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가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PDP(벽걸이TV) 등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분야에서 터진 국가간 분쟁 이외에도 국내 업체들간에 특허권 침해를 둘러싸고 다투는 사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지재권 분쟁은 기업의 사활을 건 전쟁터와 다름없다.

 ‘IT강국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프트웨어(S/W) 보호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IT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현실적인 시각이다. S/W 산업 진흥책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 보호책 마련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2005년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 및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지적재산권(이하 지재권)의 강력한 보호를 주문했다. 한 마디로 지재권의 보호수준이 낮다고 경고한 것이다.

 IT시장조사기관인 IDC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S/W 불법복제로 506만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복제율은 46%로 2003년(48%)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손실액은 46만달러나 증가했다. 특허와 관련된 분쟁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허법원의 소 제기 현황에 따르면 2001년 3069건이었던 심결건수는 지난해 4580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수백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S/W나 비즈니스모델(BM) 특허에 대한 불법복제·도용 등의 사례는 현실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지재권 분쟁 중 가장 큰 이슈는 국산 S/W업체인 티맥스소프트(이하 티맥스)와 호주 S/W업체인 FNS간의 분쟁이다.



 티맥스·FNS 분쟁 점입가경

 지난해 말부터 회사의 사활을 걸고 시작된 티맥스와 FNS 간 지재권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양사가 서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금지 가처분소송과 형사소송을 진행 중인 가운데 FNS측이 조만간 본안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양사는 이번 분쟁에 S/W사업의 존립을 걸고 전면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FNS는 티맥스의 ‘프로프레임’이 FNS 뱅스(BANCS)의 지재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해 12월말 티맥스를 상대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에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양사간 프로그램 유사성을 판명하기 위해 컴퓨터프로그램심의위원회(이하 프심위)에 공인 감정을 의뢰해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FNS측이 티맥스의 프로프레임 도입을 고려 중인 SK텔레콤에 공문을 발송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티맥스는 업무 방해 및 신용 훼손 혐의로 지난 6월24일 FNS 대표이사 등과 국내 독점공급사인 큐로컴(구 FNS닷컴)을 형사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티맥스측은 프심위의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FNS가 프로프레임 도입을 결정한 SK텔레콤에 ‘통지서’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해 티맥스의 업무를 방해하고 신용을 훼손하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형사 고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티맥스는 “FNS가 프로프레임의 프로뱅크가 FNS 뱅스와 유사하다며 이것이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표현했다”며 “티맥스가 마치 FNS의 기술을 무단 표절한 것처럼 표현하는 등 협박성 통지를 발송한 것은 영업을 고의적으로 방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노력을 들여 자체 개발한 제품이 막연한 추측과 불명확한 근거 속에 지재권 침해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고 판단해 국산 소프트웨어 기술력의 명예를 걸고 강경 대응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FNS측은 “지재권 침해에 따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고객사에게 이 사실을 통지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티맥스는 지난해 BEA시스템즈와도 미들웨어 제품의 소스 코드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룬 바 있다. 당시 티맥스의 기술은 BEA와 무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티맥스는 이 같은 외산 업체들의 딴지 걸기가 계속되는 것은 국산 솔루션 업체들을 압박하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라 보고 이에 대해 정면 승부한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이번 소송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W 도용 여부에 따라 한 쪽은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가 완전히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9월 중 프심위의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온 후 본안소송까지 갈 예정이어서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 기술인력이 기술을 빼가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 교육기관인 A사는 개발 중인 프로그램을 개발자가 외부로 유출하는 바람에 프로그램을 도용당했다. 프로그램 개발자는 동영상 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한 후 회사를 퇴직하고 비밀리에 설립한 다른 회사에서 빼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뒤늦게 이를 안 A사가 프로그램 도용을 주장하며 개발자를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 S/W의 저작권 분쟁과 관련해 전문적으로 감정을 실시하는 기관은 프심위가 유일하다. S/W와 관련, 기술적 전문성을 가진 연구소 등이 있기는 하지만 법적인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 감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전문성의 확보만으로는 합리적인 감정결과를 도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프심위의 감정 현황은 연 평균 27건, 총 95건에 달한다. 분쟁 내용을 보면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기술정보를 도용당했거나 소프트웨어를 개발·공급했으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개발비를 받지 못했다는 것 등이 대부분이다.

 감정을 의뢰한 S/W의 경제적 가치를 소송가액을 기준으로 따지면 200억원을 상회한다. 감정대상인 소프트웨어의 경제적 가치도 2002년 1억원에서 2004년 3억7000여만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업계도 분쟁 끊이지 않아

 S/W업계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업계에서도 지재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통신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지재권 분쟁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우수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애드링시스템은 통화대기음(컬러링 서비스)과 관련, SK텔레콤과 3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뿐만 아니라 KTF, LG텔레콤과도 컬러링 서비스와 관련해 특허소송을 진행 중이며, SK텔레콤의 첫 개인화 서비스인 ‘모네타 온’에 대해서도 특허권 침해를 주장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에는 KTF의 팝업 서비스에 대해서도 특허침해에 대한 경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모바일 콘텐츠 개발업체인 서오텔레콤은 지난해부터 LG텔레콤과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서오텔레콤이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에 관한 기술을 특허 출원한 것은 2001년. 강도를 만나거나 했을 때 이동전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전화가 걸려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서오측은 2003년 초 LG텔레콤으로부터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뒤 기술을 도용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를 제출한 뒤 LG텔레콤이 내놓은 휴대전화 구조요청 서비스인 ‘알라딘’의 내용이 자신의 기술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 서오텔레콤은 지난해 4월 LG텔레콤을 검찰에 고소했으며, LG측도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 청구소송을 내며 맞받아쳤다. 지난 1월에 끝난 소송에서 서오가 특허 14개 항목 중에서 6개를 인정받아 특허를 유지하자 LG텔레콤이 이에 불복해 특허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이동통신 3사를 대상으로 모바일뱅킹 인출방식 특허를 문제삼았던 하렉스인포텍은 결국 손을 든 케이스. 이동통신사와의 지재권 분쟁으로 자금 압박을 받았던 이 회사는 지분 51%를 통신 3사에 넘겼다. 자금과 시간으로 밀어붙이는 이동통신사 앞에서는 세계 최초로 적외선을 이용한 지불결제 원천기술 개발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

 이처럼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지재권 분쟁은 벤처기업으로서는 기업의 존립을 걸어야 하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거나 ‘이겨도 지는 게임’이다. 박원섭 애드링시스템 사장은 “이동통신사와의 특허분쟁으로 인해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 등지의 해외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법원까지 가게 될 경우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달리 벤처기업은 3~4년을 버틸 여력조차 없다. 혹시 승소한다 해도 지루한 분쟁으로 거덜 나기 일쑤다. 또 이동통신사에게 한 번 미운 털이 박히면 사업 참여 기회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렉스인포텍의 경우에도 시간·자금·인력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IT분야에서 지재권 분쟁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기술발달 속도가 빨라 하루 차이로 특허권이 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즈니스모델(BM) 특허의 경우 과정을 조금만 바꾼다면 도용 여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BM 특허의 특성상 다른 업체들도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해 특허를 비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 우수 기술 사장되기도

 따라서 지재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IT분야 지재권 관련 법제 정비가 미흡하고 전담조직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3~4년 걸리는 특허소송 절차 등을 간소화하고 관련 조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프심위 관계자는 “S/W에 대한 저작권과 관련, 분쟁 대상업체의 대부분이 중소 벤처기업이다 보니 이들 업체들이 어렵게 개발한 원천기술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줄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지재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기술을 선보여도 다른 업체가 가로채 특허분쟁으로 물고 늘어지면 중소기업으로선 당해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재권 다툼은 자칫 IT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어 무분별한 특허분쟁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지재권 분쟁이 단순히 기업간의 분쟁으로 끝나지 않고 벤처의 우수한 기술을 사장시킬 수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기술력이 사장됨으로써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수출이 사라져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재권 보호 및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적재산에 관한 종합정책의 수립 및 실시를 전담할 ‘지적재산권관리청’ 설립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기업들도 자신들의 지재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통화연결음, 유무선 통합포털 서비스 등 모바일 신서비스에 대한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지재권을 보호받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지재권 분쟁에 휩싸인 이동통신사들은 따로 전문가팀을 구성, 지재권을 보호할 계획이다.

 또 대기업과 달리 지재권 보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중소 벤처기업을 위해 프심위 등이 지원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특허권이나 비즈니스 모델 보호가 중요시되기 때문에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재권 분쟁이 S/W산업 발전 저해

 지재권 분쟁으로 중소 벤처기업의 우수기술이 사장된다는 우려뿐만 아니라 국내 S/W산업 자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S/W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진흥책뿐 아니라 보호책 또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일반 상품과 달리 복제가 상당히 용이한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그 권리는 다른 재산권 침해에 비해 죄의식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침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일반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경우 최근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단속의 영향으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의 사용률이 낮아지고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개발자들이 기술정보를 도용해 유사제품을 만든 후 이를 시장에 내놓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아직 그 대응책이 미흡한 게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용자들이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무단 복제해 사용하는 것보다 개발자에 의한 다른 개발자의 기술정보 도용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개발자가 오랜 기간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누군가가 도용해 적당히 변형을 가한 후 저가로 시장에 출시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적절한 보호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최초의 개발자는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기술정보 도용 및 권리 침해가 계속된다면 어렵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는 개발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창작의욕을 꺾는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S/W산업 발전을 위한 진흥책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S/W 산업의 퇴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S/W업계 관계자는 “지재권 분쟁에 있어 정당한 권리자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개발자들의 창작의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좀 더 완성도 있는 보호체계를 구축하려면 정부, 개발자, 사용자 모두의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