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에서 고급 샴페인을 들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진 클럽 아레나
클럽에서 고급 샴페인을 들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진 클럽 아레나

“5바는 돼야 안전해.” “5바면 어디 가능해요?” “최소 4번이나 7번은 가능해.”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A클럽에 테이블 예약 문의를 한 대학생 김모(21·남)씨가 전해준 MD(Managing Director)와의 문자 대화 내용이다. ‘5바(바틀·병을 바틀이라고 부른다)’, 즉 5개 바틀의 술을 주문해야 안전하게 테이블을 잡을 수 있고 그중 4번이나 7번 테이블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A클럽에 따르면 ‘5바(이하 ‘병’)’를 주문할 경우 테이블당 최소 130만원에서 최대 166만원을 내야 한다. 5병을 모두 샴페인으로만 구성할 경우 130만원, ‘하드’로만 구성할 경우 166만원이다. ‘하드’는 ‘hard liquor(증류주)’의 줄임말로 보드카, 테킬라, 진 등을 일컫는 클럽계 은어다. 김씨는 이날 3명의 친구와 4번 테이블을 잡고 ‘하드 5바틀(하드로만 5병)’을 주문했고 인당 41만5000원을 썼다.

클럽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테이블을 얻으려면 돈을 더 써야 한다. 목요일과 일요일엔 최소 1병으로 예약할 수 있지만, 사람이 몰리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3병으로도 겨우 구석 자리 테이블밖에 얻을 수 없다.

클럽의 모든 테이블 예약은 MD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들은 테이블을 중개해주는 대가로 커미션(베팅의 몫으로 수수료를 얻는 식)을 받아 쏠쏠한 수익을 얻는다. 클럽 MD의 커미션은 공개되지 않지만, 업계에 따르면 대개 20~30% 정도를 받는다.

클럽 MD는 손님에게 술을 갖다주고 얼음을 수시로 갈아주는 일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테이블 예약을 받고 ‘누구를 어떤 테이블에 앉힐 것인가’, 즉 조판(彫版)을 하는 것이다. 판을 짠다는 의미의 조판은 대개 MD들이 오후 9~10시 ‘조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조판 회의는 철저한 ‘바틀’ 경쟁이다. MD 입장에서는 손님이 고액을 제시할수록 테이블 베팅 확률이 높아져 더 높은 커미션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테이블 예약 건수뿐만 아니라 테이블에 얼마를 베팅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MD의 수입은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보다 많다. 강남 클럽 옥타곤의 한 MD는 “토요일 하루만 출근해 알바처럼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번다”며 “알바가 아닌 생업이거나 잘나가는 MD는 한 달에 500만~1000만원, 혹은 그 이상 번다”고 했다. 클럽 버닝썬 관계자에 따르면 “클럽마다 톱 5에 드는 MD는 한 달에 1000만~2000만원 정도 번다”면서도 “최상위층 MD의 경우 한 달에 3500만원까지 벌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이블을 잡는 데 드는 금액은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스테이지와 가깝거나 가운데 쪽이 구석보다 높다. 김모씨는 “인기 많은 스테이지 쪽 자리를 차지하려면 테이블당 최소 200만~300만원을 줘야 한다”고 했다.

스탠딩으로 들어가면 3만원 정도지만 테이블 예약은 최소 35만원에서 최대 몇 천만원까지 든다. 한 클럽 MD에 따르면 “150만원 이상의 손님에 한해 고액으로 인정한다”며 “최근에는 200만원 이상이어야 그나마 고액으로 쳐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액을 베팅한 사람이 많은 금요일, 토요일엔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테이블 예약에 성공해도 후에 더 높은 금액을 베팅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함모(20·여)씨는 최근 강남의 한 클럽 테이블을 예약했지만 다른 사람이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해 밀린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한 번 방문에 최소 수백만원이 들기 때문에 온라인 사이트 등 모임을 통해 갹출해서 술값을 마련하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조각’이라고 부른다. 네이버카페 ‘클럽매니아’를 비롯한 온라인 클럽 커뮤니티에는 ‘클럽이름/일시/테이블위치/술/금액/모집인원’의 형식을 갖춘 테이블 조각 모집글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온다. 조각 인원은 대개 4명에서 10명 사이다.

‘조각’이 어떤 말에서 유래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클럽 이용객들은 ‘조각’을 ‘한 물건에서 따로 떼어 내거나 떨어져 나온 작은 부분’이라는 뜻의 ‘조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클럽 비용을 쪼개 여럿이서 감당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조각 대신에 ‘엔빵(클럽 비용을 N분의 1 한다는 뜻)’이라는 용어도 즐겨 사용하는데, 거의 같은 의미다.

클럽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인 조판(彫版)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 조판은 인쇄·편집에서는 흔히 쓰이지만 일반인에게 익숙한 용어는 아니다. 클럽 업계에서 조판처럼 한자로 된 전문용어가 사용된다면, 조각 또한 정치판에서 ‘내각을 조직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조각(組閣)’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클럽 출정(出征)에 함께할 팀을 짜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단 조판에서는 판에 새긴다는 의미로 ‘새길 조(彫)’를 쓰지만, 정치 용어 조각에서는 ‘짤 조(組)’를 사용한다.


1억원짜리 ‘만수르 양주 세트’도

조각으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초호화 상품’이 있다. 강남 지역 클럽엔 몇 천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양주들을 주문하는 VVIP들이 간혹 오기도 한다. 옥타곤 클럽의 한 MD는 “최소 25만원부터 2000만원을 쓰는 경우까지 봤다”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서는 강남의 한 유명 클럽에서 3500만원을 내고 최고급 양주를 마신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지난 4월엔 클럽 버닝썬에서 1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양주 세트가 팔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목받았다. 아랍에미리트의 석유 재벌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이름에서 따 일명 ‘만수르 세트’라 불리는 이 세트를 주문한 인물은 ‘비버팀’이라 불리는 젊은 사업가들로 알려졌다.

클럽 버닝썬 관계자에 따르면 만수르 세트는 지금까지 3번 팔렸다. 이 관계자는 “비싼 세트를 사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며 “대개 20대에서 30대 후반 개인 사업자이며, 중국 부호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일주일에 2~4번 정도 클럽을 찾는데, 한 번 방문할 때 3000만~3500만원 정도 쓰고, 한 주에 대략 1억5000만원을 쓴다”고 했다. 클럽에서는 VVIP 관리 차원에서 이들에게 닉네임을 붙여주고 방문할 때마다 응원가를 틀어준다.

테이블을 잡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남성이 클럽 이용객에게 거액의 현금을 뿌리는 경우도 있다. ‘골든벨 타임’이라 부른다. 버닝썬 관계자는 “300만~500만원을 현금으로 뿌리면 사람들이 그 돈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했다. 현금 대신 술을 대량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한 병에 80만원인 술을 40병 돌리는 식이다. 현금으로 치면 3200만원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한 VVIP는 지금까지 ‘현금 뿌리기’ ‘술 돌리기’를 모두 합쳐 총 30번의 골든벨을 울렸다. 최근 두 달간 쓴 금액이 8억원에 달했다. 그는 이들의 심리에 대해 “돈을 쓰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며 “그들에겐 클럽이 놀이동산과 같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최소 몇 십만원에서 최대 몇 천만원이나 되는 비싼 돈을 주고 하룻밤 유희를 즐긴다는 건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클럽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간다. 아무리 클럽 사장이나 MD와 친분이 있어도 더 높은 액수를 부르는 사람에게 테이블 선택권이 주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학연, 지연, 혈연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얘기가 있지만 클럽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이 원칙이자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