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전라남도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이마트 광고를 촬영했다. 사진 유튜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전라남도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이마트 광고를 촬영했다. 사진 유튜브

2020년 12월 17일 이마트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배추밭에 간 까닭은?’이란 제목이 달린 1분 54초짜리 광고 영상이 올라왔다. 이 광고에는 정 부회장이 모델로 등장한다. 영상 속 정 부회장은 전라남도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직접 수확한 배추를 재료로 현장에서 바로 요리를 한다.

요리 전 배추를 수레에 싣고 총총 달려가는 정 부회장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코믹하다. 이 장면만 보면 정 부회장이 국내 굴지의 유통 그룹 신세계를 이끄는 오너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후 정 부회장은 진중한 모습으로 그동안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공개한 요리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배추전·배추쌈·겉절이 등을 만든다. 그러면서 이마트의 신선한 식품을 강조하는 정 부회장의 내레이션이 영상에 깔린다. “갓 수확한 배추를 그대로 집에서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국 각지의 신선함을 전달하고 싶은 이마트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사계절 어느 산지에서나 식재료의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마트와 함께하는 건 어떨까요.”


정용진 “이마트 유튜브 채널 키운다”

팔로어 51만 명을 보유한 ‘SNS 스타’ 정 부회장이 모델로 등장한 이 광고의 효과는 상당하다. 2021년 1월 5일 현재 조회 수는 121만7804회이고 ‘좋아요’는 8만1000개가 달렸다. 정 부회장이 등장하지 않은 이마트 광고 영상의 조회 수가 적게는 2만 회, 많게는 40만 회인 것과 비교하면 그 효과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이 광고가 나간 2020년 12월 17일부터 2021년 1월 4일까지 이마트의 배추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무엇보다 ‘신선한 식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마트 핵심 가치이자 경쟁력을 수만 명의 소비자에게 알렸다. 그것도 회사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오너를 통해서다. 광고 업계에선 ‘오너가 출연한 광고보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홍보 전략이 있을까’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그룹 오너들이 광고에 출연하는 등 회사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 오너가 광고에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며 대외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하며 회사를 알리고 있다.

오너의 소통경영 변화는 SNS·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시작했다. 기업이 단순히 제품을 출시하고 TV 등 전통 매체를 통해 광고하는 시대가 끝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소비자를 공략해야 하는 상황에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오너 광고 출연’이라는 전략을 짠 것이다. 또 할아버지, 아버지 등 이전 세대에 구축된 소통 없는 권위적인 오너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오너 3세 등 젊은 경영인의 등장도 영향을 미쳤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시대 변화, 세대 교체에 따라 그룹 오너의 경영과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며 “오너가 직접 나서는 만큼 소비자에게 큰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지만, 반대로 홍보한 회사 가치와 동떨어진 일이 발생한다면 이에 따른 책임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 ‘택진이형’이라 불러주세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리니지M 등 게임 광고에 코믹한 모습으로 출연하며 ‘택진이형’이란 별칭을 얻었다. 사진 유튜브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리니지M 등 게임 광고에 코믹한 모습으로 출연하며 ‘택진이형’이란 별칭을 얻었다. 사진 유튜브

국내 대표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의 창업자 김택진 대표는 ‘택진이형’으로 불린다. 연 매출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엔씨소프트를 이끄는 대표이사보다 동네 형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김 대표의 친근한 이미지는 그가 약 3년 전부터 엔씨소프트의 핵심 게임 ‘리지니M(모바일)’ TV 광고에 출연하면서 자리잡았다.

김 대표는 2017년 10월 리니지M 광고에 코믹한 모습으로 출연했다. 광고에서 김 대표는 한 일식당에서 리니지 유저 바로 옆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그런데 그 유저가 “꿈에서 김택진을 봤다. 느낌이 좋다”며 자신의 게임 속 캐릭터 무기 등 아이템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실패해 모든 아이템을 잃는다. 그러면서 김 대표를 원망한다. 이때 옆에 있던 김 대표가 깜짝 놀라며 사레에 들린 듯 기침을 하며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식당을 나오며 그 유저에게 줄 것처럼 재킷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리니지 아이템 쿠폰을 찾는다.

김 대표는 꾸준히 회사 게임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2020년 11월에는 리니지M 게임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대장간을 배경으로 노란 머리를 한 대장장이 모습으로 분해 코믹 연기를 했다. ‘택진이형’이라는 재미있는 콘셉트로 엔씨소프트는 친근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게임 등을 통해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회사의 가치도 알릴 수 있었다.


함영준(왼쪽) 오뚜기 회장의 딸인 뮤지컬 배우 함연지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햄연지’에서 다양한 오뚜기 제품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함영준(왼쪽) 오뚜기 회장의 딸인 뮤지컬 배우 함연지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햄연지’에서 다양한 오뚜기 제품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식품 전문 업체 오뚜기의 경우 함영준 회장의 장녀 함연지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햄연지’를 통해 제품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함씨는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오뚜기 경영에 관여하진 않지만, 햄연지에서 다양한 오뚜기 제품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방송을 하고 있다.

2020년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아버지인 함 회장이 햄연지에 출연했고, 함씨는 오뚜기 제품을 활용해 철판 돼지 짬짜면과 크림 스프 리소토를 만들어 함 회장에게 대접했다. 함 회장은 ‘오뚜기 최애템은 무엇이냐’는 함씨의 질문에 “오뚜기 가정용 제품이 1000가지가 넘는데 그중에 카레가 가장 애정이 간다”며 “(오뚜기가) 카레로 시작했기 때문이고,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말했다.

오너의 광고 출연은 대중과의 소통 등 회사 홍보에만 머물지 않고 조직 내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효과도 있다. 조직 내·외부 구별 없이 메시지를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개방적 소통이다.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사장단, 중간 간부, 직원 등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톱다운(top down·하향식) 소통이 아니라, 오너가 광고 영상 등에서 회사의 핵심 역할을 직접 보여주며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는 물론 전체 조직원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