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왼쪽) 서울옥션 수석경매사 경희대 사학, 홍익대 미술사학 석사과정, 현 서울옥션 수석경매사 겸 홍보마케팅팀장 음정우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이사 고려대 조소학과(현 디자인조형학부), 현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팀 이사 겸 블랙랏 사업부 이사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김현희(왼쪽) 서울옥션 수석경매사 경희대 사학, 홍익대 미술사학 석사과정, 현 서울옥션 수석경매사 겸 홍보마케팅팀장 음정우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이사 고려대 조소학과(현 디자인조형학부), 현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팀 이사 겸 블랙랏 사업부 이사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경매사는 옥션의 ‘얼굴’이다. 경매 현장에서 바쁘게 호가를 부르며 응찰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박자 쉬며 긴장감을 연출해낸다. 서울옥션의 얼굴인 음정우 미술품경매팀 이사와 김현희 수석경매사는 15년 넘게 회사에서 주요 경매를 진행해왔다. 음 이사는 고미술품, 김 수석경매사는 현대 미술품 전문가다. 

2월 16일, 서울 신사동의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두 사람을 만나 미술 경매의 노하우와 올해 미술 시장에 대한 전망 등을 물었다. 두 경매사는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가장 열성적인 청자가 되기도 했고, 퍼즐을 맞추듯 답변의 빈칸을 채워주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동안 경매를 진행했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김현희 “고(故) 이중섭 작품의 최고가가 ‘소’ 연작으로 2010년과 2018년 두 번에 걸쳐 경신됐다. 2010년 낙찰작은 내가 경매를 준비한 작품이었고, 2018년 작품은 경매 준비에 이어 판매까지 직접 했다. 시작가 20억원에서 출발해 1억원씩 올렸으며 최종적으로 47억원에 낙찰됐다. 사상 최고가를 향해 올라갈수록 ‘이 자리에서 한국 미술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나 벅찼다.”

음정우 “고(故)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을 때 일본인 간수의 부탁을 받아 쓴 붓글씨 ‘경천(敬天)’이 기억에 남는다. 글씨를 소장했던 삼중 스님이 낙찰되면 수익금으로 안 의사의 동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경매를 진행했다. 워낙 희소성이 높고 안 의사의 다른 붓글씨 2점이 이미 보물로 지정돼있었기에 당연히 경합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유찰되고 말았다. 그 당시만 해도 붓글씨는 크기와 글자 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붓글씨는 크기나 글자 수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이었다. 사형을 앞둔 안 의사가 일본인 간수에게 ‘하늘 무서운 줄 알고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을 담아 써준 작품이었다(안중근 의사는 생전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다).”


경매를 진행하다 보면 작품에 개인적으로 애정이 생기는 경우도 많겠다.

음정우 “안 의사의 ‘경천’이 유찰됐을 때 2분 동안 허공에 대고 ‘정말 아무도 안 계시냐’고 물었다.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그런 감정 표출을 굳이 자제시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그것이 우리의 색깔인 것 같다.”


경매사로 일하려면 연예인 같은 기질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김현희 “우리 스스로 경매를 즐겨야 보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매는 분위기를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하면 진행이 너무 힘들다. 분위기 덕에 더 잘 팔리고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경매사가 강약 조절을 잘해야 한다. 한 편의 쇼를 하듯 역동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귀한 작품을 경매에 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노하우가 있다면.

김현희 “그림을 내놓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소장자의 집을 5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소장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철저히 공부하고, 기존 작품들의 낙찰가 데이터를 모두 보여주며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6개월 동안 설득해 겨우 받은 작품도 있었다.” 


‘팔리는’ 작품의 공통점이 있을까. 같은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그림이라도, 어떤 것은 고가에 낙찰되는 반면 어떤 것은 유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김현희 “작품의 주제나 구도, 색감 등 ‘내용’이 좋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에 A4 용지의 절반 크기밖에 안 되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다. 구아슈로 산과 달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대부분 비슷하다. 작은 그림이었지만 2500만원에서 시작해 1억원에 낙찰됐다. 반면 그다음에 나왔던 김환기의 다른 그림은 이전 작품의 4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주인을 찾지 못했다.”


컬렉터 중에는 경매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음정우 “현대 미술은 시장에서의 거래 이력 때문에 가격이 더 높아지는 경우가 있지만, 고미술은 그렇지 않다. 고미술품 컬렉터는 ‘마니아’의 성향이 강해 고미술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와도 같다. 좋은 작품일수록 소장자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숨겨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경매 등 시장에 한 번이라도 나갔던 작품은 ‘안 팔렸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은 이른바 ‘강남 3구’의 시세가 상승기에 먼저 오르고 하락기에 더 천천히 떨어지지 않나. 미술품도 비싼 작품의 가격이 먼저 오르고 침체기에 덜 하락하는지.

음정우 “부동산보다는 주식에 빗대어 설명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지금 미술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는 단색화를 ‘대장주’라고 한다면, 시장에서 의도적으로 유행을 만들어낸 장르는 ‘테마주’라고 할 수 있다. 테마주는 이것을 만든 주체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고 나면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가격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대장주는 시장의 침체기에도 가격 방어가 상대적으로 잘 된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부상은 최근 미술 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그들의 소비 패턴은 어떤가.

음정우 “합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어떤 MZ 세대 컬렉터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를 넘은 시점부터 문화재의 가치가 오르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등 동양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문화재 가격이 아직 많이 오르지 못했다’며 고미술 시장에 비전이 있다고 말하더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한 점당 1억원이 넘는 것과 달리 고미술품은 아직 비싸야 수천만원에 불과하다며, 고미술 작품을 지금 사서 5년만 들고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블루칩(우량주를 의미하는 단어로, 미술계에서는 작품의 가격대가 매우 높은 거장 작가를 뜻한다)이 될 수 있는 신진 작가는 어떻게 알아보는지.

김현희 “‘훗날 이우환이나 김환기가 될 수 있는 젊은 작가가 누군지 알려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젊은 작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게끔 후원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사 줘야 한다. 제2의 김환기, 제2의 이우환이 되길 기대하며 사서는 안 된다. 투자의 목적으로 그림을 사려면, 이미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것이 낫다.”


작품성을 보는 안목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음정우 “취향을 형성하기 위해 남에게 기대려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고하게 알아야 한다. 어떤 색감이나 도안, 미술사조를 좋아하는지 알고 나면 취향의 고도화는 순식간에 이뤄진다. 작가의 네임밸류에 매몰되는 소비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김현희 “경매 전 프리뷰 전시를 보는 것도 안목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프리뷰 전시에는 많은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모여 있으며, 현재 시장에서 인기 있거나 앞으로 인기를 얻게 될 작품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당 작가의 전시회를 찾아가 작품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초보자라면 100만원을 갖고 실제로 작품을 한 번 구매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구매를 위해 가격을 조사하고 작가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