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게임의 공세가 이어지고 한국 게임업계에서 신작이 줄어들면서 한국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PC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 버전으로 만든 ‘리니지M’. 사진 엔씨소프트
외산 게임의 공세가 이어지고 한국 게임업계에서 신작이 줄어들면서 한국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PC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 버전으로 만든 ‘리니지M’. 사진 엔씨소프트

국내 대표 게임기업 넥슨의 모회사 NXC의 매각 추진 소식에 한국 게임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전망하고 있는 넥슨의 매각 추진은 한국 게임산업의 위기를 대변한다는 업계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 위기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았던 한국 게임산업은 이후 성장 동력을 잃으며 해외 대작들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끊임없는 규제로 만신창이가 됐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이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1│꽉 막힌 중국 시장
해법 1│시장 다각화하고 게임 플랫폼 다양화해야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큰 변수로 중국 시장을 들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년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16년 국내 게임 수출액에서 중화권의 비중은 전체 매출의 36.4%에 달한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크로스파이어’ 등 한국 게임이 진출해 크게 성공했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중국 게임업체들이 예전에는 한국 게임을 유통하거나, 유사한 게임을 만든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 게임을 유통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중국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판호(유통허가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판호를 받은 한국 게임은 단 한 종도 없다. 국내 게임사들이 파트너십을 맺고 텐센트에 공급한 게임도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 정부가 중국 내 게임산업 전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넥슨 매각도 중국 시장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상장사인 넥슨은 지난해 말까지 매출 약 2500억엔(약 2조56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약 12.2% 성장한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역시 1000억엔(약 1조100억원)을 기록해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넥슨이 2005년 출시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등에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게임을 중국 시장에 유통하는 텐센트는 연간 수천억원에서 1조원의 로열티를 넥슨에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측 규제가 심해지니 넥슨의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막대한 자본력에 우수한 개발 능력까지 갖춘 중국은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계 자본은 이미 국내 게임시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텐센트는 카카오의 2대 주주이자 넷마블의 3대 주주다. 만약 텐센트가 넥슨까지 갖게 된다면, 대형 토종 게임사는 엔씨소프트만 남게 된다.

중국산 게임도 매해 거듭 성장 중이다. 국내 모바일 매출 순위 10위권의 절반 정도를 중국 게임이 점령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게임시장 전문조사기관 뉴주(Newzoo)의 게임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게임시장(총 1379억달러·약 154조3790억원) 1위는 중국(379억달러·약 42조4000억원)이었으며, 미국이 304억달러(약 34조원)로 뒤를 이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게임 개발과 함께 해외 시장 다각화에 나서는 것도 필수적이다. 국내 게임업체들이 북미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다. 넷마블은 북미와 유럽 진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독일·프랑스에 진출한 컴투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소비자가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PC 외에도 콘솔 등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소·중견 게임사들이 협력을 강화해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위기 2│이중 삼중 게임 규제
해법 2│성장 숨통 트이게 과도한 규제 완화해야

게임업계는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라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은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셧다운제다. 셧다운제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불린다.

실제 셧다운제 시행 이후 한국 게임산업 성장률은 급격히 무너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1년 18.5%였던 게임산업 성장률은 2011년 10월 해당 조치가 내려진 이후 1%대로 뚝 떨어졌다.

이외에 성인이라도 PC온라인 게임에서 50만원 이상 결제하지 못하게 돼 있는 등 게임산업에는 이중 삼중의 규제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국내 콘텐츠 수출액의 50%를 넘을 정도로 커졌지만, 게임을 마약류로 치부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셧다운제가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게임 제한을 모바일 게임으로 오히려 확대할 예정이다. 여가부는 올해 5월까지 셧다운제의 모바일 게임 적용을 유예했는데, 이를 확대 적용할 경우 게임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특히 오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에서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게임업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숨통이 트이기 위해서는 과도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 한국처럼 청소년 게임 규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베트남·중국 등 사회주의국가밖에 없다. 위정현(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한국 게임산업은 만신창이가 됐다”며 “게임산업에 대한 성장과 규제 정책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 3│혁신동력 잃은 게임업계
해법 3│다양한 장르 게임 개발하고 스타트업 육성해야

규제나 외부 원인도 있지만, 혁신동력을 잃은 업계 내부의 문제도 좌시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게임은 대부분 모바일 게임인 데다, 10여 년 전 히트했던 PC 온라인 게임의 속편인 경우가 많다. 1월 16일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 최고 매출을 올린 게임 중 1~3위는 모두 PC 게임이 원작이다. 특히 1위인 리니지는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PC 게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PC방 인기 게임인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는 출시된지 10년이 넘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돈 되는 게임’만 찾다 보니 모바일 쏠림현상이 지나치게 나타났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게 된 것이다. 또 대규모 개발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는 모바일 MMORPG 위주의 시장 쏠림으로 인해 넥슨, 엔씨소프트 등 상장사가 업계 주축으로 자리 잡았고, 중소 개발사는 도산하거나 대기업에 흡수됐다.

게임산업에 핵심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유망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정현 교수는 “자금력과 인력을 가진 게임 대기업이 공격적인 게임 개발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혁신의 흐름을 만들 수 있도록 게임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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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수백 또는 수천 명 이상이 동시에 같은 게임에 접속해 각자 맡은 등장인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서로 협업하며 즐기는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인터넷, 온라인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