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한 이용률로 영업을 중단한 한국스마트카드의 ‘지브로’ 앱. 3000만~40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추가 투입해 ‘S택시’로 재출시될 예정이다. S택시는 5월 29일부터 시범 운행에 돌입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저조한 이용률로 영업을 중단한 한국스마트카드의 ‘지브로’ 앱. 3000만~40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추가 투입해 ‘S택시’로 재출시될 예정이다. S택시는 5월 29일부터 시범 운행에 돌입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요즘 서울시가 민간 업계에서 온갖 좋아보이는 것은 다 건드려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죽하면 서울시 주식회사라는 냉소도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박원순표 서울시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카드사들이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높은 수수료율을 비판하면서 만든 결제 애플리케이션(앱) ‘제로페이’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98억원의 예산을 받아둔 사업이지만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것.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제로페이의 지난 1월 결제 금액은 국내 개인카드 결제금액(58조1000억원)의 0.0003%(1억9949만원)에 불과하다. 가맹점 사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대의에서 시작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로페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5월 12일 서울시는 또 다른 관 주도 사업을 알렸다. 한국스마트카드와 협력해 택시 호출앱 ‘S택시’를 5월 29일부터 시범 운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업계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카카오택시에 대적할 앱을 만들겠다는 취지인데, 반응은 싸늘하다.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부장직을 맡았던 이재웅 쏘카 대표는 “독과점이면 시장에서 좀 더 경쟁이 일어나도록 하거나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강제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는 민간기업하고 경쟁하거나 민간 기업의 경쟁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됐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1│업계 1위 카카오택시 의식한 결정

서울시에 따르면 S택시는 이용자가 지도를 보고 1㎞ 반경에 있는 택시를 직접 선택하고 호출하는 앱이다. 택시 기사는 교대, 식사 등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호출에 응해야 한다. 아직 인센티브나 패널티는 정해진 것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운송 종사자 중심의 서비스가 아닌, 택시 이용자가 주도권을 잡는 택시 이용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그동안 택시 기사들의 ‘손님 골라 태우기’가 큰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택시 기사들이 거리나 노선에 따라 호출앱에 뜨는 승객들을 골라 태우는 것을 간접적 의미의 ‘승차거부’라고 판단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7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골라 태우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앱에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도록 카카오택시 측에 강력하게 요청한 바 있다”며 “호출료를 받는 것, 단거리 우선 배차에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것도 제안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카카오 측에 여러 번 요청했지만 이런 업계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어 사업에 직접 나섰다”고 설명했다.


타고솔루션즈와 카카오모빌리티가 협력해 출시한 승차거부 없는 택시 ‘웨이고블루’. 3월 20일 서울 성동구 피어59스튜디오에서 열린 ‘웨이고블루 with 카카오 T’ 출시 간담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승하고 있다. 사진 타고솔루션즈
타고솔루션즈와 카카오모빌리티가 협력해 출시한 승차거부 없는 택시 ‘웨이고블루’. 3월 20일 서울 성동구 피어59스튜디오에서 열린 ‘웨이고블루 with 카카오 T’ 출시 간담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승하고 있다. 사진 타고솔루션즈

2│10억3000만원 들였다지만 실효성은 ‘글쎄’

S택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S택시의 전신 ‘지브로’가 이미 한 차례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지브로는 2017년 한국스마트카드와 서울시가 협력해 만든 택시 호출앱이다. S택시처럼 승객이 택시를 직접 호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고, 콜비로 주간에는 1000원, 야간에는 2000원의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하지만 강제 배차 시스템에 대한 부담감으로 택시 기사들의 이용률이 저조했고 지난해 끝내 사업이 중단됐다. 지브로의 일평균 택시호출 건수는 130건, 배차완료 건수는 23건, 운행완료 건수는 13건에 불과했다.

지브로는 사실상 실패로 결론났지만 투입된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한국스마트카드는 10억원의 개발 비용을 투입했는데,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지분 36.16%를 가진 서울시다. 이번에도 한국스마트카드는 지브로를 S택시로 개편하면서 3000만~4000만원을 추가 투입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한국스마트카드는 버스, 택시, 지하철 등 공공운수업종의 카드 결제 수수료를 수익원으로 운영되는 공공성을 띤 업체”라면서 “(서울시의 앱 개발은) 취지는 좋지만 사실상 비용 낭비를 불러온 실패한 공공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5년 경력의 택시운전사 김모(54)씨는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강제 배차 시스템을 이용하다가 혹여나 승차를 거부해 패널티를 받느니, 차라리 앱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유사한 민간 서비스들보다 인센티브가 더 높아야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3│민간 기업에 맡겨라

서울시가 택시 호출앱 사업에 성급하게 뛰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민간 시장에서는 승객 골라 태우기 관행을 차단할 만한 서비스들이 자생적으로 하나둘씩 출시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택시 앱에 택시 기사들에게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는 ‘스마트 호출’ 기능을 추가했다. 지난 3월부터는 타고솔루션즈가 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3000원의 추가 이용료로 승차 거부 없이 운영되는 ‘웨이고블루’ 서비스를 출시했다. 승차 공유 서비스업체인 ‘쏘카’에서 운영 중인 ‘타다’도 기존 택시 요금보다 20% 높은 이용료를 받는 대신 강제 배차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티맵택시는 카카오택시에 대적하기 위해 출시 이후 지난 1월까지 10% 할인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 주도 사업은 이런 민간 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 사업은 민간 사업처럼 할인 쿠폰을 주면서 승객을 끌어모을 수 없다. 민간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했다. 또 수익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할 유인도 없다. 한국스마트카드에서도 지브로의 이용률이 저조해지자 사업을 중단할 때까지 관리에 손을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S택시는 수수료 0% 플랫폼을 지향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익원이 없다. 지속적으로 민간 사업과 경쟁하면서 서비스를 발전시킬 동력이 떨어진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3년간 제작된 서울시 공공앱 60개 중 25개(41.7%)가 비슷한 경로로 사라졌다. 폐기된 공공앱에는 14억원이 넘는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특별시의회에서 교통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성중기 시의원은 “공공 부문은 민간 시장의 직접 경쟁자가 되기보다 제도와 행정 개선으로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줄여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