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는 기존 주력 제품 하이트와 마찬가지로 라거맥주다. 라거맥주는 향과 깊은 맛이 적은 대신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특징이다. 사진 하이트진로
테라는 기존 주력 제품 하이트와 마찬가지로 라거맥주다. 라거맥주는 향과 깊은 맛이 적은 대신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특징이다. 사진 하이트진로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선 요즘, 맥주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특히 올여름에는 작년에 없던 하이트진로의 ‘테라(TERRA)’까지 가세, 맥주 업체들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울 전망이다. 특히 ‘테라는 청량감이 남다르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맥주 애호가들은 일찌감치 ‘카스 vs. 테라’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하이트진로의 주력제품인 하이트는 1996년부터 국내 맥주 시장 1위를 지켰으나, 2012년부터 카스에 1위 자리를 넘겨준 뒤 현재 25% 정도의 점유율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맥주 전쟁이란 말이 틀린 것도 아닌 것이, 3월 21일 출시된 테라의 상승세가 역대 어느 맥주 신제품 초기 반응보다 뜨겁다. 테라는 39일 만에 1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한 데 이어, 그다음 33일 만에 또 100만 상자를 팔아치웠다. 200만 상자 판매를 72일 만에 돌파한 것이다. 그동안 하이트, 맥스, 드라이피니시d 등 하이트진로의 기존 제품 출시 첫 달 판매량이 20만~30만 상자 수준임을 감안하면, 기존 맥주의 3~4배 수준에 이르는 폭발적인 반응이다. 경쟁 제품인 카스, 클라우드에 비해서도 테라의 초반 판매가 훨씬 앞선다.

테라는 하이트진로가 지난 3월 ‘청정 라거’를 표방하면서 내놓은 신제품 맥주다. 테라는 세계 공기질 부문 1위를 차지한 호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유명한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맥아만을 100% 사용하고, 발효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리얼탄산만 100% 담았다. 제품명 테라는 라틴어로 흙, 대지, 지구를 뜻한다.

테라는 기존 주력제품 하이트와 마찬가지로 라거맥주다. 라거맥주는 발효공정이 다른 에일맥주에 비해 향과 깊은 맛은 적은 대신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특징이다. 테라는 원료와 발효공정을 차별화해, 하이트보다 청량감이 더 뛰어나다는 게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최근 맥주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한 신제품이라는 지적도 있다. 원료와 발효공법을 차별화했다지만, 기존 하이트와 맛에서도 별 차이가 없는, 똑같은 라거맥주를 신제품으로 내놓음으로써, 맥주 마니아층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수제맥주를 선두로 쌉싸름한 향을 강조하는 에일맥주가 맥주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하이트진로 측이 내세우는 테라의 특징은 ‘청정맥아 100%, 리얼탄산 100%’다. 청정맥아는 청정 1위 국가 호주에서도 가장 청정농업지역으로 꼽히는 호주 골든트라이앵글산 맥아를 말한다. 호주 골든트라이앵글산 맥아는 일반 맥아보다 더 고소하다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설명이다. 현무암 기반의 비옥한 검은 토양은 건강한 보리 생육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지역은 데이터 농법, 차량통행 제한, 토양 교란 최소화, 야생동물과 공존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테라의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는 ‘리얼탄산’이다. 맥주 맛의 핵심은 탄산이다. 찬 맥주를 마시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청량감을 주는 것이 바로 탄산 때문이다. 탄산은 맥아(싹이 난 보리)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자연탄산을 맥주병이나 캔에 병입할 때까지 잘 유지하는 것이 맥주 생산공정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그러나 대형 발효탱크 내에 탄산이 가득 차면, 압력이 커져 탱크가 폭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 탄산이 쌓이면 밸브를 열어 소량의 탄산을 밖으로 분출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이럴 경우 빠져나간 탄산만큼, 외부에서 만든 인공탄산을 나중에 주입하게 된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하이트진로 생산 공장. 사진 박순욱 기자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하이트진로 생산 공장. 사진 박순욱 기자

그러나, ‘리얼탄산’ 맥주 테라는 외부 탄산을 전혀 넣지 않았다. 탄산이 대량 발생하는 발효공정을 획기적으로 개선, 자연적으로 생기는 탄산이 거의 유출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소량 빠져나가는 리얼탄산을 별도로 저장하는 기술과 장비도 새롭게 도입했다. 하이트진로 연구소 주류개발1팀 이동현 책임연구원은 “외부 탄산을 전혀 넣지 않는 테라는 다른 제품보다 거품이 훨씬 조밀해 탄산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마실 때도 청량감이 지속된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신제품 테라의 초기 반응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트진로의 주력제품인 하이트가 2012년 카스에 국내 맥주 1위 자리를 빼앗긴 데 이어 2014년부터는 영업적자로 돌아서면서 5년 연속 손실을 기록, 맥주 사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이트가 카스에 밀린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없던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 트렌드’ 때문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폭탄주는 맥주에 위스키를 섞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장기 경제불황, 알코올 도수 높은 고도주 기피 등의 시대 흐름을 타고 위스키 대신 소주에 맥주를 타서 마시는 소맥이 애주가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경쟁 업체인 오비맥주는 이런 흐름을 제때 읽고 ‘카스처럼(카스와 처음처럼을 섞어 마시는 음용 행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카스 판매에 열을 올렸지만, 하이트진로는 자사의 맥주 ‘하이트’와 소주 ‘참이슬’ 이름을 아무리 조합해 봐도 소맥 칵테일 ‘카스처럼’만큼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쉬운 이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경쟁 업체의 ‘카스처럼’ 마케팅에 밀린 것이다. 물론 카스의 선전은 소맥 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지속적인 품질개발과 더불어 젊은층을 겨냥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하이트진로도 하이트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맥주 시장 1등을 유지하면서도 신제품으로 점유율을 더 키우려고 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6년 맥스, 2010년 드라이피니시d를 내놓았다.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승세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당시는 하이트가 1위를 지키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신제품을 무조건 띄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보다 훨씬 덜했다.

그러나 지금의 테라는 탄생 배경 자체가 전혀 다르다. ‘호시절’에 태어나지 못했다. 하이트가 ‘확고한 2등’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승부수가 테라다. 절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 1위와 점점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인 3위 롯데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하이트진로가 맥주 사업의 명운을 걸고 내놓은 ‘기사회생용 카드’다.

하이트진로는 초기 반응이 좋은 테라를 대한민국 대표맥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앞으로 마케팅 중심을 기존의 하이트맥주보다는 테라에 두겠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 오성택 마케팅실장은 “한국 맥주 시장의 98%가 라거맥주이기 때문에 신제품 테라 역시 라거맥주로 만들었다”며 “출시 1년 만에 두 자릿수 점유율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