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체크 문양에 필터 기능을 결합한 버버리 마스크. 사진 버버리 / 루이뷔통이 출시할 100만원대 안면 보호구. 사진 루이뷔통
왼쪽부터 체크 문양에 필터 기능을 결합한 버버리 마스크. 사진 버버리 / 루이뷔통이 출시할 100만원대 안면 보호구. 사진 루이뷔통

올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에서 팝 가수 레이디 가가는 총 9벌의 마스크 패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레이저가 나오는 마스크부터 뿔 달린 마스크, 스팽글로 장식된 마스크에 투명 헬멧까지. 예술에 가까운 마스크 패션을 선보인 그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며 대중에게 마스크 착용을 독려했다.

9월 초 열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선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턴이 클러치백 대신 황금 가면을 들고 레드카펫에 섰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는 공식 석상에서 여성스러운 원피스에 꽃무늬 마스크를 착용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속하면서 마스크가 패션 액세서리로 부상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하자 옷차림에 맞춰 마스크를 골라 쓰는 이가 늘어난 것. 최신 유행하는 가방을 ‘잇 백(it bag)’이라 부르듯 ‘잇 마스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영국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인기 제품 순위에 마린 세르의 250달러(약 29만원)짜리 필터 마스크와 오프화이트의 100달러(약 11만원)짜리 면 마스크가 각각 여성 부문 2위와 남성 부문 1위에 올랐다. 이 기간 전 세계 마스크 판매는 전 분기보다 441% 증가했다.

중고 시장에서 오프화이트 마스크가 466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한정판 운동화 등을 취급하는 온라인 중고 거래소 스톡X(StockX)에 따르면, 3월부터 5월까지 마스크 거래가 210% 늘었고, 마스크 가격은 282% 올랐다. 일본에서도 패션 마스크 전용 매장이 문을 열고, 결혼식용 마스크와 악기 연주자용 마스크가 크라우드 펀딩에 등장하는 등 마스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패션계에 마스크가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스트리트 패션계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반항심과 자유분방함을 표현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지난 1월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10~20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통하는 팝 가수 빌리 아이리시가 구찌 로고가 들어간 망사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 대표적. 한때는 소셜미디어 문화의 영향으로 현실에서도 자신을 은폐하고 왜곡하기 위해 마스크와 복면(발라클라바)을 쓰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마스크는 기이한 차림새로 통했다. 홍콩과 유럽에선 마스크가 반정부 시위의 상징이 되면서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마스크의 위상은 달라졌다. 매출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던 패션계도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써 보자”며 태세를 전환했다.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개성을 담은 패션 마스크를 출시했고, 대중은 화답했다.

이제 마스크는 감염병을 막는 보호장구인 동시에, 개성을 투영하는 수단이 됐다.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을 담당한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는 직접 제작한 패션 마스크를 판매한다. 레오파드 문양의 원단이나 금박과 구슬로 장식한 화려한 마스크를 선보인 그는 “나는 여러 개의 마스크를 갖고 있는데, 의상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걸치듯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이디 가가가 ‘2020 VMA’에서 선보인 다양한 마스크 패션. 진주와 패턴으로 장식한 마스크를 선보인 크리스천 시리아노. 마린 세르가 마스크 전문 업체 에어리넘과 협업해 출시한 필터 마스크. 꽃무늬 마스크를 착용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오프화이트의 면 마스크. 사진 페이스북·인스타그램·오프화이트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이디 가가가 ‘2020 VMA’에서 선보인 다양한 마스크 패션. 진주와 패턴으로 장식한 마스크를 선보인 크리스천 시리아노. 마린 세르가 마스크 전문 업체 에어리넘과 협업해 출시한 필터 마스크. 꽃무늬 마스크를 착용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오프화이트의 면 마스크. 사진 페이스북·인스타그램·오프화이트

마스크, 부진한 패션계 구원투수로

코로나19 사태 후 실적이 악화한 패션계는 새로운 먹거리로 마스크에 주목하고 있다. 초기엔 원단에 브랜드 로고나 문양을 넣은 면 마스크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방역 필터를 더한 기능성 마스크로 진화하는 추세다. 기능성 의류 개발에 노하우가 있는 나이키·아디다스·뉴발란스 등 스포츠 브랜드는 일찌감치 보호용 마스크를 선보였고, 일본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유니클로도 마스크로 부진한 매출을 만회했다. 코로나19 이후 성장세가 꺾였던 유니클로는 지난 6월 여름용 소재인 에어리즘 원단으로 만든 마스크를 출시한 후 월 매출이 123% 이상 신장했다. 미국 의류 업체 갭(Gap)도 2분기에만 1억3000만달러(약 1510억원) 상당의 마스크를 팔았다.

국내 패션 기업들도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속옷 기업 쌍방울은 마스크 전문 기업 지오영과 700억원 규모의 마스크 공급 계약을 하고 KF 보건용 마스크 사업에 진출했고, 레깅스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 안다르는 화학섬유 업체 효성 티앤씨와 함께 운동용 마스크를 내놨다.

명품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버버리는 지난 8월 체크 원단에 필터가 들어간 기능성 마스크를 90파운드(약 14만원)에 출시했다. 루이뷔통은 10월 30일 핼러윈데이를 기념해 모노그램 로고가 들어간 안면 보호구(페이스 실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가격은 961달러(약 112만원)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보호장구에 과도한 값을 매겨 이익을 챙기는 명품 업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명품 브랜드 전문가인 마티나 올버토바 박사는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안장을 만들던 에르메스와 여행용 가방을 만들던 루이뷔통처럼, 명품은 필수품을 중심으로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며 “2050년엔 마스크를 들고 다니는 게 지갑을 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은 명품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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