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수요공급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세금이나 거래 규제를 통한 정책은 일시적인 효과만 나타낼 뿐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하기 때문에 공급 확대만이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 속에는 몇 가지 사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호도하는 측면이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자. 공급곡선은 우상향하고 수요곡선은 우하향한다. 하지만 수요곡선이 우상향하는 구간, 즉 가격이 올라가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수요(투기 수요)가 있을 때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공급이 늘어나면 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여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가수요가 있는 경우 공급이 늘어나도 균형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게 된다.

 판교가 좋은 예다. 판교발 집값 상승의 원인은 판교의 분양가가 얼마이고 입주 후 얼마까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주변의 아파트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호가가 상승한다. 따라서 분양가격은 중요치 않다. 아무리 비싸도 그 이상은 나가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평당 1500만원의 분양가는 결코 호락호락한 가격이 아니다. 그러나 2000만원, 아니 그 이상이라 할지라도 분양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만일 판교급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고 치자. 공급이 늘어나 시장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투기판을 제공하는 모양새가 나올 것이다.

 한 번 더 원론적인 얘기를 해보자. 공급곡선은 일반적으로 우상향하지만 특수한 재화, 즉 부동산은 수직의 모습을 나타낸다. 토지는 한정되어 있어 가격이 올라간다고 공급이 늘어나거나 가격이 내려간다고 해서 공급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의 균형가격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설명은 토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다행히 우리의 경우 부동산은 대체로 아파트를 의미한다. 그래서 충분히 공급을 늘릴 수 있으니 토지와는 다르고 일반 재화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다(토지도 사용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가용토지를 늘리자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아파트를 공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급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분당 등 5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었다는 점을 자주 사례로 든다. 200만호 건설 당시 아무리 주택난이 심각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물량이면(서울시민을 1000만명, 4인 1가구를 기준으로 단순계산해보면 250만 가구다) 일시적이나마 투기수요를 잠재우기에는 충분한 물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정권 시기도 아니고 이런 초대규모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가 어디 있는가? 결국 공급 확대란 미명하에 서울에서의 공급 확대는 필연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특히 강북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니 강남 재건축을 완화하자거나 강남대체 신도시를 건설하자는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더불어 중대형 평형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 재건축 소형 평형 의무비율을 완화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실시되고 있는 일련의 재건축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건축 규제책이 나옴으로써 사업이 지연되고 그 비용은 다시 일반 분양가에 전가되는 양상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재건축이 필요한 곳은 현행 법규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빨리 진행시키는 편이 나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재건축 규제책이 실시되고 있는 만큼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기존 정책을 완화시킨다면 오히려 투기 수요를 부추길 염려가 있는 만큼 현 정책 수준을 유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아파트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수긍하지만 공급 확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내재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어떻게 효과적으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용되었던 중(重)과세 정책, 국세청 세무조사, 각종 거래 규제 등은 수요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이었지만 단기적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주택에 대한 관념이 소유에서 이용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남은 수요가 풍부하다. 그렇다면 왜 강남에 수요가 풍부한가? 편리한 교통, 편의시설과 문화시설, 쾌적한 환경, 경제의 중심지, 교육 환경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남 소재 ‘고교 동창생’프리미엄

 그렇다면 강남의 교육 프리미엄은 얼마나 될까? 수치화·계량화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1억원 이상은 되지 않을까 추측한다. 언젠가 상담 도중 고객으로부터 ‘강남의 성골’이 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고 대답하자 고객은 ‘봉은초중학교를 거쳐 경기고에 다니는 청담동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친밀함을 느끼곤 하는데 고교 동창이란 더욱 공고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자라 온 친구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고교평준화 이후 특정 고교의 명문대 진학률과의 상관관계는 없어졌지만 특정 지역(강남)과의 비례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강남에 살아야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고등학교에 배정받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빚을 내서라도 강남에 살려고 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한 공급 측면에서의 접근은 효과가 적다. 주택 공급량이 얼마나 될까? 유감이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아파트, 다세대, 연립주택에 관한 통계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다가구 주택에 몇 세대가 거주하는지 오피스텔과 원룸에 사는 가구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관해서는 정확한 수치 파악이 어렵다. 과장해 말하자면 주택보급률, 자가보유율은 어떤 통계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순 없는 일이지만 전세가격의 폭등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역전세난이 문제일 정도로 임대시장이 안정되어 있다면 외형적으로나마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택이 없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교육에 관한 무임승차’가 도사리고 있다. 

 가격이 단기에 너무 많이 올라 떨어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교육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고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가격은 그다지 중요치 않으며 비록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라도 가장 안전한 투자처가 된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교육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강남불패의 신화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공부를 잘해야지 인근에 산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기고를 가기 위해서는 공부 잘하는 것이 소용없다. 강남에 산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