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시기에는 해외 취업 유예기간을 갖고 국내에서 MBA 진학 준비에 매진하는 것이다.
해외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시기에는 해외 취업 유예기간을 갖고 국내에서 MBA 진학 준비에 매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멋지고 자그마한 경기 불황이다.”

최근 경영대학원(MBA) 학장 사이에서 도는 농담이다. 2019년 앤드루 애인슬리 미국 로체스터대 사이먼 경영대학원 학장은 미국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경기 불황을 바라는 사람은 우리 MBA 학장들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경기 불황기에는 MBA 지원율이 오른다. 취업과 근무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기 계발 시간을 갖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그간 MBA는 지원율 감소로 고충을 겪었다. 미국 MBA의 2년제 풀타임 학위 지원율은 지난 5년간 감소했다. ‘하이퍼 아일랜드(Hyper Island)’와 ‘졸트(Jolt)’처럼 MBA보다 저렴한 등록금으로 단기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대안 학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명문 MBA는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싼데 강의의 질이 정체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MBA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6월 2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올해 경기 불황으로 전 세계 상위 20개 대학 가운데 13개 대학의 경영대학원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높았다. 상위 10위권 대학 가운데 지원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학교는 프랑스의 인시아드(57%)다.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과 미국 MIT 슬론 경영대학원은 지원율이 각각 12% 늘었다.

경기 불황이 영향을 미쳤다. 로드 가르시아 MIT 슬론 경영대학원 입학부(副)처장은 FT와 인터뷰에서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MBA 지원율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내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원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MBA 지원 요건 완화도 증가세에 영향을 미쳤다. MBA에 지원하려면 통상적으로 수학능력시험 GMAT·GRE 점수가 필요하다. 두 시험 모두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시험을 볼 수 없게 됐다. GRE는 3월, GMAT는 4월에서야 온라인 시험을 개설했다. 2~3월에 지원하는 마지막 3차 시기 지원자는 점수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은 지원 마감일을 연장하고 GMAT·GRE 점수 미제출을 허용했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일부 프로그램의 지원 마감일을 연장했고, 미국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은 4차 지원 시기를 신설했다.


“해외 취업 미루자” 국내서도 MBA 준비생 증가

MBA 지원자 수 증가는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MBA 준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해외 유학생의 MBA 지원 기간은 2차 시기인 12~1월까지다. 보통 1년 전부터 GRE와 GMAT 공부를 시작한다. GRE·GMAT 학원에 등록하는 수강생이 최근 늘고 있다.

국내 MBA 학원의 올해 수강생 수는 20~3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수강생이 가장 많은 리더스MBA 학원은 올해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소규모 학원도 수강생이 증가했다. 이진영 GRE GMAT 아카데미 원장은 “월간 학원 등록자 수가 평소보다 20%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고, 15년 동안 GMAT 강의를 해온 정지상(가명)씨도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30% 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해외 취업 준비생들이 MBA 진학 준비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영곤 리더스MBA 원장은 “해외보다 국내에 MBA 학원이 활성화돼 있다”면서 “해외 체류자가 코로나19로 한국에 돌아온 김에 MBA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올해 MBA를 준비하면 내년 9월에 입학한다. 1~2년 후 졸업할 시점에 경기가 반등한다면 해외 취업이 용이해진다. 이진영 원장은 “최근 미국에서 취업에 성공했다가 코로나19로 취소 통보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학생을 진학 상담했다”면서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려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준비생에게 올해는 ‘기회의 해’가 될 수 있다. MBA가 국제 학생 정원을 대부분 중국인에게 배정하는데, 이들의 MBA 진학 준비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GMAT 온라인 시험은 중국 내에서 응시할 수 없다. GMAT 주관사 GMAC은 7월 17일부터 GMAT 오프라인 시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6월 15일에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다만 미국 내 반중 정서가 오히려 MBA 준비생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상규 GMAT단기 원장은 “11월 미국 재선 시기와 MBA 2차 지원 시기가 맞물려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임 여부에 따라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학생의 입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취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유럽권 MBA를 준비하고 있는 장모(32)씨는 “코로나19 이후 유럽에서 동양인 혐오 현상이 심해진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Plus Point

“MBA 등록금 돌려달라” 미국서도 환불 요구

금융 업계에 종사하는 이지영(33·가명)씨는 올해 2월 한 미국 경영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는 회사 지원을 받아 휴직계를 쓰고 한국에서 기초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다. 6월부터 미국에서 어학 수업을 듣고 8월부터 정규학기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학교는 8월 커리큘럼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이씨는 “아직 미국 비자 발급 업무가 재개되지 않은 상황이라 입국 여부가 불투명하다”면서 “학교도 비자 문제로 미국에 오지 못하는 사람에겐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겠다고 공지를 한 상황”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MBA 커리큘럼이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 MBA는 현지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3월부터 대면 수업을 모두 온라인 강의로 돌렸다. 기숙사를 포함한 캠퍼스 건물을 모두 폐쇄한 결과였다. 새 학기를 시작한 일부 학교는 커리큘럼을 일시 중단했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는 MBA 진학 목적을 퇴색시킨다”고 지적한다. MBA의 주목적은 업계 종사자와의 인맥 형성이다. 한국에서 MBA를 준비하고 있는 김모(28)씨는 “온라인 강의만 들어야 하는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1년에 1억~2억원에 달하는 등록금이 아까울 것”이라면서 “인생에 한 번뿐인 중요한 시간을 보내러 가는 만큼 입학을 미룰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선 등록금 반환 서명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 대학생이 온라인 강의에 따른 수업의 질 저하에 항의하면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등록금만 16만달러(약 2억원)가 넘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은 한 해 입학생 수에 달하는 900명의 등록금 반환 청원을 받았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도 등록금이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가 넘는데, 이곳 학생들도 봄 학기 수업료의 80%를 반환하라는 청원에 서명했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과 인시아드에도 비슷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