 주로 △경기도 용인, 화성 △충남 서산, 당진 △충북 청원 등 수도권과 행정도시 후보지역에 몰렸다. 더러는 강원도 양양, 전남 여수·신안 등 전국 개발예정지도 투기대상에 들어 있었다.     



 치고 빠지기식 잦은 거래

 이들 업소 대표들은 사들인 땅을 되팔기 위해 적게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전화상담원을 고용, ‘투자자 사냥’에 들어갔다.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 등 소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집과 사무실에 밤낮을 가리기 않고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작업을 벌였다. 상담원들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 ‘재테크 정보를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한번 걸려든 사람은 갖은 수법으로 놓치지 않으려고 매달린다. 자신들을 추적 조사하는 국세청 부동산 투기단속요원과 검사, 경찰서장에게까지 전화작업을 벌이다 혼이 난 경우가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아파트 못지않게 땅투기도 도를 넘고 있다. 가장 많이 써먹는 투기수법이 나이 어린 자녀나 손자·손녀 이름으로 땅을 사들이거나 단기차익을 노린 미등기 상태의 되팔기다. 건설교통부 조사자료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난해 가을 미성년자 땅매입자는 전국적으로 256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288차례에 걸쳐 18만3000여평의 땅을 사들였다. 이중 두 번 이상 땅을 산 미성년자는 22명으로 집계됐다.

 구체적 사례로 서울에 사는 7살짜리 아이가 땅을 산 일을 들수 있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부동산가에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이 어린이는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임야 1만평을 사들여 ‘꼬마 땅부자’로 소문이 파다했다. 아이 부모가 산을 매입, 자녀 앞으로 명의를 올려놓다 걸려든 경우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H군(16)도 마찬가지다. H군은 충남 홍성군의 임야를 세 차례에 걸쳐 8489평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학생인 H군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땅부자가 돼 있어 조사요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I군(16) 역시 대동소이하다. 경기도 양평 지역에 있는 임야 5000평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중학생 토지투지꾼’으로 오해받았다. 이 학생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돼 있어 조사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땅투기꾼들의 또 하나 특징은 치고 빠지기 식의 잦은 거래. 물주를 잡아 일단 후려치기로 싸게 땅을 사들인 뒤 몇 배씩 값을 부풀린 뒤 되파는 행위다. 이른바 단타 전매행위다. 당국이 파악한 두 번 이상 땅거래자는 1만7614명. 이들이 4240만평의 땅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잦은 땅거래자 중 11회 이상 거래한 사람은 34명. 경기도 양평에 사는 A씨(27)의 경우 양평군 지역의 농지와 임야를 65차례 매매했다. 그런 식으로 그가 사들인 땅은 12만173평. 한 번에 평균 2000평 가량 땅을 샀다는 계산이다.

 투기꾼들 중에는 대규모 땅을 매입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1만평 이상 땅을 거래한 경우는 1249건. 한꺼번에 수십만평을 사들이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대전에 사는 D씨(66)는 충북 보은군 지역의 임야 53만8056평을 사들여 적발됐다.

 서울의 E씨(54)는 경기도 가평군 지역과 충북 영동군 지역 임야 35만8540평을, 인천에 사는 F씨(47)는 경기도 여주군 지역 논밭과 임야 16만9675평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땅은 투기백화점

 서울에 사는 J씨(40)의 경우는 위장증여 수법으로 투기를 하다 걸려들었다. 그는 경기도 이천시 임야 등 9만7524평의 땅을 17차례에 걸쳐 증여방식으로 취득했다. 그러나 단속반은 J씨의 이런 수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지거래허가제를 피하기 위한 위장증여로 보고 정보자료 수입과 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땅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잇자 ‘농사꾼 증명’을 떼어주는 시골마을 이장이 최고 실세로 등장하고 딱지용 무허가 건물들과 조립주택들이 줄줄이 생겨나고 있다. 웬만한 개발지역의 경우 땅주인의 50%가 외지사람들이고 전입자들이 하룻밤새 수십 명씩 불어나는 일도 다반사다. ‘투기박람회’, ‘투기백화점’이란 소리가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땅부자 상위 1%가 전체 개인소유 땅(5만7200㎢)의 51.5%(2만9400㎢), 상위 5%가 전체의 82.7%(4만7300㎢)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세 미만 미성년자의 보유땅 면적도 상당하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개인 땅 중 미성년자 소유 토지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21배(179㎢)에 이르는 것으로 행정자치부 부동산정보관리센터는 파악하고 있다. 더욱 놀랄 일은 10세 이하 어린이가 여의도 면적의 5배인 42㎢의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땅투기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탕을 노린 ‘알박기’ 투기꾼들도 자취를 많이 감추긴 했지만 물밑에서 찬스를 노리며 먹잇감이 될 만한 땅 찾기에 나서고 있다. ‘알박기’란 고가 보상을 노리고 택지개발지에 요지의 자투리 땅이나 한복판의 소규모 땅을 잡아놓아 건설업체가 이들의 땅 때문에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를 일컫는 부동산가 은어다.

 이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나자 건교부가 손을 쓰기 시작했다. 올 들어 지난 1월 알박기 근절이 시급하다고 보고 새 주택법을 만들어 공포한 것이다. 알박기 투기꾼들이 꼬리를 감추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지역에선 합법을 가장한 알박기 투기꾼들이 택지개발지를 기웃거리며 잠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의가 요망된다.



 하반기 해외원정투기 엄단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들려주는 알박기 투기수법은 이렇다.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K씨. 지난해 봄 아파트 사업지구에 포함된 자신의 땅 10평을 끝까지 팔지 않고 버티다 결국 시세(500만원)보다 100배 가까이 비싼 4억9000만원에 땅을 건설업체에 넘겼다. 매각설득을 계속해온 건설사는 K씨 땅 때문에 터파기는커녕 공사에 들어갈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가매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자연녹지로 개발이 불가능한 다른 사람의 땅을 상가건축 예정지라며 ‘묻지마’식 투기를 유발, 100억여원을 가로챈 부동산개발업자도 있다. 부동산 분양대행업체 R사 대표 이모씨(44)는 경기도 파주 신도시 개발예정지 안의 A사 소유땅 1만여평을 ‘상업지로 개발예정인 곳’이라며 투기세력을 부추긴 뒤 아무 권한 없이 62명에게 사기분양, 100억여원의 토지대금을 가로챘다 검찰에 잡혔다.

 그린벨트 등 개발제한구역을 훼손하면서 공장과 창고를 짓고 이를 전매하거나 임대한 투기꾼, 자격증도 없이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행세를 하며 전주와 손잡고 집 땅을 대량 사들이는 투기꾼들도 있다.     

 이처럼 조사단속이 강화되자 외국 부동산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투기꾼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세청이 미국 LA, 뉴욕 등 해외에서 부동산을 사들인 사람들 중 탈세혐의가 있는 32명을 기획조사 대상으로 삼아 추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자금을 조성한 뒤 외국으로 돈을 빼돌리거나 해외투자를 가장, 자금을 불법유출한 혐의가 짙은 9명(기업 포함)에 대해 지난해 가을부터 뒤를 쫓고 있다.

 하반기 들어서 중국, 홍콩, 일본, 유럽 등지로까지 해외원정 투기가 있을 것으로 보고 국세청, 검찰청, 경찰청, 건설교통부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 대사관에 나가 있는 세무관, 건설관을 비롯한 주재공무원들의 동향보고와 정보자료 수입을 대폭 강화하면서 금융당국을 통한 국외송금관련 외환관리를 강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