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두 성균관대 농업경제학, 전 캠코선박운용 해운시황 리서치 부장
정영두
성균관대 농업경제학, 전 캠코선박운용 해운시황 리서치 부장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이 빠르게 상승하며 선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됐다. 시장에선 ‘해운업 불황이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그랬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부 LA로 향하는 40피트 기준 컨테이너선 운임은 현재 약 4000달러(약 446만원)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며, 유럽향 운임 또한 사상 초유의 강세를 이어 가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 상승의 주요 원인은 구조조정 덕이 크다. 해운 시장이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선사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살아남은 선사를 중심으로 운임 결정력은 커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물품, 재택근무용품 등 관련 유형 재화의 수요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시황은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운임 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지겠으나, 수요(해상 물동량) 증가율이 공급(선복량) 증가율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중국 산둥성 동부 칭다오의 컨테이너 항구에서 자동화 차량이 선적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사진 AP연합
중국 산둥성 동부 칭다오의 컨테이너 항구에서 자동화 차량이 선적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사진 AP연합

세계 해운 시장 독과점 심화

컨테이너선 운임은 최근 급등세를 보이기 전까지 지난 10년 넘게 매우 낮은 수준을 맴돌았다. 글로벌 선사들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와 공격적인 M&A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동시에 규모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전 세계 컨테이너 선박 6155척(243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중 머스크·MSC·CMA-CGM·하팍로이드 등 톱 4 유럽 선사가 절반 이상인 53%를 점유하며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코스코가 13%, 에버그린·양밍·완하이 등 대만 3사가 9%,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가 7%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자국의 수출과 조선 산업 등을 보호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컨테이너 선사들은 HMM(옛 현대상선)이 시장 점유율 3%로 8위에 머문 가운데 고려해운과 장금상선이 각각 0.7%와 0.4%에 그치고 있다. 3사를 모두 합치더라도 세계 1위 머스크의 시장 점유율 17.3%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지난 10년 동안 몇몇 소수의 상위 선사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로 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운임 강세가 지속될수록 그 수혜 또한 그들만의 몫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운임 급등으로 인한 한국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 국적선사들의 선복량이 너무 적어 시장에서 적극적인 조치가 제한적인 것 또한 문제로 꼽힌다.

다만 HMM이 2018년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 등에 힘입어 글로벌 10위권 선사에 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3대 해운동맹 중 한 곳인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 HMM이 국내 화주들을 위한 화물 운송 공간을 우선 배정하고 추가적인 선박을 투입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한 것은 그동안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선사들이 적극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량 발주하며 초일류 선사로 거듭나고 있을 때 국내 선사들은 극심한 유동성 부족으로 선박 투자를 거의 하지 못했고, 이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과 운임 상승 시 수출 차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독과점이 심화된 국제 해운 시장에서 운임을 결정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120만TEU) 이상의 선복량 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국내 외항 컨테이너 선복량이 현재 약 72만TEU로 점유율이 3% 선에 그치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50만TEU 이상의 선복량을 더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불황기에 한국 정부도 공적 기금 등을 투입해 국적선사 선박의 해외 헐값 매각을 방지하고자 노력했으나 적극적인 선대 확장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최근 운임 상승에 따른 해운업 호황은 수출을 책임지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해운 산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적선사들의 해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해운업에 대한 여신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 노선 경쟁 치열 전망

미국이나 유럽이 코로나19 방역에 난항을 겪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어느 정도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중 패권 분쟁과 맞물리며 글로벌 생산 기지가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며 이로 인한 아시아 지역 내 교역량 확대는 한국 선사에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내다본 머스크는 아시아 지역 항만에 기항하기 적합한 중소형 컨테이너 선형을 대거 투입해 아시아 시장 점유율을 17%까지 끌어올렸다.

이 시장의 전통 강자인 대만 선사들과 자국 물동량을 바탕으로 시장 확장을 모색하는 중국 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한국 선사들도 한국형 해운동맹인 ‘K 얼라이언스’ 구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Plus Point

“통합 NO”대만 해운업 경쟁력 3대 컨테이너 선사 에버그린·양밍·완하이

해운업 장기 불황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선사들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중국 1, 2위 선사인 코스코와 CSCL은 2016년 통합, 단숨에 글로벌 3위 선사로 도약했다. 일본의 경우 3개의 대표 선사(NYK·MOL·K-Line)가 2017년 컨테이너 부문 사업통합회사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를 설립했다.

반면 대만은 실질적인 통합 없이 에버그린·양밍·완하이가 각각 글로벌 7·9·11위를 기록하며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 1976년 사업을 개시한 완하이는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머스크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완하이는 거미줄처럼 복잡 다양한 아시아 역내 노선에서 3000TEU 이하 중소형 선박을 최적으로 배치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는 노선 분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담 리서치 부서를 운영하며 매년 100만달러(약 11억원)를 투자한 결과다.

현재는 미〮중 무역 분쟁으로 물동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베트남 항로에 선제적으로 선박을 배치해 좋은 성과를 냈다. 리서치 전담 부서가 전무한 국내 선사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 완하이는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최근 4년 연속 운항 정시성을 달성해 고객 만족 부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