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가 있는 KEB하나은행 광화문역 지점에서 고객들이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북카페가 있는 KEB하나은행 광화문역 지점에서 고객들이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제가 알고 있던 은행 같지가 않긴 한데,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계속 방문하게 되더라고요.”(30대 직장인 A씨)

7월 30일 KEB하나은행 광화문역 지점. 출입구에 ‘KEB하나은행×BOOK BY BOOK(북바이북)’이라고 쓴 큼지막한 간판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왼쪽에는 은행 창구 6곳, 오른쪽에는 ‘북바이북’에서 운영하는 북카페가 마련돼 있다. 점포 면적의 절반 이상을 서점과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지점 내 고객들이 앉아 있는 책상과 걸상이 원목이어서 카페 느낌이 났다. 실제로 은행 업무를 보러 온 사람이 절반, 은행 업무와는 관계없이 미팅을 하거나 잠시 쉬면서 책을 읽으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광화문 업무지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간단한 회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은행 잠실롯데월드몰점에는 아예 간식거리를 파는 매장이 입점해 있다. 이 지점에는 창구 수를 줄이는 대신 그 공간에 ‘크리스피크림도넛’ 매장을 들인 것.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업종이 한 집 살림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은행 업무를 보러 왔다가 대기 시간을 틈타 간식을 구입하는 사람도 보였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은행 점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길다란 은행 창구 앞에서 고객들이 번호표를 들고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 전형적인 은행 점포가 아니라, 카페·서점과 비슷한 분위기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 지점에 디저트 가게 등 식음 매장을 입점시키는 은행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은행이 변신을 시작한 것은 모바일 뱅킹이 발달한 영향이 크다. 인터넷·휴대전화를 통해 집에서도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기준 채널별 은행 업무 처리 비중(입출금, 자금 이체 거래 건수 기준)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은 53.2%인 반면 창구는 8.8%에 불과했다. 고객들이 찾지 않는 오프라인 지점이 줄줄이 폐점하고 있다. 올해 3월 말 전국 은행 점포 수는 6743곳으로, 7년 전인 2012년(7687곳) 대비 12.3% 줄었다.

내방 고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은행이 무작정 오프라인 점포 수를 줄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금력 있는 중장년층·노년층은 여전히 직접 창구에 방문하는 것을 선호하고, 주택담보 대출 등 금액이 큰 은행 업무는 지점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점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법으로 나온 것이 ‘숍인숍(shop in shop)’ 개념의 지점이다. 숍인숍은 기존 매장 안에 다른 업종 매장을 들이는 점포 형태다. 그동안은 화장품·패션 업체나 대형유통업체가 고객 수와 매출을 늘리기 위해 택하는 방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보수적이었던 은행도 숍인숍 전략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비교적 관리가 편한 커피숍을 숍인숍으로 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에는 입점 업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NH농협은 일산주엽점에 ‘하나로마트 편의점’을, KEB하나은행은 강남역점에 온라인 편집숍(의류·액세서리·생활용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매장)인 ‘29CM’를 입점시켰다. KB국민은행 서교동점은 홍익대 근처에 위치했다는 입지적 특성을 살려 지점을 공연·전시·강연장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우리은행 지점 안에는 도넛 매장인 크리스피크림도넛이 있다. 사진 우리은행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우리은행 지점 안에는 도넛 매장인 크리스피크림도넛이 있다. 사진 우리은행

젊은 고객 유입 등 마케팅 효과 쏠쏠

은행들은 ‘숍인숍 점포’로 다양한 이익을 보고 있다. 우선 입점 점포들에서 걷는 임대료 수익이 쏠쏠하다. 보통 시중은행 지점은 상권 중심부나 상가 1층 등 매매가·임대료가 비싼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은행은 오후 4~5시면 문을 닫는 점,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점 때문에 비용 대비 공간 효율이 낮았다. 반면 ‘숍인숍’으로 운영하면 입점 가게에 임대료와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정해 받으면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조(兆) 단위 수익을 내는 은행들은 점포 변신으로 ‘임대료 수익’보다 고객 서비스와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상 은행 지점은 평소에는 한가하다가도 점심시간 이후 등 특정 시간에 고객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딱딱했던 기존 지점 인테리어를 여유로운 분위기로 바꾸니 고객들의 체감 대기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점포별로 어떤 업종을 들이느냐에 따라 해당 지점의 특색을 고객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반 고객을 은행 고객으로 만들 마케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며 “실제로 카페를 입점시킨 지점의 경우 점심시간에 근처 직장인 고객들이 방문하는 일이 특히 늘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노년층 고객들은 ‘은행이 무슨 장사도 하냐’ ‘(은행 안에 설치돼 있는 것이니) 공짜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이용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

최진영 하나은행 컬처뱅크TFT 대리는 “오프라인 은행을 잘 찾지 않았던 젊은층 유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사례가 많은 만큼 앞으로 은행권에서 기존 지점을 변신시키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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