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개인 공방에 흩어져 있던 예술가들이 공유공방 커뮤니티 공간에 모이고 있다. 사진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
각자의 개인 공방에 흩어져 있던 예술가들이 공유공방 커뮤니티 공간에 모이고 있다. 사진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

개인 공방에 갇혀있던 고독한 예술가들이 ‘공유공방’으로 모이고 있다. 다양한 작품관을 지닌 여러 예술가가 모여 창조적 시너지를 내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현실적인 ‘돈 문제’가 크다. 상위 1%를 제외한 대다수 예술가는 작품 판매가 아닌 일반인 대상 클래스(수업) 진행을 통해 돈을 번다. 그런데 개인 공방의 경우 허름한 데다 입지까지 나빠 수강생 모집이 어렵다. 이 때문에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공유공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술 하면 밥 굶는다’는 속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4월 4일 공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인의 연 평균 수입은 1281만원으로 국내 임금 근로자 평균 연봉(3634만원)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예술가가 임대료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서울 외곽에 개인 공방을 차린다. 문제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공릉동의 한 공예 예술가는 “며칠 동안 공들여 작품을 만들어도 ‘조금 예쁜’ 인테리어 집기로 몇만원에 팔리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개인전이라도 여는 시기엔 식비까지 아껴 전시 비용을 마련한다”고 했다. 그는 “작품이 돈이 안 되다 보니 일반인 대상으로 ‘장신구 만들기 클래스’ 같은 걸 진행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데 공방 환경이 열악하고 찾아오기도 쉽지 않아 클래스 수강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클래스 수강생 확 늘어…“이제 밥 안 굶어도 돼요”

온라인 수공예 마켓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는 지난해 7월 1일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이하 아크랩)’을 서울 서교동에 오픈했다. 국내 최초의 공유공방이다. 개인 작업실 24실과 전자·조향(調香)·가죽·도예·금속·섬유 등 전문 작업실 6실으로 이뤄져 있다. 공용 클래스룸과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크랩의 최대 장점은 입지가 ‘예술가의 성지’인 홍대라는 것이다. 작품 활동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쉽고 만든 작품을 내다 팔 플리마켓(flea-market)도 곳곳에 있다. 공방 클래스를 찾는 고객 대부분이 색다른 ‘데이트 코스’를 찾아온 연인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수강생 모집도 수월하다. 아크랩 입주 비용은 보증금 없이 월 45만~60만원, 비슷한 입지에 개인 공방을 차리려면 보증금 수천만원과 월세 10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아크랩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다른 예술가들과 작업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다”면서 “그런데 입주하고 나서 수입이 눈에 띄게 늘었고 걱정했던 작업 여건도 오히려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도예가 오모(작가명 알로앤로지)씨는 “너무 비싸서 그동안 손 닿기 어려웠던 전문 집기들이나 전기가마를 이곳에선 쉽게 사용할 수 있어 작업 여건이 좋아졌다”며 “홍대입구역 도보 5분 거리로 접근성이 워낙 좋다 보니 클래스 수강생도 확연히 늘었다”고 말했다. 아크랩 관계자는 “현재 개인 작업실 24실이 꽉 찼고, 순번을 기다리는 작가도 2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클래스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연인과 함께 아크랩을 찾은 김모씨는 “예전에 갔던 한 개인 공방은 외진 곳에 있어 찾아가기 어렵고 클래스가 끝나고 할 것도 마땅치 않았다”며 “이번에는 위치상 데이트 코스를 짜기 편해 좋았고, 자체 스튜디오에서 오늘 만든 결과물을 예쁘게 촬영하고 바로 인화도 해줘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예술적 영감·전문 기술도 공유

아크랩에서는 일반인 대상의 클래스뿐만 아니라 작가 대상의 ‘노하우 전수’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1월 14일 아크랩에서 진행된 ‘휴대폰 케이스 제작법 클래스’에는 작가 10여 명이 모였다. 휴대전화 케이스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상품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품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가죽집기·금속집기·전기가마 등 다양한 기술을 무료로 습득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매달 열린다.

아크랩은 입주 예술가들에게 작품 마케팅·포장·배송 등 ‘원스톱 지원’을 제공해 온라인 판로 개척을 돕기도 한다. 공유공방 입주 8개월 차인 조향 작가 김모(작가명 꼬띠)씨는 “이전엔 기획부터 디자인·마케팅·포장·배송까지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고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며 “입주 후에는 온전히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예술가들의 수요가 많아지며 최근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여러 공유공방이 생겨나는 추세다. 서교동에는 아크랩 외에도 각각 장신구, 공작 전문 공유공방인 ‘아틀리에 M’과 ‘소셜팩토리메이커스’가 있다. 패션의 메카인 동대문에는 봉제 공유공방 ‘라잇루트 쉐어’가, 수제화 거리로 유명한 성수동에는 가죽 공유공방이 자리했다. ‘여럿이 모여 비용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자’는 목적으로 예술가 서너 명이 모여 소규모 공유공방을 만드는 사례도 늘어나는 등 많은 예술가들이 공유공방에 모이고 있다.


plus point

[Interview] 이은지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 담당자
“공유공방, 지속가능한 수익구조 창출”

이은지 경희대 언론정보학 학사, 아이디어스 작가관계영업팀
이은지
경희대 언론정보학 학사, 아이디어스 작가관계영업팀

이은지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 담당자는 ‘공유공방’이라는 낯선 개념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장본인이다. 이 담당자는 3월 16일 ‘이코노미조선’과 전화 인터뷰에서 “공유공방은 예술가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다”라며 “아크랩의 목표는 예술 활동을 꽃피우는 토양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공방을 만들게 된 이유는.
“예술가의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외진 곳에 작업실을 차린다. 작품 판매 만큼 클래스 수익도 중요한데, 교통 불편을 감수하는 수강생이 얼마나 되겠나. 결국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접근성과 상권이 좋은 홍대에 아크랩을 세웠다. 클래스가 잘되면 예술가 수입이 안정되고, 이는 작품 활동 몰두로 이어진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예술가’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아크랩은 악순환에서 벗어나, 선순환으로 진입하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

‘클래스를 진행하기 좋다’는 점 외에 어떤 장점이 있나.
“아크랩 5층에는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개인 공방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모이고 여기서 자연스럽게 ‘케미(사람들 사이의 조화)’가 일어난다. 색다른 시각을 접하며 참신한 영감을 얻거나 협업하기도 한다. 전문 작업실에 구축한 고가의 설비는 평소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입주 예술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전문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오픈한 지 8개월 됐는데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향후 확장 계획은.
“아직은 초기 단계라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일단 1호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호점부터는 식품·화장품 등 다른 영역의 공유공방을 구상하고 있다. 수익성보단 예술 활동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확장해 나갈 것이다.”

조강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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