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 와인을 증류시켜 만든 증류주 ‘고운달’. 달항아리 모양 병에 술을 담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진 오미나라
오미자 와인을 증류시켜 만든 증류주 ‘고운달’. 달항아리 모양 병에 술을 담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진 오미나라

해외에서 최고급 위스키를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형태로 판매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전통주 NFT가 처음 발행됐다. NFT는 게임, 예술품, 부동산 등 기존 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하는 수단이다. NFT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의 관련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돼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 ‘주크박스’는 오미자 증류주인 고운달을 생산하는 오미나라 양조장과 손잡고 ‘고운달 마스터블렌더스 에디션 NFT(이하 고운달 NFT)’를 발행했다. 2월 25~27일 사흘에 걸쳐 NFT를 발행했으며, 300여 개를 판매했다. 주크박스가 준비한 물량이 2000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동헌 주크박스 대표는 “큰 변화를 위한 작은 성공을 거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술을 NFT에 처음 접목한 이동헌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이다. 카이스트에서 생명화학공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밟고, 프랑스 소르본대학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블루포인트 등에서도 일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술 NFT가 몇 차례 발행됐다. 2021년, 세계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인 맥켈란은 1991년에 담근 30년산 맥켈란 위스키 원액 오크통 1개를 트레버 존스(Trevor Jones)의 그림과 함께 패키지로 묶은 NFT를 230만달러, 약 28억원에 판매했다. 존스는 새로운 기술과 증강현실을 사용,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중점을 둔 현대 추상 및 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다.

또 다른 세계적 위스키 브랜드인 글렌피딕도 최고급 위스키를 NFT로 발행했다. 46년산 글렌피딕 위스키 15병을 병당 1만8000달러, 약 2000만원에 판매했다. 또 미국의 프로농구 연맹인 NBA 스타 중국인 야오밍은 2021년 4월, 자신 가족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 200병에 대한 NFT를 발행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번에 전통주 최초로 NFT 발행 대상이 된 고운달은 국내 유일의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인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가 만든 술이다. 그가 만든 술은 청와대 정상회의 만찬주 등에 쓰여 왔다. 국내 위스키 시장 1, 2위를 다투는 윈저와 골든블루 역시 이종기 대표가 만들었다. 고운달 NFT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중인 십장생도를 모티브(출발점)로 삼아서 고운달 병 이미지를 입힌 민화 형태로 발행됐다. 

고운달 NFT를 구매한 사람은 올해 연말쯤 나올 예정인 고운달 특별 한정판(스페셜 에디션)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이동헌 대표는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은 기존 고운달과 전혀 다른 술로, 병 라벨 등 디자인 제작에 NFT 홀더(보유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또 일부 회원 이름을 새로 나올 제품 술병에도 새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술 제작을 담당하는 이종기 대표는 “기존 고운달은 오크통 숙성 1년 제품인 데 반해, 스페셜 에디션은 항아리 장기 저장 고운달 원액과 오크통 1년 숙성 원액을 블렌딩한 완전히 새로운 고운달이 될 것”이라며 “희소성을 강조하기 위해 300병만 만들 방침”이라고 말했다. 가격은 100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 나올 술은 NFT 회원들이 아닌 백화점 등 일반 유통 경로로 판매될 예정이며 회원에게는 할인 혜택과 함께 우선 구매권 등이 주어질 계획이다. 

고운달 NFT 추가 구매는 글로벌 최대 NFT 플랫폼 ‘오픈시(opensea)’에서 가능하다. 고운달 NFT는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로만 살 수 있다. 카카오 자회사인 ‘그라운드X’가 발행한 암호화폐 클레이튼 약 500개가 고운달 NFT 판매 가격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개당 60만원 정도다. 


이동헌 주크박스 대표 카이스트 학·석·박사, 프랑스 소르본대 비즈니스스쿨 / 이동헌 주크박스 대표가 NFT로 발행할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을민화로 그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주크박스
이동헌 주크박스 대표 카이스트 학·석·박사, 프랑스 소르본대 비즈니스스쿨 / 이동헌 주크박스 대표가 NFT로 발행할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을민화로 그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주크박스

고운달 NFT 구매자에게 주는 혜택은.
“국내 주세법상 NFT와 술의 맞교환은 불가능하다. 대신에 NFT 홀더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우선,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 디자인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회원 간 투표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 실물 제품 판매 금액의 10%를 공유받을 수 있고 실물 제품 우선 구입 대상자로 정가의 30%를 할인받는다. 매월 진행될 전통주 시음회에도 초대된다.”

이 밖에도 주크박스가 제공하는 혜택은 다양하다. 주크박스가 향후에 발행할 지역 특산주 NFT를 남들보다 먼저 살 수 있는 구매 우선권(화이트리스트)을 제공한다. 또 오미나라 양조장과 커뮤니티 파트너십 강화 차원으로 NFT 홀더 한정 프로모션이 진행된다. 오미나라 양조장은 고운달 외에 세계 최초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고운달 NFT 홀더에게 이 제품들을 할인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블록체인 사업 모델의 핵심 철학인 DAO(탈중앙화된 자율 조직) 기반으로 운영해서 NFT 홀더가 고운달 마스터블렌더스 에디션 제작 프로젝트에 지속해서 의견을 낼 수 있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현재 NFT 시장 참여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기적 시세 차익이다. 참여자의 연령층은 20~30대가 많다. 이번 전통주 NFT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고급 전통주를 대상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도와 관심이 적었다. 실물 경제나 사업 모델이 없는 단순 캐릭터 그림(PFP) NFT보다 관심이 떨어진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존 고급 전통주 소비층에 홍보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그들에게 NFT를 이해시키고 미팅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고무적인 부분은 ‘전통주 NFT를 구입하고 싶은데, 구입 절차가 어려워서 못하고 있다’ ‘은행 이체를 해줄 테니 대신해줄 수 있느냐’ 등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NFT에 관해 알게 되고 절차를 이해한 사람이 많아졌다. 전통주 NFT 시장에 새로운 참여자를 유입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향후 계획은.
“이번 고운달 마스터블렌더스 에디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고급 전통주 고객이 NFT 사업 모델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다음번 프로젝트는 더 많은 참여자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통주를 대상으로 한 NFT 비즈니스를 계속 확대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