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경기도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0 KBO 리그 경기에서 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홈런을 친 뒤 방망이를 던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월 5일 경기도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0 KBO 리그 경기에서 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홈런을 친 뒤 방망이를 던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은 내 TV와 냉장고,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를 만들었어. 그리고 이제 내가 응원할 야구 팀도 만들었지. 라이온즈 만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응원하던 한 미국인은 “5월 5일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됐다”고 선언했다. 미국 최대 스포츠 방송국 ESPN은 KBO 리그 TV 중계권을 구입해, 5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개막전 경기를 중계했다. 시차 탓에 현지시각으로 새벽 1시에 방영된 경기였지만, ESPN 자체 집계에 따르면 평균 시청자 수는 17만3468명에 달했다. 우천으로 경기가 지연되자 2016년까지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에릭 테임즈(워싱턴 내셔널스)가 게스트로 등장해 ‘화상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SPN은 매일 한 경기씩 KBO 리그를 중계방송하고 KBO 관련 뉴스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도 편성한다.

무관중 경기 방식으로 개막한 KBO 리그와는 달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미국의 메이저리그(MLB)는 개막 일정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구단주들은 6월 중순 스프링캠프를 시작하고, 정규 리그는 7월 초에 개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 수는 팀당 162경기에서 82경기로 줄이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주 정부가 허가한 경기장에서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는 방안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MLB 팬들에게 대체재로 떠오른 것이 KBO 리그다. 류현진 선수 경기를 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던 한국인처럼, 이번엔 반대로 야구에 목마른 미국인이 새벽잠을 아껴가며 KBO 리그를 시청하고 있는 것. 물론 이는 MLB 개막 전까지만 나타날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KBO 리그만의 독특한 재미에 빠져든 이가 많아지고 있는 점에서, ‘야구 한류’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인기 비결 1│MLB선 볼 수 없는 배트 플립

5월 5일 미국 ESPN으로 중계된 KBO 리그 개막전, NC 다이노스 모창민 선수가 홈런을 친 뒤 시원하게 방망이를 집어 던졌다. 중계진은 “시즌 1호 배트 플립(bat flip)이 나왔다”며 환호했다. KBO에서는 타자가 홈런을 친 뒤 세리머니로 배트 플립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타격 마무리 동작으로 방망이를 던지거나 홈런 타구가 날아가는 것을 끝까지 본 뒤 던지는 등, 그 방식도 다양하다.

그러나 MLB에서는 배트 플립이 투수에 대한 예의를 무시하고, 상대 팀을 자극하는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만약 타자가 홈런을 치고 방망이를 던졌다면, 다음 타석에서 바로 빈볼(몸에 맞는 공)이 날아온다. 심하면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 brawl·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야구는 경기 시간이 타 스포츠에 비해 지나치게 길고, 달리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많은 스포츠다. 여기에 배트 플립 등을 금지하는 보수적인 문화까지 더해져 젊은층이 MLB를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한국의 다양한 배트 플립이 이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미국의 스포츠 기자 테일러 콘웨이는 자신의 트위터에 “배트 플립 영상을 보고 나는 한국 야구에 올인하기로 했다”고 썼고, ESPN의 제프 파산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배트 플립 영상을 잇달아 공유했다.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 ‘액션네트워크’는 한국 선수들의 배트 플립을 유형별로 분류하기도 했다.


5월 6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관중석에 사람 대신 각종 현수막이 설치된 가운데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월 6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관중석에 사람 대신 각종 현수막이 설치된 가운데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인기 비결 2│응원 팀 정하면 헤어나올 수 없어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KBO 구단은 KIA 타이거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은 NC 다이노스다. 미국의 소셜 사이트 레딧에서 진행한 ‘가장 좋아하는 KBO 구단’ 투표에서 NC 다이노스가 21%를 득표하며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NC는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약자인데, 마침 이 지역에 MLB 연고 구단이 없기 때문이다.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까지 트위터로 공개 지지 선언을 하는 등 ‘노스캐롤라이나 다이노스’에 대한 성원이 뜨겁다.

프로 스포츠 입문에 앞서 필수적인 것이 ‘응원할 팀 정하기’다. 응원하는 팀이 있으면 승부에 몰입하게 되고, 경기 관람의 재미가 한층 높아진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어떤 KBO 팀을 응원해야 하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과 KBO 리그 팀의 공통점을 소개했다. 디 애슬레틱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에게는 KIA 타이거즈를 추천했다. 우승 횟수가 11회로 같고, 유니폼 색상도 붉은 계통이라는 이유에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팬들에게는 ‘우승은 어렵지만 특급 유망주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는 공통점에서 KT 위즈를 추천했다. 토론토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와 KT의 강백호는 둘 다 1999년생이고, 최고의 타자 유망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5월 7일 경기도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의 KBO 리그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린 가운데 투수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월 7일 경기도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의 KBO 리그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린 가운데 투수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인기 비결 3│오심한 심판 강등하자 경탄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 선수는 5월 7일 SK 와이번스와 3연전이 끝난 뒤 방송 인터뷰에서 “3경기밖에 안 지났는데 선수들이 볼 판정의 일관성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다”며 “(심판들이) 저희 선수들 마음도 조금은 헤아려주시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용규 선수의 작심 발언에 KBO 사무국은 다음 날 해당 경기 심판 5명을 퓨처스리그로 강등했다.

미국 시청자들은 “MLB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MLB 심판은 시즌 전 사무국에 의해 확정되고, 이후 아무리 오심을 저질러도 시즌 종료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철밥통’이다. 야후 스포츠는 “MLB 심판들은 그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일한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