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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글로벌 금융 허브 도시 홍콩에서 12년째 투자 업무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많은 아시아 기업이 글로벌 레벨로 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앞으로 아시아에서 부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배경을 살펴보고, 이들의 장단점과 사업 전략을 독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미운 오리’였다. 이 회사는 2009년 이후 10년간 잉여현금흐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 활동으로 써왔다는 의미다. 부채 비율은 항상 높았고, 돈에 허덕이다 보니 자주 자본시장에서 돈을 조달했다. 소액 주주들에게는 ‘나쁜 기업’의 전형이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대형 세단 ‘모델 S’처럼, BYD 전기차 모델의 상품성이 좋았다면 모르겠다. 과거 이 회사가 내놓았던 전기차 모델들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주행거리는 200~300㎞ 정도에 불과했고 디자인은 중국 자동차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고도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BYD 소형 세단의 판매가가 원화로 치면 4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만약 정부, 특히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선전에서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지 않았다면 이 회사는 진작에 부도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BYD는 2020년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BYD가 2020년 6월에 내놓은 전기차 ‘한(漢)’이 뛰어난 상품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BYD의 역사는 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도대체 한은 BYD에 얼마나 대단한 변화를 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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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배터리 장착에도 캠리보다 실내 넓어

한은 전기차 모델이 비슷한 가격대의 내연기관차를 주요 스펙에서 앞선 첫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은 77(킬로와트시)라는 업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를 탑재한 덕분에 한 번 충전하면 유럽 연비 측정 방식인 NEDC 기준으로 600㎞를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일주일에 한 번만 충전해도 충분한 주행 거리다. 도시인들의 일일 주행 거리가 60㎞ 미만이라고 하니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 정도로 큰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준중형 세단이라면 실내 공간이 협소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보조금을 고려하지 않으면 한보다 판매가가 비싼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보다 실내 공간이 넓다. 앞뒷바퀴 거리(휠베이스)가 2920㎜로 일본 차들보다도 100㎜ 길다. 더욱 놀라운 건 리튬 인산철(양극재 재료로 철과 리튬-인산 화합물을 쓴 것) 배터리를 탑재했음에도, 가속력은 스포츠카 수준(제로백 3.9초)이고 출력은 도요타 캠리보다 최대 두 배까지 높다는 점이다.

참고로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글로벌 스테디셀러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베스트셀러 모델 중 하나다. 이런 상품성 때문에 BYD의 한은 월 1만 대씩 판매되며 판매량 상위권에 자리매김했다.

1kWh당 연비 측면에서 리튬 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한은 삼원계 배터리(양극재 재료로 니켈과 코발트, 망간 화합물을 쓴 것)를 쓴 다른 모든 전기차 모델을 압도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리튬 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이런 스펙을 갖출 수 없다.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에 비해 중량당 에너지 밀도가 낮아 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가 무거워지면 가속력, 마력, 연비 등 모든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한은 이를 극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비야디(BYD)의 전기차 ‘한’. 사진 BYD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비야디(BYD)의 전기차 ‘한’. 사진 BYD

BYD의 배터리 혁신은 패키징에서 시작

BYD는 남들보다 앞서 배터리 혁신(breakthrough)에 성공했다. 혁신 원리는 간단했다. 배터리 모듈 부분을 없앴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배터리 셀을 배터리 모듈로 모으고, 다시 배터리 모듈을 모아 배터리 팩을 완성한다. 그동안 중간 단계인 모듈을 첨가했던 건 모듈이 방어벽 역할을 해 배터리 화재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BYD는 배터리 모듈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 대신 배터리 셀을 길쭉하게 만들어 화재 방지책을 내놨다. 사실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에 비해 화재 가능성이 극히 작기 때문에 본래 모듈의 역할이 크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모듈을 생략함으로써 누리는 장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전보다 최대 50%까지 넓은 공간을 확보했고, 무게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BYD는 혁신을 통해 1kWh당 92달러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1kWh당 100달러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 정도 수준이면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하게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꿈의 원가’라고 부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인 비야디(BYD) ‘블레이드 배터리’의 구조. 사진 BYD
전기차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인 비야디(BYD) ‘블레이드 배터리’의 구조. 사진 BYD

성장 산업에서 분업은 약점

미운 오리였던 BYD가 화려하게 성장한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성장 산업에서는 하나의 조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와 문화가 중요한데, BYD가 그렇게 해왔다. BYD의 변신에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숨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이해를 못 하는 듯하다. 가령 그동안 많은 전문가는 전기차 혁신을 주로 배터리 셀 부문에 집중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양극재 물질 배합(니켈 비중 증가 등)에서의 개선, 중기적으로는 음극재 물질(리튬금속 채택) 혁신, 장기적으로는 전해질에서의 혁신(고체 전액질) 등을 얘기해 왔다. 그런데 BYD가 만들어낸 대단한 혁신은 셀이 아니라, 패키징 기술의 혁신이었다.

왜 많은 전문가 집단은 이러한 변화를 간과했고, 심지어 지금도 놓치고 있을까? 실제로 최근 언론은 전고체 배터리 셀에 대해선 많이 다루고 있지만, 중국에서 큰 변화를 만들고 있는 배터리 패키징 혁신은 별로 보도하지 않는다. 필자가 볼 때 그 이유는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업이 배터리 셀 업체 따로, 완성차 따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 소통이 분절된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분업화돼 왔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는 그동안 부품별로 스펙을 하청업체에 알리고, 하청업체들이 그 스펙을 달성할 수 있도록 경쟁을 시켜왔다. 이런 방식이 과거에는 잘 맞았다. 100년이 넘은 내연기관 기술은 이미 충분히 성숙했기 때문이다. 완성차는 디자인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부품은 규모의 경제를 이룬 부품사에 맡기는 것이 비용과 개발비 절감 측면에서 더 나았다.

그런데 전기차는 다르다. 배터리와 인버터 시스템은 아직 미완의 기술이며, 그 어떤 부품 회사도 경험치를 충분히 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 회사와 분업하는 게 효율적일 리 없다.

초기 전기차 시장에 야심차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제너럴모터스(GM) 쉐보레의 ‘볼트’가 기존 방식에 입각한 사례다. GM은 배터리 셀은 아시아의 A사에 맡겼고, 배터리 패키징은 B사가 담당하게 했다. 또 최종 조립은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GM의 오리온 공장에서 수행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다른 기업 조직 간 소통이 효율적일 리 없었고, 결국 볼트는 시장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제품이 되었다. GM뿐만 아니라 기성 완성차 그룹이 내놓은 전기차 모델은 거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반면에 BYD는 전기차의 거의 모든 주요 부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왔다. 배터리 셀에서부터 시작해서 배터리 팩, 배터리 관리시스템(BMS·Battery Management System)뿐 아니라 모터와 인버터까지 모두 직접 생산한다. BMS의 중요성은 테슬라를 통해 잘 알려졌다. 테슬라 모델 S는 오래된 기술에 기반을 둔 배터리 셀을 쓰고도 당대 최고의 배터리 효율을 달성한 바 있다. 15년 전부터 전기차를 만들고 운행해온 BYD는 당연히 BMS를 자체적으로 만든다.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또 다른 핵심 부품으로 인버터모듈 및 그 모듈에 들어가는 전력 반도체(IGBT)를 꼽는다. 이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는 인피니온, ST마이크론과 같은 유럽 기업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 기업이 바로 BYD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BYD의 전력 반도체의 성능은 아직 글로벌 톱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실제로 BYD의 하이엔드 전기차 모델에는 유럽 기업의 전력 반도체를 가져다 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배터리 회사로만 간주했던 BYD가 전기차의 모든 중요한 부품을 설계·개발·제조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회사는 자동차 반도체 사업부를 분사시켜 조만간 상장시킬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수직 계열화 덕분에 BYD는 배터리 셀 안의 물질을 어떻게 배합할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 전기차 전체의 에너지 효율과 성능을 극대화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앞서 언급한 모델 한이 시속 0㎞에서 100㎞까지 도달하는 제로백 4초 미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전력 반도체, 모터 등의 파워트레인을 최적화하는 노하우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BYD가 우왕좌왕하고 촌스러운 시절을 보내다 드디어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내놓게 된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 회사가 성장 산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큰 접근 방식과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전기차 산업이 성숙하고 진정한 의미의 전문화, 분업화가 이뤄진다면, 지금 가진 BYD의 장점은 희석될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약점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 BYD가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전인미답의 성장 산업에서 분업은 강점이 아니며, 어쩌면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소극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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