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양주골이가전통주 대표 2013년 국선생대회 가작 수상 / 이경숙 양주골이가전통주 대표는 17도 술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묵직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럽다”라고 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이경숙
양주골이가전통주 대표 2013년 국선생대회 가작 수상 / 이경숙 양주골이가전통주 대표는 17도 술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묵직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럽다”라고 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1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인 ‘Best of 2021(약주 부문)’ 상을 받은 ‘주줌치17’은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개똥쑥을 부재료로 넣은 술이다. 개똥쑥을 3.5% 넣은 이 술은 색상부터 여느 약주와 다르다. 쌀과 누룩으로 만든 약주 색상이 대개 연한 황금색인 것에 비해 주줌치17은 연녹색을 띤다.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은은한 허브 향이 입안 전체에 퍼지면서 잔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 특징이다. 허브 향 때문일까. 술을 마시는데도 머리는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 마시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한다.

이 술은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63) 대표의 작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 북부 양주시에 자리한 양조장 양주골이가전통주는 2018년에 설립된 신생 양조장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술 빚기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40대 초반부터 간간이 술을 빚어왔다. 이 대표의 또 다른 술 ‘떠먹는 막걸리’로 알려진 ‘이화주’는 대한민국주류대상 3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제 술의 8할은 친정 엄마가 만든 겁니다. 아니, ‘엄마의 술’이라고 하기에도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엄마 나이 열여섯 살 때부터 평생을 바쳐 빚어온 ‘엄마의 술’이 세상에 없어질까 봐 조바심이 나서 뒤늦게 엄마한테서 술을 배웠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4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20년 쯤전입니다.”

이 대표가 20년 동안 배워 만든 ‘엄마의 술’은 17도 술이다. 이번에 최고상을 받은 주줌치17 역시 17도 술이다. 이 대표가 만드는 17도 술은 수입산 주정에 물을 80% 이상 섞는 희석식 소주 17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쌀·누룩·물 이외에 어떤 화학 감미료도 넣지 않는다. 재료 품질이 비슷한 다른 프리미엄 약주와도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다. 밑술을 만들어 발효를 시작해 소비자에게 술이 전달되기까지는 거의 6개월이 걸린다. 발효와 1차 숙성에 2개월, 2차 저온 숙성에 또 석 달이 필요하다. 그 후에야 병입을 거쳐 세상에 나가는 술이 ‘엄마의 술 17도’다. 병에 넣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 또 한 달 정도 걸린다.

시간이 곧 돈인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까. 이 대표는 “1차 숙성을 끝내고 나서 추가로 영상 2도 정도에서 석 달간 저온 숙성한 덕분에 술 향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17도 술답지 않게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럽다”라고 했다.


양주골이가전통주의 대표 제품인 ‘주줌치17’과 ‘주줌치2’. 사진 양주골이가전통주
양주골이가전통주의 대표 제품인 ‘주줌치17’과 ‘주줌치2’. 사진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곳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 제조 공정을 소개해 달라.
“밑술을 만들 때는 쌀·누룩·물 이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아스파탐 같은 화학 감미료를 넣지 않고, 쌀도 양주골 쌀만 사용한다. 삼양주인 주줌치의 경우 밑술을 빚고 나서는 이틀 간격으로 덧술을 한다. 마지막 덧술은 고두밥으로 마무리한다. 발효는 약 2주간 진행된다. 그 후에 숙성실로 옮겨온다. 이곳에서도 후발효는 계속된다. 숙성은 한 달 보름 진행한다. 발효와 숙성이 결국 두 달 걸리는 셈이다. 이후에 술을 거른다. 알코올 도수는 17도를 고집한다. 가수(물 첨가)를 하지 않는다. 가수하면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산패될 우려도 높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들은 주줌치17에 대해 ‘부드러운 약재 향이 오래 간다’고 평했다.
“작물(개똥쑥)을 넣은 술과 작물을 넣지 않은 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개똥쑥 향은 은은하면서도 (술맛을) 극대화한다. 개발 과정에서 향, 무게감, 목 넘김 등을 세밀하게 평가했다. 옛 맛의 전통주는 대개 무게감이 있다. 주줌치17은 옛 맛의 전통주와 달리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은은하다. 그러면서 향을 끝까지 끌고 간다. 잔향(피니시)이 아주 오래간다. 보디감은 강하지 않지만, 여운은 오래간다.”

본인이 만든 술을 ‘엄마의 술’이라 부르는 이유는.
“내 술은 오롯이 ‘엄마의 술’이다. 친정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술이다. 부농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밑에서 엄마는 10대부터 술을 빚으셨다. 외할아버지는 ‘기숙(친정 엄마 이름)이가 만드는 술은 아내가 만든 술보다 맛있고 독해’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술이 독하고 맛있다’는 기준을 나는 17도로 삼았다. 삼양주로 덧담금을 계속하면 알코올 도수가 거의 20도까지 오른다. 나는 17도에서 발효를 끝낸다. 더는 도수가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엄마의 술은 17도다. 그래서 가수를 일절 안 한다. 물을 안 탄다는 말이다.”

왜 17도를 고수하나.
“그 도수가 묵직하면서도 가장 목 넘김이 부드럽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날 술처럼 농축하고 걸쭉한 맛도 있으면서 드라이(달지 않은)하고 또 상큼하면서도 가벼운, 그런 목 넘김의 술이 17도 술이다. 술로서 과하지 않고 덜 하지도 않은 도수라고 할까.”

술을 빚게 된 계기는.
“엄마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엄마가 평생 만들어온 술의 귀중함을 오랫동안 몰랐다. 그러다가 40대 들어서고 나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7남매 자식 모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엄마의 술이 잘못하면 이대로 사장될 수도 있겠다’라고. 그러면서 엄마 뿌리인 의성 김씨 집안 옛 요리서인 ‘온주법’을 구해다 읽으면서 체계적으로 술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발효 온도였다. 술 항아리 내부 온도와 외부 온도는 다르다. 발효가 왕성할 때 내부 온도가 외부보다 높다. 그래서 내·외부 온도를 다 재야 한다. 나름대로 터득한 온도 데이터(어느 온도에서 최적의 발효가 진행되는지)가 있다. 엄마는 온도계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온도를 재면서 엄마의 술빚기를 체계화하려고 했다. 엄마는 그냥 느낌으로 술을 빚었다. 물론 엄마의 느낌, 직관은 대단했다.”

17도는 약주치고는 꽤 도수가 높다.
“옛날의 원주는 걸쭉하고 다소 무게감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드는 17도 술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나온 술이 주줌치17과 주줌치2다. 거의 3개월간 저온 숙성한 효과로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오래 지속된다. 약주 중에서 17도는 결코 낮은 도수의 술이 아닌데도, 마시는 사람들은 ‘부드럽다’ ‘잘 넘어간다’는 평을 한다. 시간과 정성(옛 맛을 유지하면서도 옛 맛을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을까)을 기울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