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열풍이 불었던 제주도 애월읍. 2013년 3.3㎡당 80만원 하던 제주도 애월읍의 땅값은 최근 230만원이 넘는다. 사진 연합뉴스
귀촌 열풍이 불었던 제주도 애월읍. 2013년 3.3㎡당 80만원 하던 제주도 애월읍의 땅값은 최근 230만원이 넘는다. 사진 연합뉴스

“주말까지 총동원해서 60시간 넘게 일했어요.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니 놀러 다닐 시간도, 돈도 부족했습니다.”

귀촌(歸村·농촌에서 생활) 열풍이 불던 2013년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간 이지선(가명·38)씨. 주말도 없이 카페에서 일했지만, 최저임금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역부족이었다. 시골이라는 핑계로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카페도 있다고 하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귀촌 생활을 하면서 ‘바닷가의 낭만’과도 같이 자연을 즐기겠다던 꿈은 어느새 물거품이 됐다. 더 버틸 재간이 없다고 판단해 시골 생활을 접고 서울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를 떠나는 사람이 제주도로 들어가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제주도 전입 인구는 2만9470명, 전출 인구는 3만38명으로 순 유출 인구가 568명이었다. 귀촌 열풍으로 ‘제주살이’가 유행했던 때와는 상반되는 분위기다.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골에서 하루 세끼를 지어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 끌면서 한때 귀촌 열풍이 일었다. ‘낭만’과 ‘여유’를 좇아 전원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대거 는 것. 그 결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제주 귀촌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생계가 제주도 귀촌 인구의 발목을 잡았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 평균 임금은 271만704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고 전국 평균 임금인 340만5769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임금은 낮지만 관광업으로 인해 물가가 높아지다 보니 ‘제주도민이 식당에서 값비싼 고등어조림을 사 먹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생겼다.

몰려드는 인구에 월세 부담은 늘었다. 2013년 3.3㎡당 80만원 하던 제주도 애월읍의 시세는 최근 230만원이 넘었다. 제주도 땅값은 2009년부터 10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2018년 제주 애월읍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지모(27)씨는 “제주도 집값이 웬만한 서울보다 비싸다”면서 “한 달에 월세, 도시가스비, 전기세까지 총 60만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지씨도 최근 고향인 대구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생계 문제로 귀촌 선호도가 줄어드는 현상은 제주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9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500명의 도시민을 조사한 결과 59.6%가 귀농·귀촌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 63.7%였지만 2019년에는 34.6%에 불과했다. 올해 발표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방 이주 의향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일자리와 경제 활동이 나빠서’가 46.9%로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서울특별시에서 전남 목포로 귀촌을 선택했던 간호조무사 정모(38)씨는 “‘낭만 있는 삶’을 꿈꾸면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지만, 대형병원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면서 “개인병원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결국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왔다”고 했다.


전남 장성군 장성호 수변길을 찾은 나들이객이 제2 출렁다리를 걷고 있다. 장성군청에 따르면 주말마다 3000~50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사진 연합뉴스
전남 장성군 장성호 수변길을 찾은 나들이객이 제2 출렁다리를 걷고 있다. 장성군청에 따르면 주말마다 3000~50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사진 연합뉴스
‘서핑의 메카’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에서 서핑족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로 양양군 귀촌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핑의 메카’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에서 서핑족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로 양양군 귀촌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청년 귀촌 잡으려면 지역 경제 뒷받침돼야

반면 일자리가 창출되는 곳은 ‘신흥 귀촌 지역’으로 뜨고 있다. 2017년부터 2020년 1분기까지 꾸준한 인구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성장 폭도 늘어난 지역은 경북 경산시와 강원 양양군뿐이다. 경산시 인구는 2017년 792명, 2018년 1239명, 2019년 1938명 늘어났고 올해 1분기에만 174명 증가했다. 양양군은 2017년 195명, 2018년 265명, 2019년에는 560명 늘어났고 2020년 1분기에는 49명이 증가했다.

경산시는 게임 산업과 재활의료 산업으로 일자리를 다각화했다. 총사업비 486억원의 경북권역 재활병원이 오는 9월 경산에서 개원한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이 자리 잡으면서 재활의료 분야를 전문화하는 것이 시의 목표다. ‘경북 NEXT 게임 콘텐츠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젊은 인구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사업에도 힘쓴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10년 동안 인근 도심지 대구에서 경산시로 유입된 인구가 15만 명에 달했다.

양양군은 ‘서핑의 메카’로 입소문을 타면서 귀촌 인구가 늘었다. 서핑족이 많이 찾는 서프빌리지가 조성된 죽도해변에 현재는 50개가 넘는 서핑 숍이 자리 잡고 있다. 서핑 강습을 하는 강사들이 있는 서핑 숍은 2013년 당시만 해도 3개에 불과했다. 서핑족을 중심으로 상권이 살아나니 자연히 식당이나 카페도 늘었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8년 양양군으로 이주한 노연정(41)씨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속초로 갔다가 카페 고객 유치가 쉬운 양양으로 영업장을 옮겼다”면서 “서핑족이 늘어나고 있어 매출도 함께 오르고 있다”고 했다.

장종근 강원도 양양군청 농촌개발계 사무장은 “서핑하는 사람이 늘면서 일자리도 늘었다”면서 “상권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유지되도록 인공파도를 만드는 등 서핑 관련 지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지역 일자리 다각화에 성공한 전라남도 장성군도 성공 사례다. 농업 위주 일자리를 관광업과 제조업 등으로 다양화했다. 황룡강에는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고 장성호는 주말마다 3000~5000명이 찾는다. 농공 단지 2개와 나노 산업단지를 유치했는데, 564개 업체가 입주해 8000여 명을 고용할 전망이다. 장성군청에서 전입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성군 전입 사유로 ‘직업(550명)’이 1위, ‘자연(202명)’이 2위로 나타났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지방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포함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라면서 “충남형 인구 정책처럼 일자리와 주거를 묶어서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