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이 운영하는 경기도 롯데마트 양평점. 코로나19 사태로 유통·패션·항공 업계가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경기도 롯데마트 양평점. 코로나19 사태로 유통·패션·항공 업계가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연 매출 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한 패션 업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적이 악화하자, 대대적인 인력 감축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 회사 인력의 20~25%를 줄였고, 약 5개월 동안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며 월급 15~20%를 삭감했다. 회사는 비용 절감에 성공했지만, ‘혹시 내가 잘리는 것 아니냐’며 불안에 떠는 직원들이 늘어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 효과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주요 기업의 고용 현황은 어떨까. ‘이코노미조선’이 2019년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올해 6월 기준 기업들의 인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줄어든 유통과 패션·항공계에서 인력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롯데쇼핑은 무려 1000여 명의 직원을 정리했다. 롯데쇼핑이 공시한 2019년 사업보고서와 2020년 상반기 보고서를 보면, 2019년 말 2만5298명이던 직원이 올해 6월 2만4228명으로 1070명(4.2%) 줄었다. 롯데쇼핑이 이렇게 많은 인력을 감축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 때문이었다. 롯데쇼핑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535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2967억원)와 비교해 81.9% 감소한 수치다.

특히 온라인 및 디지털 전환이라는 유통 산업 트렌드에 맞춰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면서 발생한 현장 직원 감축 영향이 컸다. 롯데쇼핑은 올해 안으로 백화점·할인점·마트 등 120개 점포를, 이후 3여 년 동안 80여 곳을 추가로 폐점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현재 이런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200개 점포는 롯데쇼핑이 운영 중인 700여 개 의 30%에 달한다.

편의점·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을 운영하는 GS리테일도 인력을 약 1630명 줄였다. 이는 지난해 직원(8849명)의 18.4%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실적이 부진한 슈퍼마켓 GS더프레시 매장 문을 닫으면서 현장 직원 등도 함께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신규 채용도 하지 않았다.

패션 업계도 마찬가지다. 국내 패션 업계는 해외 브랜드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수출 기업과 자체 브랜드를 보유, 생산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내수 기업으로 나뉜다. 그런데 수출 OEM 업체들이 코로나19로 실적 악화를 겪으며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내수 기업도 상황이 좋지 않아 인력을 줄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2019년 말 1523명이던 직원을 올해 6월 1470명으로 3.5% 줄였고, 같은 기간 LF 역시 직원을 3.1% 감축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보통 1% 미만을 정년퇴직 등 기업 운영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인력 감축으로 본다.


“어쩔 수 없는 선택” 말로만 인재 경영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고객이 급격히 줄어든 항공 업계도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9년 말 7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말 전체 직원(1만9063명)의 2%에 해당하는 382명을 정리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올해 상반기에 76명의 인력을 줄였다.

저비용항공사(LCC)는 현재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규모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보다 훨씬 크다. 이스타항공은 10월 14일 605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업계는 이스타항공이 추후 추가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을 400여 명 수준으로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선·국제선 운항을 모두 중단할 당시 1680여 명의 직원 수와 비교하면 무려 1280여 명(76%)을 줄이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우리는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며 인재 경영을 강조하지만, 위기를 맞으면 비용 절감 1순위로 인력 감축에 나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은 하나같이 ‘미안하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인재 경영을 외친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대적으로 투자·고용 계획을 밝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동 비용 상승 충격을 받은 기업들이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실적 감소와 디지털 전환 압박 등으로 비용이 늘면서 고용을 줄이고 있다”며 “이미 주요 기업들이 채용 방법을 ‘정기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 바꾼 것도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살아남은 사람도 불안 느껴…회사 성장엔 마이너스”

오계택성균관대 사회학 석사, 미 위스콘신대 노사관계학 박사
오계택
성균관대 사회학 석사, 미 위스콘신대 노사관계학 박사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인력 감축 현상을 우려했다. 오 실장은 11월 3일 ‘이코노미조선’과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적 악화 등을 고려하면, 일부 업종 특히 대면 서비스업은 어느 정도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기업이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인력 감축이 무조건 1순위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인력 감축으로 인해 크게 두 가지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우선 인력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선 우수한 인력은 남고, 성과가 낮은 근로자가 나가길 원하지만, 현실에선 반대로 성과가 낮은 근로자는 남고, 고성과자가 떠나는 ‘역선택’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성과자는 갈 기업이 없고, 고성과자는 상대적으로 원하는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신입사원을 채용해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 실장은 ‘생존자 효과’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이 이번에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다음 구조조정에선 해고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며 “근로자는 매우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 성장에 큰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했다. 

기업이 꼭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공정한 원칙도 필요하다. 오 실장은 근속연수가 높은 근로자를 먼저 보호하는 미국 기업들의 인력 감축 원칙을 예로 들었다. 그는 “미국의 거의 모든 기업은 근속연수가 낮은 근로자부터 정리한다”며 “만약 기업이 회복해 다시 인력을 채용하는 상황이 되면, 해고한 근로자부터 우선 고용한다”고 했다.

오 실장은 또 “인력 감축이 아닌 다른 대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 등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면서 핵심 인재를 유지하고 지속 성장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