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위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삼성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뒷걸음질 치는 국내기업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삼성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이 삼성전자를 적대적 M&A(인수 및 합병)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이 이참에 승기를 확실하게 잡으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연 삼성은 현재 위기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기회에 놓여 있는가.

 “설마 했는데….”      

 지난 6월30일, 삼성이 공정거래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자 공정위의 한 간부가 내뱉은 첫마디다. 밖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삼성은 지난해 재벌 소속 금융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에 대해 의결권 제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이 추진되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수차례 공정위에 전달한 상태였다. 공정위는 그동안 여러차례 굵직한 사안을 놓고 삼성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렇게 위헌소송까지 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삼성의 역공, 공정위 ‘반재벌’ 부추겨

 사실 공정위와 삼성의 ‘악연’의 뿌리는 공정거래법 태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정위와 삼성의 악연을 따지기에 앞서 최근 삼성에 대한 공정위의 시각변화를 잠깐 살펴보자.

 ‘삼성공화국’ 논쟁이 한창 가열되던 지난 6월 중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간부는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삼성을 공화국으로 표현하면서 공격하는데, 공정위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삼성이 재벌 중에서는 공정거래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봐요. 삼성이 돈을 많이 벌고 다른 기업들보다 월등하게 앞서간다고 해서 뒷다리를 잡으면 안 되지요.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벌을 하면 되고요.”

 뜻밖의 발언이었다. 그는 삼성 같은 기업이 잘나가고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면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국경제에서 삼성의 역할은 나름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호의적 시각이 공정위 내부에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공정위는 삼성으로부터 헌법소원이라는 공격을 당했다. 당연히 삼성에 대한 공정위의 시각은 이후 싸늘하게 바뀌었다. 공정위의 야심작으로 불리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소송은 공정위가 일찍이 어떤 기업으로부터도 받아보지 못한 차원의 도전이었다. 삼성의 도전은 시장개혁 로드맵이 어느 정도 작동한 뒤에는 정책의 무게중심을 담합이나 독과점, 하도급 부정 등 경쟁 촉진 쪽으로 전개해나가려던 공정위의 ‘진로 로드맵’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약 일주일 뒤인 지난 7월7일 정부과천청사 제2브리핑룸에서는 공정위가 뿌린 ‘대기업집단(그룹) 소유 지배구조분석’ 보도자료에 대한 기자 브리핑이 있었다. 이날 공정위가 겨냥한 것은 삼성이었다. 재벌 총수 일가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진부한 사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날 작심한 듯 지난 1년 동안 계열사 지분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과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출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이 삼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공정위와 삼성 간의 싸움이 앞으로 그리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공정거래법 탄생 배경엔 삼성이 중심

 공정위와 삼성의 악연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간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제도는 지난 1963년 발생한 이른바 ‘삼분(三紛)사건’을 계기로 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분사건’이란 당시 밀가루겮냑햨시멘트 등 이른바 삼분을 생산하던 독과점기업들이 담합해 가격을 인상, 폭리를 얻고 세금을 탈루한 사건이다.

경제개발 붐으로 물가가 급등하던 시기에 이 같은 기업들의 행태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특히 당시 삼분 중 이분(설탕, 밀가루)을 만들고 있던 삼성은 여론의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이 ‘삼분사건’은 지난해 5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한 대학의 초청강연에서 재벌개혁과 공정거래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거론하는 바람에 향후 삼성이 재벌개혁의 타깃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독과점 폐해가 드러나면서 공정거래법 도입이 추진됐지만, 소비자 보호보다 기업 육성이 더 긴요하다는 주장과 재계의 반발에 밀려 1966~71년까지 네 차례나 국회를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삼성 등 주요 대기업들이 법안 통과를 무산시키기 위해 대(對)국회 정지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법안이 빛을 본 것은 삼분사건 이후 무려 12년이 지난 1975년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삼성은 이후로 쭉 공정위의 일상적인 피감독 대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구조개혁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외환위기의 주원인으로 재벌의 ‘황제식 경영’과 계열사간 순환출자구조 등에 따른 ‘선단식 경영’을 지목하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 오너 패밀리와 관련한 지배구조 개혁이 공정위의 주요임무가 됐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엔 재벌개혁론자인 강철규 시립대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장개혁 로드맵이 추진되는 등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들이 한층 강화됐다.

 이 와중에 공정위는 삼성의 후계구도와 관련한 변칙상속 혐의에 칼을 댔다가 뼈아픈 일패를 당한다. 바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이다. 

 지난 1999년 2월 삼성SDS는 당시로서는 신종 금융상품의 일종이었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씨 등 자녀들에게 넘겼다. BW는 채권이면서 기업이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까지 붙어 있어 신주인수가격을 낮게 책정한다면 인수자가 큰 차익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당시 비상장사인 삼성SDS 주식의 장외 거래가격은 5만5000원선. 그러나 삼성SDS는 230억원어치의 BW를 이재용씨 등에게 팔면서 321만여주의 주식을 주당 7150원에 인수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을 붙였다. 예상 자본이득은 1500억원대.

 공정위는 1999년 9월 이 같은 거래에 대해 계열사가 총수 일가에게 부당지원한 것으로 보고 과징금 158억원을 부과했다. 삼성은 이에 불복, 당시 비상장사 주식가치산정의 기준이 됐던 상속증여세법 등 관련법령과 절차에 따라 BW가 발행됐다며 과징금 취소소송을 냈다.

 5년이나 끌었던 재판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삼성측 손을 들어주면서 끝이 났다. 그렇다면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준 논리는 무엇일까. 판결내용을 주목해볼 만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재용씨 등에게 BW를 (헐값에) 매각함으로써 부의 세대간 이전이 가능해지고, 경제력이 집중될 기반이 조성될 여지가 있다”며 문제점을 명백하게 지적했다. 편법상속 혐의도 상당 부분 있는 것으로 봤다. 삼성이 대법원에서 승소하고도 판결문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삼성 편을 든 결정적 이유는 이 거래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으로 제재하려면 법 23조의 ‘공정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입증돼야 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재용씨 등이 계열사로부터 지원받은 자산을 다른 계열사에 투자하는 경우 같은 사례가 있어야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는 “사상 최악의 판결”이라며 “재벌 2·3세들이 계열사 경영진의 부당한 도움으로 엄청난 자본이득을 얻더라도 그것을 다른 계열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단 말이냐”고 강력하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두 달 뒤 서울행정법원은 이 건에 대해 삼성SDS가 총수 일가 등에게 신주인수권을 ‘증여’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 것은 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사안에 대해 법원이 공정위의 부당지원 판단은 잘못이라고 봤고, 국세청의 세금부과는 타당한 것이라고 본 셈이다. 지금도 공정위는 이 판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세금 없는 대물림도 잘못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도록 계열사가 부당지원한 것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은 법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라는 것이다.  

 삼성과 공정위는 이처럼 법정에서 소송을 통해 서로 맞붙기도 했지만 때로는 좋은 지배구조와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리싸움과 심리전을 벌이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삼성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기 시작한 2003년 말부터 삼성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지 시작했다. 공정위는 순환출자구조나 총수 일가의 적은 지분 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데 비해 삼성은 그룹 내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 리포트와 해외 유명매체 기사 등을 적극 활용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정부·재계 헌소결정에 촉각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과 적용의 필요성, 지배구조의 선진화 등을 강조하는 리포트를 내다가 지난해부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매몰될 필요는 없으며, 한국형 지배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소유 지배구조 왜곡을 질타하면 삼성은 대주주가 소유권보다 높은 지배권을 행사할 때도 순기능이 발휘될 수 있으며, 소유와 지배의 괴리도가 낮을 때보다는 일정 수준에 있을 때 기업성과와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내용을 언론에 제공했다.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정답이 없다는 삼성의 논리는 언론에 상당히 잘 먹혔다.

 지난해 <뉴스위크> 유럽판을 번역해 대대적으로 언론에 제공한 일은 삼성그룹의 시각을 잘 반영한다. <뉴스위크> 유럽판은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 조사에서 가족경영이 미국식 경영모델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공정위와 삼성은 이처럼 티격태격 논리싸움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월 삼성의 석유화학 계열사인 삼성토탈은 현장조사를 나온 공정위 직원으로부터 서류를 빼돌려 공정위를 크게 자극하기도 했다. 그룹 고위층에서 삼성토탈의 행동을 질책한 것으로 봐 계획된 행동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도 처음에는 위신 문제 때문인지 쉬쉬하다 언론에 사실이 보도되자 서둘러 과징금 부과 등 조치를 취했다.

 삼성이 최근 공정거래법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의 결과가 만약 위헌판결로 난다면 공정거래 관련법 중 재벌을 제약하는 상당수 내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삼성의 이번 헌소는 이미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것으로 봐야 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5월 공정위와 재경부는 물론 청와대에까지 진정서를 냈다”며 “특히 공정위에는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확대 내용이 담긴 법 개정이 이뤄지면 헌소를 제기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전달했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 무렵 아주 중요한 문건 하나를 구조조정본부에서 작성했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될 경우 삼성전자가 받을 경영권 위협과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라는 스코틀랜드 펀드의 삼성물산 지분 4.99% 취득, 그리고 삼성물산의 외국인 주주인 헤르메스, CSFB, JP모건 등이 지분을 대량으로 사들일 경우 경영권 리스크에 노출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 공개되면서 공정위와 삼성 간에 적대적 M&A 가능성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삼성의 헌소에는 양측이 수많은 법률논리를 동원, 그야말로 칼과 방패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 그만큼 어느 한쪽의 우위를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정위와 삼성의 이번 싸움은 이전처럼 한 차례의 승패기록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한쪽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적대적 M&A 당할까?

인수비용 24조원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

임상연 기자 sylim@chosun.com



 정부가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과 관련, 삼성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가 적대적 M&A에 노출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적대적 M&A를 당한다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삼성측의 주장대로 삼성전자가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지난 6월말 현재 외국인 지분은 53.7%.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1384만주(9.4%, 3월말 기준)를 제외할 경우 외국인 보유 지분의 의결권은 59%에 달한다. 이에 반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생명 등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17.72%. 수치상으로 볼 때 삼성이 주장하는 적대적 M&A의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지분 분포다. 전체 의결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이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경영진 교체를 요구,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전자 전체 등기임원 중 이 회장 등 9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하지만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 M&A전문가, 펀드매니저 등 시장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적대적 M&A의 필요성이나 이득 측면에서 매수자에게 실익이 없는 어리석은 ‘머니게임(Money Game)’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



 외국자본이 삼성전자를 먹는다?

 먼저 증권전문가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보유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이 주장하는 대로 외국자본이 적대적 M&A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주간 담합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 주주들이 한데 뭉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증권사의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재벌 규제나 정책에 대한 불안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삼성이 주장하는 삼성전자의 적대적 M&A는 전혀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며 “삼성전자는 지분 분산이 잘 돼 있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주주들이 담합하지 않는 한 적대적 M&A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M&A전문가도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외국인 등 여러 주주들이 적대적 M&A를 목적으로 뭉친다는 것은 성립하기 힘든 가정”이라며 “선례를 볼 때 주주들이 주총에 100% 참석하지 않아 모두가 같은 편으로 뭉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실례로 지난해 발생했던 소버린의 SK그룹 경영권 공격도 주주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소버린을 제외한 외국인의 의결권은 28.9%에 달했지만 실제로 주총에서 행사된 외국인의 의결권은 21%에 미치지 못했다.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소버린 대신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지지했다. 여타 주주들로부터 소외된 소버린은 결국 경영권 확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산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는 “15%의 지분을 보유했던 소버린이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SK그룹 장악에 실패한 것은 그만큼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외국인 투자가 중 5% 이상의 대주주는 10.29%의 주식을 보유한 씨티뱅크뿐이다. 그러나 씨티뱅크는 삼성전자가 해외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할 당시의 예탁기관으로 자체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들 가운데서는 SK의 소버린처럼 적대적 M&A를 추진할 인수주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삼성전자의 적대적 M&A를 위해서는 최소 2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해야 하지만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빅딜(Big Deal)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을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시장전문가들은 또 삼성전자 자체가 적대적 M&A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기업으로 공룡과 같은 삼성전자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현재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80조원 정도로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30%를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만 24조원이 예상된다. 또 삼성전자의 자산가치가 주가보다 턱없이 낮아 M&A를 통한 실익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M&A 전문업체 한 CEO는 “삼성전자의 순자산 가치는 시가총액의 3분의 1 가량인 35조원에 불과하다”며 “M&A의 기본은 순자산 가치가 기업가치(주가)보다 높을 경우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인데 삼성전자는 기본 조건에도 맞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즉 삼성이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의 이유로 삼성전자의 적대적 M&A를 든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논리 비약보다 투명경영 선행돼야”

 결론적으로 업계전문가들은 삼성이 헌법소원(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 제한)의 배경으로 든 ‘삼성전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적대적 M&A를 우려한다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국민적 참여를 높이는 등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일가에 대한 재산상속 문제나 문어발식 경영 문제 등은 뒤로한 채 지나친 논리로 정부와 충돌한다면 국민적 반재벌 정서를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사 한 M&A전문가는 “반재벌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삼성의 위기의식은 이해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논리가 매우 빈약하다고 본다”며 “오히려 국민적 반재벌 정서만 키우는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 제한이 헌법상의 재산권과 평등권, 사기업에 대한 경영 불간섭 원칙에 위배된다는 삼성의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환영’하는 재계의 입장과는 달리 전문가들 가운데에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헌법상의 재산권과 평등권 등이 보장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재벌의 경제력 남용으로 경제주체간의 조화가 위협받을 때는 적절한 규제를 통해 공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한 CEO는 “기업활동 규제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삼성공화국’으로 대변되는 한국경제의 위기론만 봐도 아직까지 재벌 규제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며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얼마나 투명한가를 먼저 명백히 보인다면 당연히 규제도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 헌법소원의 주체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시장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보험사는 그 특성상 고객자산(보험계약자)을 기초로 성장한 만큼 의결권 제한은 고객자산 보호장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보험사의 기획담당 팀장은 “과거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상장 논란에 있어 보험계약자와 대주주 간 이익 분배가 최대 이슈였던 것도 보험사가 고객자산을 기초로 성장했기 때문에 나온 문제”라며 “따라서 의결권 제한이 고객보호장치라는 정부와 참여연대의 말은 일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적대적 M&A 우려보다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재벌규제 정책에 대한 반발로 삼성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전장을 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과 함께 현재 개정 작업이 진행중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률(이하 금산법)을 염두에 둔 전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와 일부 국회의원은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5% 이내로 제한하는 금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순환출자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삼성은 지배구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삼성 담당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M&A 우려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삼성이 더 잘 안다”며 “관가에 도전하지 말라는 속설을 삼성이 깬 것은 사방으로 압박해오는 반재벌정책과 여론을 의식한 일종의 퍼포먼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공정거래법 헌법소원과 관련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삼성도 삼성전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에 대해 한발 물러난 분위기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실 사령탑인 김윤근 상무는 최근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3개 금융계열사가 제기한 공정거래법 헌법소원과 관련 “삼성전자가 M&A를 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기우”라며 “헌소 배경에는 주식의결권 제한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점이 핵심이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가 적대적 M&A에 노출된 상태라고 주장해왔던 기존 논리를 뒤집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삼성 일각에서도 이번에 헌법소원을 낸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 상무는 “지난 4월1일 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 제한 조항이 공포된 후부터 내부적으로 헌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면서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다”고 말해 삼성 내부에서조차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헌법소원에 크게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공격적인 대응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강철규 공정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하고 ‘적극 대응’ 의사를 밝힌 상태며 대내외 법률단과 자문단을 통해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직접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삼성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삼성의 공정위에 대한 반박에 대해서는 일체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논리적, 법률적으로 삼성 등 재벌에 대한 규제 논리가 타당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