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씨가 자신이 수확한 쌀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일산쌀
이재익씨가 자신이 수확한 쌀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일산쌀

경기도 일산에 근거지를 둔 청년 농부를 인터뷰하기 위해 여주로 차를 몰았다. 좀 이상했다. 대다수 농부들은 거주지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다. 이동 수단이 좋아져 물리적 거리가 과거보다 많이 축소됐다고 하지만 농부들은 여전히 주거지 근처의 경작지를 선호한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농작물을 더 살펴보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 마을 근처에 있는 논밭은 멀리 떨어진 그것보다 더 대접받는다. 정말 피치 못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 문전옥답을 팔지 않는 이유다.

좀 멀긴 했지만 번잡한 서울을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 시골로 가는 일은 즐거웠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논들은 모두 모내기가 끝나 있었다. 모내기 할 때만 해도 불과 몇 줄기에 불과한데 가을 수확철 황금벌판으로 바뀌는 모습은 여전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남짓 차를 달려 경기도 여주 응암휴게소에서 청년 농부 이재익(29)씨를 만났다. 휴게소에서 농부를 만나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큰 덩치와 넉넉한 살집, 그리고 크지 않은 눈까지 모든 것이 선해 보였다.

이씨는 농약을 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소에 왔다고 했다. 옷에 흙이 조금 묻긴 했지만 농약을 친 사람치고는 깔끔했다. 땀을 흘린 것 같지도 않았다. 기억대로라면 농약을 치는 일은 농사 일 중에서도 상노동이다. 고압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무거운 호스를 농로에서 반대편 논끝까지 길게 늘인 뒤 다시 당기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나마 논에 물이라도 있으면 호스를 당기기 수월한데 물이 없어 진흙이 묻은 호스를 당길 때는 몇 배나 힘이 들었다. 옷은 진흙 범벅이 됐다. 소형 약통을 등에 메고 밭에 약을 치는 일도 마치고 나면 땀범벅이 될 정도로 힘들었다.

이씨는 ‘농약을 친 사람치고는 깨끗하다’는 말에 “요즘은 드론을 써서 농약을 살포하기 때문에 옷을 심하게 버릴 일이 없다”고 했다. “예전에 농약통을 등에 메고 밭에 약을 치거나 고압 장비를 이용해 논에 농약을 뿌리던 일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봐 온 젊은 농부와 매우 달랐다. 그동안 인터뷰를 했던 농부 중에 벼농사를 짓는 20대 농부는 드물었다. 일산에 사는 농부가 차로 2시간쯤 걸리는 여주까지 와서 농약을 살포하는 것도, 식사를 위해 음식을 파는 휴게소를 찾았다는 것도 그동안 접한 농부의 모습과 달랐다.

그는 낯을 많이 가릴 것 같은 외모와 달리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농사일의 즐거움과 미래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이재익(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농업법인 일산쌀 직원들과 일산 근처의 논에서 모내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 일산쌀
이재익(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농업법인 일산쌀 직원들과 일산 근처의 논에서 모내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 일산쌀

일산에 사는 농부가 여주 와서 농사짓기에 너무 멀지 않나.
“여주에서 직접 내 농작물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주는 사는 곳에서 너무 멀다. 논밭에 농약 살포 작업을 대행하러 여주에 왔다. 돈 받고 하는 일종의 농사일 용역으로 왔다.”

농작업 대행업이 주업인가.
“하는 일이 많다. 벼농사를 짓고, 수확한 쌀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팔기도 한다. 쌀을 가공해 조청과 쌀과자도 만든다. 어린이 체험학습장도 운영한다. 그리고 농업법인을 만들어 농작업 대행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벼농사를 지었다. 3대 가업이다. 지금은 형과 같이 벼농사를 짓는다. 형과 함께하기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부모님은 벼농사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곁에서 농사일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모습을 봤으면 농업 대신 다른 직업을 택했을 법도 한데.
“형이 먼저 농사를 시작했다. 형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농업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나도 원래 농부를 할 생각이 없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직장도 잡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재배한 쌀로 조청 만드는 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돕다가 농업으로 직업을 바꿨다. 어머니 일을 도와주다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농부라는 직업이 싫지 않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두 분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셨다. 우리 논도 꽤 있어서 농업의 비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다만 형제가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의가 상할까 조금 걱정하셨던 것 같다. 사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의견이 달라 형과 다툴 때도 있는데 금세 풀어진다.”

농사를 짓는 규모는 얼마나 되나.
“지난해 9만㎡(2만8000평) 정도를 농사 지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경작면적이 늘어 12만5400㎡(3만8000평)쯤 된다. 이 중에 우리 소유는 3만3000㎡(1만 평) 정도 된다.”

벌이는 얼마나 되나.
“지난해 1억원 조금 못 되게 번 것 같다. 아직 많은 돈은 아니지만 형과 내 나이가 30세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 다닐 때보다 적게 버는 것 같지는 않다. 농작업 대행이나 어린이 체험학습, 쌀과자 판매 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앞으로 벌이가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작업 대행회사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요즘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이라고 한다. 나이가 있으니 농사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노동이 벅찰 수밖에 없다. 농촌에서는 일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점에 착안해 농사일을 대행해 주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모내기, 농약 치기, 벼 수확 등을 대행해주는 것이다. 사실 형은 지금 지인들 몇 명과 팀을 꾸려 충남 서산으로 모내기 작업을 대행해주러 갔다. 우리 논에 모내기를 모두 마친 뒤 남의 농작업을 대신해주고 돈을 버는 것이다.”

농작업 대행사업을 하려면 농기계가 많이 필요할 텐데.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농약 살포용 드론까지 필요한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다. 아버지가 쓰시던 것도 고쳐 사용한다. 더 좋은 최신형 농기계가 있으면 좋지만 농기계값이 수천만원씩 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새 기계를 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경작지가 늘어나고 농작업 대행사업이 좀 더 확대되면 상황을 봐가면서 좋은 농기계를 구입할 계획이다.”

드론으로 약을 쳤다고 했는데 생소하다.
“드론이 그다지 크지도 않다. 내가 쓰는 드론의 크기는 날개를 폈을 때 1.2m 정도 된다. 6600㎡(2000평) 정도의 경작지는 물과 농약의 비율을 5 대 5로 맞춘 농약 희석액 10ℓ로 10~20분 만에 다 뿌릴 수 있다.”

귀농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귀농하려는 이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이다. 농부는 부지런히 일하면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나도 오늘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좀 피곤하지만 농약을 칠 수 없는 낮에 쉬면 된다. 그리고 생산한 농작물을 어떻게 팔지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농작물도 팔지 못하면 돈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