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유의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SSG 광고 포스터. 이 광고에서 SSG는 온라인 신조어 ‘쓱’을 자사의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한다. 사진 신세계
배우 공유의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SSG 광고 포스터. 이 광고에서 SSG는 온라인 신조어 ‘쓱’을 자사의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한다. 사진 신세계

“아 추워. 코트 하나 쓱 해야겠어요.”
“하는 김에 김치도 쓱 해요.”
“맘에 쓱 들어”

배우 공효진과 공유는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SSG의 광고에서 ‘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대화를 나눈다. 쓱은 SSG의 영문 초성(ㅅㅅㄱ)을 소리 나는 대로 읽은 것으로 광고에서는 ‘SSG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광고가 SNS를 통해 큰 인기를 끌자 신세계는 아예 ‘쓱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후속 광고를 실었다.

후속 광고에서 공효진과 공유는 “식석갓세?” “싯슷기 솩~가세” “석! 새각, 소~긋!” 등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대단한데?” “믿음이 확~가네” “헉! 대박, 소~름!”이란 문장의 단어 자음을 ‘ㅅ’과 ‘ㄱ’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런 문장의 변형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뜻을 이해할 수조차 없는 말이 광고로 노출됐지만 젊은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2016년 처음 쓱 광고가 방영되자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매출은 전년보다 32%가 급증했고,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23%, 16%씩 매출이 늘었다.

신세계뿐 아니라 많은 식품·유통 기업이 온라인 신조어를 활용한 마케팅에 도전하고 있다. 가장 큰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자)가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함께 사용해 그들의 동질감을 이끌어내야만 브랜드와 제품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신조어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는 식품 기업 팔도의 ‘괄도네넴띤’이다. 괄도네넴띤은 팔도가 비빔면 출시 35주년을 기념해 지난 2월 한정판으로 출시한 제품이다. 얼핏 보면 뜻을 알 수 없는 괄도네넴띤은 팔도비빔면의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대체 표기해 멀리서 봤을 때 같은 단어로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일종의 글자 바꾸기 놀이를 적용한 이름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글자 바꾸기 놀이를 야민정음이라고 부른다.

괄도네넴띤은 출시 한 달 만에 500만 개의 한정 수량이 모두 팔렸고 추가 생산까지 이뤄져 현재까지 1000만 개가 팔렸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팔도비빔면(괄도네넴띤 포함)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51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보다 40.4% 증가한 수준이다. 라면 전체의 브랜드별 매출 순위에서는 10위를 기록했다. 차가운 면의 비수기인 1분기에 팔도비빔면이 매출 순위 10위권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괄도네넴띤의 성공이 매출 급증의 요인으로 꼽힌다. 대학원생 김지원(26)씨는 “괄도네넴띤이라는 이름뿐 아니라 포장지에 존맛탱(엄청 맛이 있다는 뜻의 속어)이라는 특이한 표현도 쓰여 있어 호기심에 먹어 봤는데 기존의 팔도비빔면보다 매콤달콤한 맛이 더 강했다”며 “지금도 매콤달콤한 맛이 생각나면 가끔씩 괄도네넴띤을 먹는다”고 했다.

위메프도 2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의 온라인 신조어 마케팅을 펼쳤다. 위메프를 야민정음인 ‘읶메뜨’로 표기하고 할인 상품의 명칭을 ‘스띠귀(스피커)’ ‘귀띠머신(커피머신)’ ‘치귄(치킨)’ ‘공7l청정7ㅣ(공기청정기)’ 등으로 바꿔 판매했다.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위메프가 만든 야민정음 단어들이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야민정음 외에도 젊은 소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로는 초성체가 있다. 야민정음이 착시효과를 활용해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을 조합한 것이라면, 초성체는 단어의 첫 자음을 뽑아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정’이라는 단어를 ‘ㅇㅈ’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편의점 CU는 초성체로 이름 붙인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쇼콜라 생크림 케이크는 ‘ㅇㄱㄹㅇㅂㅂㅂㄱ(이거레알반박불가)’, 쿠키&생크림 케이크는 ‘ㅇㅈ?ㅇㅇㅈ(인정? 어 인정)’, 밀크캐러멜 생크림 케이크는 ‘ㄷㅇ?ㅇㅂㄱ(동의? 어 보감)’으로 붙였다. ‘ㅇㄱㄹㅇㅂㅂㅂㄱ’는 2017년 말 출시된 후 3개월 만에 100만 개가 팔렸다.

이 제품들을 만들어 CU에 납품한 식품 업체 피오레의 매출은 2017년 36억원에서 지난해 114억원으로 1년 동안 세 배 이상 늘었다.


41년 최장수 과자 이름까지 바꿔

야민정음이나 초성체를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 이름을 개발하는 곳도 있다. 롯데면세점은 영문명 롯데듀티프리(LOTTE DUTY FREE)의 영어 단어 첫 글자 LDF에서 D를 밑으로 내리면 한글 ‘냠’이 되는 점에 착안해 브랜드 캠페인 이름을 ‘냠’으로 정했다. 냠은 음식을 먹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 냠냠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기분 좋은 쇼핑을 하라는 의미도 담았다. 롯데면세점은 ‘냠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탄소년단 등 한류 스타들이 출연한 광고 영상을 내보내고 있는데 채널의 정기 구독자가 53만 명에 달해 기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박상섭 롯데면세점 홍보팀장은 “젊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냠’이라는 신조어를 캠페인 이름으로 만들었는데 캠페인 이후 20대와 30대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롯데제과도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축약어를 활용한 마케팅에 나섰다. 롯데제과는 6월 17일 자사 제품 롯데샌드를 ‘롯샌’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롯데샌드는 롯데제과가 1978년부터 판매해 온 최장수 비스킷인데 40년 넘게 유지해온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새로운 조어를 만들지는 않지만 젊은층이 긴 단어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을 제품명에 반영했다. 롯데제과는 “롯샌이라는 제품명은 요즘 10대들이 롯데샌드를 줄여 말하는 데서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문법을 변형한 온라인 신조어 마케팅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체 인구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앞으로 20년간 소비의 중추 역할을 하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활동인구가 될 것으로 예상돼, 이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강서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0대와 20대 젊은층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름 붙여진 제품이 나오면 호기심을 갖고 서로 SNS 등을 통해 이 제품을 알린다”며 “결국 이런 입소문 마케팅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길 원하는 윗세대인 30대, 40대로 확산되면서 온라인 신조어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젊은층의 은어를 브랜드나 제품 이름에 사용해서 그들이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고 쉽게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다”며 “젊은층이 기업의 영업 활동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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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민정음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바꿔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멍멍이를 댕댕이로, 명작을 띵작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 표기법으로 단어를 바꾸면 멀리서 봤을 때 착시효과 때문에 같은 단어로 인식되는데, 이런 재미를 느끼기 위해 젊은 세대들이 주로 사용한다. 야민정음이 시작된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야갤)인데, 야갤과 훈민정음을 합쳐 야민정음이라는 이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