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 사진 스톤브릿지벤처스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 사진 스톤브릿지벤처스

2013년, 당시 2년 차 벤처캐피털리스트였던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투자 심사역은 서울 관악구에서 원룸·투룸 임대를 중개하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마음을 뺏겼다. 서비스를 운영하던 청년 창업가는 원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매물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발로 뛰어 모은 정보를 직접 엑셀 파일로 만들어 관리하며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손호준은 창업가의 문제의식과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의 회사에 투자하고자 결심했다. 스톤브릿지벤처스 내부에서 대여섯 번의 거절을 당했으나 이듬해 10억원을 투자할 수 있었고, 이후 회사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7년이 지난 현재 1조1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반열에 올랐다.

손호준이 일찌감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이 스타트업은 ‘직방’을 운영하는 채널브리즈(현 직방)였다. 손호준은 올해 초 카카오에 인수된 크로키닷컴(‘지그재그’ 운영사), 무신사에 인수될 여성복 쇼핑몰 ‘스타일쉐어’ 등에도 초기 투자했다. 현재는 스톤브릿지벤처스의 이사로서 투자 심사와 펀드 결성 등 중책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역삼동 스톤브릿지벤처스 사무실에서 손 이사를 만나 젊은 나이에 화려한 트랙레코드(실적)를 쌓은 비결과 투자 가치관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부터 이른바 ‘제2의 벤처 붐’이 계속되며 벤처캐피털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벤처캐피털(VC)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대학교 재학 중이던 2009년 잠깐 창업을 한 덕에 배인탁 서울대 교수님이 만든 벤처 창업가 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배 교수님이 미국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분을 통해서 VC의 존재를 알고 매력을 느끼게 됐다. VC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투자은행(IB) 근무 경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씨티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1년간 일하다 스톤브릿지벤처스 인턴사원 모집에 지원했다.”

스톤브릿지벤처스에서의 인턴 활동은 어땠는지
“2012년 7월부터 두 달간 인턴십을 했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인턴사원들의 과제는 매주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 한 곳을 발굴해 왜 투자하고 싶은지 브리핑하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발굴했던 회사가 지금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였다. 그때 이승건 대표는 토스가 아닌 ‘울라불라’라는 모바일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고 있었다.”

토스에 정식 투자도 했나
“비바리퍼블리카를 회사에 추천했던 것이 인연이 돼, 토스가 출시된 후 기업가치 25억원에 5억원을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회사는 규제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투자하지 못했다. 그때 비바리퍼블리카에 투자하지 못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아니었을까(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6월 8조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래도 좋은 투자 포트폴리오가 많다. 직방에도 초기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방은 2014년에 처음 투자한 이래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이 300억원을 넘는다. 지분은 거의 다 보유하고 있다. 회사가 최근 1조1000억원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다는데, 그것을 고려하면 지분 희석을 배제하고 기업가치가 100배 가까이 올랐다.”

벤처 기업에 투자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벤처 투자업에서는 2 대 8의 법칙이 매우 중요하더라. 상위 20%의 포트폴리오가 전체 수익의 80%를 담당한다. 상위 20% 안에서도 또다시 2 대 8의 법칙이 작용한다. 결국 투자한 회사 중 한두 개가 벤처 펀드 전체의 수익을 좌우하고,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한두 개 포트폴리오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1조원의 몸값을 인정받고 카카오에 인수된 여성복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에도 초기에 투자했다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의 서정훈 대표와는 2012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러다 서 대표가 2015년 지그재그를 출시했는데, 사용자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빨랐지만 2년이 지나도 매출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그재그가 월 거래액 300억원의 5~20%에 해당하는 매출을 곧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기업가치 400억원에 50억원을 투자했고, 지그재그는 실제로 그해 12월 전체 거래액의 5%에 해당하는 월 매출액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지그재그가 매출을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어떻게 했는지
“나는 앞서 직방과 배달의민족(배민)에 투자 심사를 한 경험이 있었다. 지그재그도 직방, 배민과 마찬가지로 의식주의 영역에 있었고, 소상공인들이 들어와 고객을 유치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유사했다. 배민과 직방은 2017년에 이미 거래액의 5%에 해당하는 매출을 내고 있었다.”

보통 투자 결정을 빨리하는 편인가
“창업가를 처음 만난 후 투자하기까지 평균 2년이 걸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투자할 목적을 갖고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사이인데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만날 때마다 사업 구상에 업데이트가 많이 돼 있고, 시장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경우에 투자를 결정한다.”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대주주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유니콘의 창업가들은 대체로 작은 정보를 갖고 큰 인사이트를 얻어서 과감하게 결정하고 효율적으로 이행한다. 창업가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창업 초기 단계에 지분이 여러 명에게 분산된 회사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창업가는 직관을 갖고 결정을 내려 추진해야 하는데, 지분을 많이 보유한 여러 사람을 모두 설득해야 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요즘 어떤 분야의 스타트업이 유망하다고 보는지
“나는 브랜드·IP(지식재산권)·테크놀로지의 앞글자를 따서 ‘BIT’로 부른다. IP의 경우 음악과 드라마, 게임, 웹툰 등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를 모두 포함한다. 좋은 IP를 보유한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번 ‘대박’이 나면 유니콘 이상의 기업이 될 수 있다.”

성공적인 투자 심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경험과 네트워크, 인사이트를 갖고 특정 시장에서 상위 20%가 될 수 있는 기업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빅데이터를 학습하듯 투자 심사역도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만 회사를 보는 눈이 생긴다. 스타트업의 직원이 50명일 때, 100명일 때 각각 어떻게 다른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회사를 알아봤을 때 과감하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선구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큰 펀드의 운용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