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일본 최대 주류 회사 아사히그룹홀딩스가 호주의 맥주 회사 칼튼앤드유나이티드브루어리(CUB)를 1조2000억엔(약 13조53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주 맥주 시장 점유율 50%인 CUB는 현지에서 국민 맥주로 불리는 ‘빅토리아 비터’를 생산한다.

아사히는 올 들어 두 번째로 해외 주류 회사를 인수했다. 지난 1월에는 에일 맥주 ‘런던프라이드’를 생산하는 영국 풀러스의 맥주·음료 사업부를 사들였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에서 촉발된 한·일 통상 전쟁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라는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쓰던 여러 국내외 유명 브랜드에 일본계 자본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사히그룹이다. 맥주 애호가 손지나씨는 7월 초부터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의식해 편의점에 가면 좋아하는 아사히 수퍼드라이 맥주 대신 체코의 필스너우르켈 맥주나 코젤 맥주를 골랐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이 두 회사 모두 아사히그룹 소유라는 것을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주류 시장 점유율 3%로 7위인 아사히그룹은 3년 전부터 유럽 맥주 브랜드를 거침없이 사들여왔다. 2016년 세계 1, 2위 주류 회사 AB인베브와 SAB밀러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SAB밀러가 보유하고 있던 유럽 맥주 회사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때 아사히 산하로 합류한 맥주 브랜드가 체코 필스너우르켈과 코젤, 이탈리아 페로니, 네덜란드 그롤쉬, 폴란드 티스키에 등이다. 당시 M&A에 아사히그룹이 쏟아부은 자금이 1조2000억엔에 달한다.(CUB 인수 제외)

이런 사례는 화장품, 패션 등 일반 소비자와 접점이 있는 소비재 관련 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최대 화장품 기업인 시세이도는 수차례에 걸친 M&A를 통해 지금의 브랜드 라인업을 갖췄다. 색조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는 물론 중저가 세안제 퍼펙트휩부터 프랑스 명품 화장품 브랜드 끌레드뽀보떼, 색조 브랜드 나스 코스메틱스와 로라메르시에 등 21개 브랜드다.

유니클로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도 2004년 일찌감치 뉴욕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유명한 띠어리, 헬무트랭을 인수했고, 2012년에는 로스앤젤레스(LA) 프리미엄 청바지로 유명한 J브랜드도 사들였다. 프랑스 속옷 브랜드 프린세스탐탐, 패션 브랜드 꼼뜨와데꼬또니에도 보유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한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M&A가 중요한 탈출구다. 내수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시장 진출뿐만 아니라 투자 수익, 미래 사업 모델 확보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아사히그룹이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전년보다 12% 증가한 반면, 일본 시장 수익은 3% 감소했다. 해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새 시장 활로를 확보한 것이다. 덕분에 전체 수익이 2조엔에서 2조1200억엔으로 증가했다.

시세이도도 지난 5월 공개한 2018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이 기간 영업이익이 1084억엔으로 전년보다 34.7% 증가했다고 밝혔다. 시세이도 측은 당시 수익성 높은 ‘프레스티지 라인’의 실적 개선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끌레드뽀보떼·나스·로라메르시에 등 M&A로 확보한 고가 제품군을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렇게 사들인 해외 브랜드에 일본 색을 주입하는 대신 기존의 색깔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2009년 주류 회사 산토리가 인수한 프랑스 음료 브랜드 오랑지나가 대표적이다. 오렌지 과즙이 들어간 탄산음료로 프랑스 국민 음료로 불리는 오랑지나는 한국 시장에서는 병 디자인에 프랑스 국기 그림을 달아 판매한다. 프랑스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김승현씨는 “당연히 프랑스 음료라고 생각했는데, 일본 산토리가 모기업이라니 놀랍다”고 했다.


해외 직접 투자 수익 年 10조엔 돌파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2006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거품 붕괴에서 회복한 기업들이 해외 기업사냥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3년간 눈에 띄게 규모가 커지고 건수가 많아졌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해외 M&A 성사 규모는 1907억달러(약 213조원)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자문회사 레코후에 따르면 2010년 371건 정도였던 M&A가 작년에는 1000건 이상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금리도 기업들의 움직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6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마이너스 초저금리(-0.1%)로 기업들은 거액의 인수 자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을 3조30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인수한 것도 이때다. 2년 뒤인 2018년에는 일본 최대 제약사 다케다약품공업이 희귀 질환제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아일랜드 제약사 샤이어를 6조8000억엔에 인수했다. ARM 인수금액의 두배다.

이 같은 일본 기업의 해외 M&A 전략과 방법은 한국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시장 상황이나 매출, 불확실성에 따라 부침을 겪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수익이 처음으로 10조엔(약 109조원)을 돌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업이 수출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해외 기업 M&A를 통해 현지에서 벌어 거기에서 나온 수익을 일본으로 돌려보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전문위원은 “일본 경제 거품기에는 기업의 해외 투자가 증시·채권 등 금융 투자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최근의 현상은 기업들이 해외 직접 투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면서 “일본은 무역 수지가 소폭 적자 혹은 균형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 투자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성숙한 채권국’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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